[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해오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됐다고 보도된 가운데, 사우디 당국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대역까지 동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8일(현지 시간) 터키 이스탄불 소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현지 경찰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18일(현지 시간) 터키 이스탄불 소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현지 경찰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22일(현지 시간) CNN은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살해된 후 그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요원이 영사관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남성은 카슈끄지가 아닌 무스타파 알 마다니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암살팀 요원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사우디아라비아 암살팀이 카슈끄지 살해 혐의를 벗기 위해 대역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터키 일간지 예니사파크는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살해 당할 당시 녹음된 오디오를 청취한 터키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그가 살해되기 전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고 이달 17일 보도한 바 있다.

또 살해 현장의 요원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실과 4차례나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암살에 직접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해당 사건이 보도되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일 카슈끄지가 자국 총영사관에서 살해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카슈끄지를 계획적으로 암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당국은 반체제 언론인인 그를 본국으로 송환하려다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왕세자 연루설'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美, 사우디 정부 강력 비판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의 주장을 신뢰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해당 사건을 폭로한 터키에서 여론이 나쁜 것은 당연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카슈끄지 죽음에 대해 "야만적인 계획범죄"라며 "우리는 정의를 찾고 있다"고 사건의 전모를 밝히겠다고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우방국인 미국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 해당 사건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고 있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같은 날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부(CIA) 국장을 터키로 파견하는 등 사건을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 의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빈 살만 왕세자의 퇴진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외교·경제적 제재는 물론 왕세자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의 주요국가들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잉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무기 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무기거래 계약 취소를 시사했다.

반인륜적인 언론인 고문 살해 사건에 휘말리면서 '중동의 맹주'로 활약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미국 행정부의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위기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카슈끄지 살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대역까지 내세웠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당국이 불리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을 우방으로 두고 '중동의 맹주'로 군림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최악의 언론인 고문·피살 사건으로 국제 정치 판도가 바뀔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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