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대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콕’ 집어 만났다.

(사진=뉴시스)
(사진=청와대 제공)

29일 비건 대표는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장관을 예방한 뒤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북한의 비핵화 관련 사항을 논의했다. 비건 대표는 불과 일주일 전 워싱턴에서 이도훈 본부장과 만나 같은 의제로 회동을 가진 바 있다. 이에 그가 또다시 방한한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비건 대표가 이례적으로 임 실장을 만나면서 미국이 남북경협을 두고 ‘속도를 조절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통상 미국 측 대표가 방한하면 ‘미국통’인 정 실장을 만나지만 비건 대표는 남북 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인 임 실장을 만났기 때문.

청와대에 따르면, 임 실장과 비건 대표의 만남은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이날 면담에서는 내년 초로 예고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진행 상황을 논의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임 실장은 비건 대표에게 ‘북·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고, 비건 대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측은 비건 대표가 요청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철도연결 등 남북 경협 사업이 진행되는 속도와 미국의 제재를 통한 비핵화 원칙이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비건 대표가 ‘한미 공조’를 강조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회담을 내년으로 미뤄놓고 있는 상황.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산림협력 등 남북협력사업과 종전선언 등 군사적 사안을 ‘연내 추진’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이에 비건 대표는 임 실장과 대북제재 면제 여부를 조율하면서도 속도 조절을 주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건 대표가 ‘물리적으로’ 한반도를 찾을 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비건 대표가 방한하면서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다만 미 국무부는 비건 대표의 방한 중 북한과의 접촉은 예정돼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비건 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의 실무회담 접촉은 ‘톱다운’ 방식으로 먼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인사’와의 회담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2차 북미정상회담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미국 내에서 북한 고위인사와 회담이 열리기를 고대한다고 지난 19일 미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외교가에서는 고위급회담이 미 중간선거 이후인 11월 둘째주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와 관련, 한 외교전문가는 “전체적으로 톱다운 협상 기조인 만큼, 고위급 회담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그 이전에 실무협상이 열리기보다는 고위급 회담 후에 실무협상을 열어 2차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마지막 조율을 하게 되는 경로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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