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17건 확인...시민에 성추행·성고문도
피해자 지원 절실...추가 조사 진행 의지 있어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됐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31일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내용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과 성고문 등 여성 인권침해 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서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는 지난 5월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증언이 나온 것을 계기로 6월부터 10월 말까지 관련 내용에 대해 공동조사를 했다. 공동조사단은 피해 접수·면담,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 검토, 5·18 관련 자료 분석 등의 방법으로 조사를 해 중복된 사례를 제외하고 총 17건의 성폭행 피해사례 등을 확인했다.

성폭행의 경우 시민군이 조직화되기 전인 민주화운동 초기(5월 19일~21일)에 광주 시내에서 대다수 발생했고, 피해자 나이는 10대~30대였다. 직업은 학생, 주부, 생업 종사 등 다양했다.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착용한 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고,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 무늬 군복만 봐도 속이 울렁 거린다고"고 증언했다.

연행·구금된 여성 피해자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성고문을 비롯한 각종 폭력행위에 노출됐다. 또한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등 여성 인권침해행위도 다수 있었다.

공동조사단의 접수창구를 통해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12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상담 종결된 2건을 제외한 10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7건은 성폭행, 1건은 성추행, 2건은 관련 목격 진술이었다.

피해일은 1980년 5월 19일~21일경이 대다수였고, 장소는 초기 광주 시내에서 중후반 광주 외곽지역으로 변화했다. 이는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를 통해 확인한 병력배치 및 부대 이동 경로와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 아울러 피해자 진술과 당시 작전상황을 비교·분석한 결과 일부 피해사례의 경우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를 검토한 결과 성폭행 12건을 포함해 총 45건의 여성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내용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성폭행 관련 내용 12건, 연행·구금 시 성적 가혹행위 등이 33건으로 나타났다. 다만 심의자료 상 피해자의 개인 정보열람이 제한돼 면담 등 추가적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향후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추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출범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6월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출범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사단 "'국가폭력 트라우마 센터' 건립 필요"

공동조사단은 피해자 면담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5·18에 대한 이해와 상담 경험을 동시에 가진 전문가를 조사관과 함께 파견해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전문 트라우마 치유기관에 심리치료를 연계했다.

공동조사단은 그간 활동을 바탕으로 피해자 명예회복과 지원, 가해자(또는 소속부대) 조사, 향후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과정에 있어 다음과 같은 사항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 관련, 국가의 공식적 사과 표명 및 재발 방지 약속,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를 위한 국가 수준의 '국가폭력 트라우마센터' 건립,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 분위기 조성, 보상 심의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구제 절차 마련 등이다.

공동조사단은 이번 조사 결과가 담긴 관련 자료 일체를 향후 출범 예정인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관해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 인권침해행위와 관련된 추가 조사가 진행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번 공동조사단의 조사는 진실 규명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제약 등으로 당시 일어난 성폭력 전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여성가족부 측은 전했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 전까지 '광주광역시 통합신고센터'에서 지속적으로 신고접수를 받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피해자 면담조사 및 여성가족부의 피해자 심리치료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다.

공동조사단장인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과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조사는 그간 사회적 논의의 범주에서 소외됐던 5·18 관련 여성인권 침해행위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처음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확인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동조사단은 용기 내어 신고해주신 신고자 분들 뿐만 아니라,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기억 속에서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는 모든 피해자분들께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며 "앞으로도 진실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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