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9일 새벽 5시께 서울 종로구 모 고시원 3층에서 큰 불이 나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이번 사고는 화재 등 사고에 매우 취약한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다시 일깨워주는 ‘인재’였다. 피해자는 대부분 5~60대의 일용직 노동자로, 고단한 노동 후 잠든 새벽 불이 나 참변을 당했다.

화재로 완전히 녹아내린 고시원 간판. (사진=김혜선 기자)
화재로 완전히 녹아내린 고시원 간판. (사진=김혜선 기자)

화재 당시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5시5분. 3층 출입문 부근에서 시작된 불은 소방관 100여명과 장비 30여대가 투입된 끝에 2시간만인 오전 7시께 완전히 진압됐다.

당시 고시원 3층에서는 26명이, 4층 옥탑방에서는 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중 구조된 인원은 모두 18명으로 나머지는 스스로 화재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구조된 인원 중 7명은 CPR(심폐소생술) 등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망했다. 2층 고시원에 살던 24명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날 대부분의 사망 피해자들은 5~60대의 일용직 노동자로 모두 남성이었다. 소방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심야 시간대이고 대부분 근로자들이 계시기 때문에 새벽 시간이고 해서 아마 출입구가 봉쇄됨에 따라 대피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나머지 실에 있는 분들이 대피하려 나오더라도 출입구가 이미 거센 불로 막혀서 대피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피해자는 대부분 5~60대의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사진=뉴시스)
이날 피해자는 대부분 5~60대의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사진=뉴시스)

처참한 현장…“비명 지르는 소리 들었다”

오전 11시께 피해 고시원은 화재 진압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매캐한 냄새가 흘러넘쳤다. 고시원 앞에는 현장 수습과 브리핑을 위해 나온 소방당국 관계자들과 취재진들, 인근 주민 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화재가 발생한 3층 창문은 불길을 견디지 못해 모두 터진 상태였다. 3층 창문 바로 위에 붙어있는 간판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렸다. 1층 출입구 역시 새까만 그을음이 가득했다.

출입문 외 ‘비상탈출구’로 보이는 3층 문은 난간이나 계단이 없어 바로 열면 ‘낭떠러지’였다. 그나마 2층 비상탈출구는 철제로 만든 난간이 있었지만 아래쪽으로는 연결돼 있지 않았다.

3층 비상출입구는 난간이나 사다리가 없어 열면 바로 낭떠러지다. (사진=김혜선 기자)
3층 비상출입구는 난간이나 사다리가 없어 열면 바로 낭떠러지다. (사진=김혜선 기자)

이날 현장에서 두 번째로 화재신고를 했다는 인근 주민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불이 크게 난 것을 보고 새벽 5시3분께 화재신고를 했다. 이미 접수가 돼 있다고 하더라”며 “새벽에 ‘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당시 긴급한 상황을 전했다.

스프링클러 없고 화재경보 작동 안 해

문제의 고시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자체가 없는 노후된 건물이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가 난 고시원은 1983년 지어져 당시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3층 출입구 외에도 완장기로 빠져나가는 비상탈출구가 있었지만, 당황한 피해자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게 소방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시원 2층에서 약 2개월간 거주했던 B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불이 났다는 외침에 잠에서 깼는데 불길과 연기가 복도를 타고 빠르게 번졌다. 휴대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화재 경보를 들었느냐는 질문에 A씨는 “화재 경보음이 들렸으면 피해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라며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A씨는 “소화기 등은 비치돼있었지만 많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른다”며 “피해가 큰 3층 분들은 서로 술자리도 갖고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다.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는 “방과 복도가 좁아서 제때 대피를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등기소 등본에 나온 고시원 3층 면적은 140.93㎡로 약 42평형 남짓이다. 3층이 29개실이 있던 것을 고려하면 각 호실 당 1~2평 정도의 공간에서 거주하고 있던 셈이다. 2층도 마찬가지로 같은 면적을 24개실로 쪼개 생활하고 있었다.

(사진=법원등기소 캡쳐)
(사진=법원등기소 캡쳐)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고 입을 모은다. 주거 복지 관련 시민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 이한솔 사무처장은 "이날 참사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예견된 것이라 너무 안타깝다"며 "대부분의 고시원은 화재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관련 규제가 빨리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내일(10일) 오전 합동 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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