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S보고서 저자도 “선정적으로 보도됐다” 거리두기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최근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북한에 ‘미신고 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보고서가 ‘가짜뉴스’ 논란으로 비화했다. 해당 보고서가 발표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미 민주당을 중심으로 확산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인용한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 불씨를 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사진=뉴시스/AP)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부정확하다(inaccurate)”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언급된 장소들에 관해 완벽하게 알고 있으며,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상적인 것을 벗어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서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내가 가장 먼저 알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선 것은 전날(12일) CSIS가 공개한 ‘신고되지 않은 북한: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 보고서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 약 20곳 중 13곳에 대한 내용이 담겼는데, 그 중 지난 2016년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했던 ‘삭간몰’ 기지가 현재까지 운영 중이라고 주장했다.

삭간몰 기지는 주변에 60피트(약 18m) 높이의 둔덕과 폭 20피트(약 6m)의 밖 여닫이문 2개에 둘러싸여 있다. CSIS는 이런 구조가 공습으로부터 갱도 입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삭간몰 기지에 7개의 터널이 있고 최대 18대의 미사일 이동 차량이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CSIS의 '신고되지 않은 북한: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 보고서. (사진=CSIS 홈페이지 캡쳐)
CSIS의 '신고되지 않은 북한: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 보고서. (사진=CSIS 홈페이지 캡쳐)

특히 CSIS는 북한의 미사일기지를 두고 ‘신고되지 않은(undeclared)’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미 뉴욕타임스(NYT)다. NYT는 CSIS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북한이 대규모 기만전술(great deception)을 펼쳐 왔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미사일) 기지들은 동결된 것 같지 않다.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정조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하나의 미사일 실험장을 우리에게 제공하고(보여주고) 다른 몇 개의 시설을 해체하고 대신 평화협정을 얻는” ‘나쁜 딜’을 수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미 민주당에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 의회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 또 다른 정상회담을 열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미국의소리(VOA)는 전했다. 프랭크 팰론 민주당 하원의원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북 미사일기지 위협은 ‘가짜뉴스’?

그러나 해당 논란은 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과장 보도됐다’는 비판이 즉시 제기됐다. 우선 북한의 미사일 기지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것인데다가 CSIS의 보고서의 민간위성 사진은 3월에 찍힌 것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전개되기 전이다. 무엇보다 어느 국가든 미사일기지 등 군사시설 위치와 용도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인데 ‘미신고 시설’이라는 표현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일대의 비밀 탄도미사일기지 지역 사진. 사진은 민간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지난 3월 29일 촬영한 것이다. (사진출처: CSIS)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일대의 비밀 탄도미사일기지 지역 사진. 사진은 민간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지난 3월 29일 촬영한 것이다. (사진출처: CSIS)

레온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국장은 13일(현지시간) 미국의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에 ‘북한 미사일에 관한 뉴욕타임스의 사실 오도 기사’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글에서 NYT의 보도를 맹비난했다.

시걸 국장은 “불길한 기사 리드(lede·시선을 끌도록 작성한 첫 문장)”이라며 “건전한 보도 대신 극단적인 과장법의 사용한 것이 아마도 이 기사를 1면에 올릴 수 있도록 편집자들을 설득했겠지만, 독자들에게는 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시걸 국장은 NYT 보도의 근거가 된 CSIS 보고서에서 북한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와 15개의 다른 기지가 이미 미국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며 “보고서 저자들은 그런 주장(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 역시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CSIS의 보고서의 제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보고서는 많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노넨 전 사무처장은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시험장 등 관련 시설을 신고할 의무가 없다.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설이 비밀 기지인 것은 맞다. 하지만 미신고(undeclared) 시설은 아니다. 신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청와대의 것과 일치한다.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한 어떤 협정과 협상도 맺은 적이 없다”며 “미신고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신고를 해야 할 어떠한 협약, 협상도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국정원도 14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북한 삭간몰 기지는 통상적 수준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은 관련 사항을 공동으로 평가·공유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관련 시설과 활동을 공동으로 면밀 주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문제의 보고서 제작에 참여한 학자들까지 ‘확대해석’에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보고서의 1차 저자인 조지프 버뮤데즈 CSIS 화상 분석 수석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뉴욕타임스의 보도 제목처럼 주장하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RFA와의 인터뷰에서도 “일부 미국 언론의 기사가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선정적으로 보도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누가 프레임을 씌우나

결국 삭간몰 미사일기지는 북한의 ‘화전양면술’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미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왜 NYT는 ‘가짜뉴스’ 논란을 감내했을까. 일각에서는 미 주력언론인 NYT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초부터 긴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미 정보 당국이 다 파악한 삿갓몰 기지를 마치 북한이 숨기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당파성을 가지고 정세분석을 하다 무리를 한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NYT는 그동안 ‘반(反) 트럼프’ 성향을 드러내왔다. 지난 9월에는 미 고위당국자의 칼럼을 이례적으로 익명처리해 보도했는데 제목부터가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레지스탕스의 일원이다’이다. 현직 고위 관리가 ‘익명’으로 신문에 정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을 실은 것은 유례없는 일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관리를 정부에 넘기라”며 격분하기도 했다.

해당 보도에 ‘숨은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북한의 미사일기지를 일반에 공개한 것은 미국 정부가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기획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메시지 차원에서 싱크탱크 CSIS를 통해 미사일 기지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관심은 ICBM이며 이번에 공개된 중·단거리 미사일은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삭간몰 미사일기지 논란은 미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북한 불신’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북미관계가 진전될 기미가 보일 때마다 미 강경파를 중심으로 ‘판’이 깨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CSIS가 미국 정부와 입을 맞추지는 않았겠지만 북한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미국 내에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