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집배원 특수고용직 문제..."노동자보다 못한 사장님"
쉬운 계약해지와 저임금...노조, "정규직 직접고용 하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길 가는 시민들도, 저희가 상대하는 고객분들도 집배복을 입고 배달하는 우리를 보면 모두 집배원 공무원으로 생각해요. 그런데도 우리가 개인 사업자라니 말이 되나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 유아 지회장이 집배복을 입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 유아 지회장. (사진=이별님 기자)

서신이나 중요 서류 등은 물론 한 끼 식사까지 배달을 이용하는 현대인에게 배달 노동자는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흔히 배달 노동자라고 하면 대형 트럭으로 움직이는 택배 노동자나 우체국 집배원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 중에는 도보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재택집배원'도 있다.

현재 전국에는 약 250명의 재택집배원들이 대도시나 신도시 등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배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배달 일을 시작한 여성들이 90% 이상이며, 적게는 5년에서 많게는 20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재택집배원들은 사무실 등의 일정한 공간이 아닌 이들 개인의 주거지 인근 지역에서 배달과 고객 민원 처리 업무 등을 수행한다. 이들은 집배복을 입고, 우체국의 상징 마크가 새겨진 수레를 끌며 도보로 우편물을 배달한다.

하지만 재택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다. 재택집배원들은 지난 2013년 4월부터 임금에서 3.3%의 사업소득세를 뗀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이후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6년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본지는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3일 유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제는 '특수고용직' 제도 바로 너"

2007년부터 재택집배원 일을 시작한 유 지회장은 "우체국에 소속된 타 직원들이 처우는 나아지고 있는 반면 재택집배원의 처우는 여전했다"며 "그러다 우리 월급에 3.3%를 사업소득세로 떼가겠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재택집배원이 '개인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근로소득세를 내라면 낼 수 있었다"며 "하지만 사업소득세를 떼 가겠다는 말은 참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일부 재택집배원들은 이 문제에 항의하며 업무를 3일 동안 중단했다. 그러자 우체국 측에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나왔다"며 "이때부터 전국의 재택집배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고 노조 조직 과정을 설명했다.

재택집배원이 우정사업본부 소속 배달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 신분인 이유는 이들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업무는 일반 노동자와 비슷하지만, 계약상 개인 사업자 신분이다. 계약 형식은 사업주와 개인 간의 도급 계약으로 이루어진다. 노동계에서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개인 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 중이다.

특수고용직이라는 족쇄에 잡혀 있지만, 정작 재택집배원들은 우정사업본부로부터 명확한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유 지회장은 증언했다. 그는 "계약 당시나 업무 수행을 할 때 누구도 우리가 특수고용 노동직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계약한 적이 없다"며 "2013년에 우리가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얘길 들었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개념은 노조에 들어간 이후에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 지회장에 따르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는 "우체국 내에 다른 직원들은 4대 보험이나 성과급 수당, 복직 포인트 등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받는다"며 "하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이 같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택집배원들은 업무 중에 부상을 입어도 사측으로부터 아무런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유 지회장은 전했다. 그는 "무게 약 4·50kg 이상의 수레를 끌고 일하다 보면 발목을 접질리거나 계단에서 구르기도 한다"며 "고객에게 우편물을 직접 전해주기 위해 초인종을 눌렀을 때 반려견이 달려들어 얼굴에 부상을 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택집배원이 산재처리를 받거나 유급 병가 처리를 받는 일은 없다.

이른바 '무늬만 사장'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유 지회장은 토로했다. 그는 "우리는 외견상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고용노동부에도 하소연하지 못 한다"며 "무늬만 사장인 우리가 노동권을 침해당해도 사측이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유 지회장은 "특수고용직이란 책임과 의무를 오로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는 제도인 셈이다. 이들의 대우는 일반 노동자보다 못하다"라며 "우리는 집배복을 입고 근무한다. 누가 봐도 집배원 노동자이지 '사장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이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재택집배원 정규직 직접 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지난 15일 노조 측이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재택집배원 정규직 직접 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계약 해지"라는 말 한방이면 해고

특수고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재택집배원의 일자리 역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유 지회장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계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사측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 해지'라는 말부터 꺼낸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노동자들은 쉽게 해고되기 힘든 측면이 있는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계약 해지하고 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계약 해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해고를 의미한다.

재택집배원들은 가족상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계약해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다. 실제로 올해 2월 가족상을 당한 유 지회장은 "우리들은 가족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장례를 치를 동안 내 구역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걱정부터 한다"며 "상을 치러야 해서 며칠간 배달 일을 할 수 없는데, 이를 우체국에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 지회장은 "우리가 장기간 배달을 하지 못할 거 같으면 사측은 계약 해지 이야기부터 꺼낸다"며 "상을 당했는데도 사람으로서의 슬픔을 느낄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고객들에게 민원이라도 받는 날에는 '계약 해지' 얘기가 바로 나온다"며 "이는 재택집배원들이라면 보편적으로 공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일부 재택집배원의 경우 배달 업무에 사용할 장갑을 지원해 달라고 우체국에 요구했다가 폭언을 들은 경우도 있다. 유 지회장은 "한 재택집배원이 장갑을 달라고 요구하러 우체국에 갔다가 관리자로부터 '씨X 재택 잘라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몸이 아파 배달을 못 가도, 민원 하나 들어와도, 물품을 달라고 해도 계약해지 소리가 나온다"며 "계약해지가 너무 자유롭다"고 말했다.

'개인 사업자' 타이틀은 임금에서도 불이익을 준다는 게 유 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유 지회장은 "재택집배원은 특수고용 노동직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임금체계가 매우 복잡하다"며 "우리는 시간당 임금이 아닌 배달하는 구역의 세대수당 임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유 지회장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재택집배원의 임금을 업무 시간이 아닌 배달 세대수를 기준으로 지급한다. 배달 지역 면적(85㎡ 기준)에 따라 200~250세대당 한 시간으로 계산해 최저시급 7,530원을 지급한다. 예를 들면 85㎡ 이하 지역에서 1,948세대에 배달하는 유 지회장은 하루에 약 7시간 45분을 근무했다고 인정된다. 아침 준비 시간과 민원 응대 업무를 합하면 하루 근로 시간이 8시간이 넘으나,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3.3%에 사업소득세까지 뗀다.

그는 "우리가 받는 임금은 등기 수당 200원과 배달세대 수로 나눈 최저시급이 전부"라며 "10년 넘게 재택집배원으로 일한 제 월급은 현재 약 130만 원 수준"라고 말했다. 2018년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을 월환산액 기준시간수 209시간(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으로 환산하면 157만 3,770원이다.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받는 셈이다. 

재택집배원들의 임금은 각자의 배달 세대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저임금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들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유 지회장은 "휴무 등 빨간 날은 다 임금에서 제외되고, 순수 평일만 근무일로 인정된다"며 "주휴수당이나 연차 수당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명절은 재택집배원들에게는 더욱 고통이다. 유 지회장은 "명절은 빨간 날이라 임금을 받지 않는데, 명절이 끝나면 우편물이 평소보다 많이 쌓인다"며 "명절이 끝난 후 일은 몰아서 하는데, 임금에서 깎이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노조 측이 우정사업본부 측과의 첫 교섭 상견례를 진행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지난 15일 노조 측이 우정사업본부 측과의 첫 교섭 상견례를 진행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우정사업본부와의 교섭은 시작 단계

재택집배원 노조가 우정사업본부에 가장 바라는 것은 전국 재택집배원들의 정규직 직접 고용이다. 유 지회장은 "상시집배원의 경우 일정 기간 근무를 하면 정규직이 되는데, 우리는 20년을 근무해도 직접 고용되지 않는다"며 "연차가 쌓일수록 우편물이 적어지는 것도 아니다. 싼값으로 고강도 업무를 수행해왔던 우리가 정규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법부에서도 이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노조 측은 2014년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고, 고등법원까지 승소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의 상고로 상고심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노동자로서의 교섭권을 인정받았다. 노조는 이달 중순 사측과의 첫 교섭 상견례를 진행했고, 우정사업본부 측과 교섭에 대한 기본적인 협약에 대해 논의했다.

앞으로 노조 측은 우정사업본부에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구할 예정이다. 교섭에서 노조 측은 재택집배원들의 정규직 직접고용과 임금 인상, 계약 해지 문제 등을 촉구할 방침이라 유 지회장은 전했다.

유 지회장은 "우정사업본부는 재택집배원이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우체국에 소속된 노동자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사실과 우리가 누리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누리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를 소급 적용해야 하며, 빠른 시정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유 지회장은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비정규직 문제가 많았지만, 이제는 특수고용직 문제가 더 커질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가 물러서거나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사실상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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