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상대로 연이은 승소...70년의 한 풀리나
기업에 배상 강제 난항 예상...정부 대책 마련 시급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25년 기다림 끝에 승소했다. 같은 날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해당 기업을 상대로 승소했다. 

29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법원 판결에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법원 판결에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대법원 민사 2부 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208만 원에서 1억 2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양 할머니 등은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말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 공장에 강제노역으로 동원됐다. 이들은 학교 등으로부터 '일본에 가면 돈을 벌고 공부를 할 수 있다', '일본에 가지 않으면 부모가 경찰에 끌려갈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가 일본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학교 측 설명과는 달리 양 할머니 등은 공장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리게 됐다.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 끼니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감독자로부터 구타를 당하거나 지진 피해로 부상을 입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이 패망한 뒤 귀국한 이들은 1993년 3월 일본 나고야 지방재판소에서 미쓰비시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 숨죽이며 살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이들을 억눌렀다.

수십 년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들은 2012년 10월 일본이 아닌 국내 광주지법에서 소송을 다시 시작했다.

1심 재판부는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양 할머니 등 원고들이 8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은 원고 승소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금액을 1억 208만 원에서 1억 2천만 원으로 조정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청구권"이라며 "한·일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미쓰비시중공업. (사진=뉴시스)
미쓰비시중공업. (사진=뉴시스)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승소

아울러 대법원 2부 주심 박상옥 대법관도 29일 故 박창환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23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소송에 참여한 강제징용 피해자 5명에게 각각 8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박 할아버지 등은 1944년 일본 히로시마의 미쓰비시 기계제작소, 조선서 등으로 넘겨져 강제 노역에 투입됐다. 이들 역시 근로정신대의 사례처럼 고된 노동에 시달렸으나 제대로 된 임금과 식사를 제공받지 못했다.

이후 박 할아버지 등은 일본 법원에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재기했다. 하지만 1999년과 2005년에 진행된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2007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도 패소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2000년 한국에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1심 재판부는 손해배상채권이 시효로 소멸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2심은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다행히 2012년 대법원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과거 미쓰비시와 현재 미쓰비시중공업의 연속성을 인정해 박 할아버지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보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파기환송 후 항소심은 2013년 원고 1명당 위자료 각 8천만 원씩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근로정신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같은 날 일부 승소하는 상황이 전개되자 일제강점기 때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배상을 받는 길이 열리게 될지 주목된다.

앞서 지난달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 기업에 배상을 강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아 실제 배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피해자들이 전범 기업으로부터 실질적인 배상을 받기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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