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1벌에 오리 20마리 이상 희생
국내최초 업사이클 패딩, 오리 1만마리 살렸다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에게 측은지심이란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는 마취 없이 동물을 해부하는 등 잔혹한 동물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동물이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기계’라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데카르트보다 공감의 범위가 넓은 이들이 많아졌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빨대 퇴출 붐이 일어난 것도 빨대가 콧속에 들어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이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이제는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오랫동안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살아왔지만 인간들이 동물을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뉴스포스트>는 동물을 위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5편에 걸쳐 준비했다. 동물에게까지 측은지심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편집자주>

 피맺힌 오리가슴 달래는 ‘업사이클 패딩’

온라인 의류업체 드림워커를 운영하는 서정은 대표(34)는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 헌옷 수거업체로부터 오리털과 거위털로 만든 헛옷·헌이불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버려진 패딩에서 털을 추출해 ‘업사이클 패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난 4일 <뉴스포스트>는 서 대표를 만나 국내최초 업사이클 패딩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물었다.

이 ‘미친 짓’은 서 대표가 무심코 들여다본 유튜브 동영상에서 시작됐다. 영상에서는 살아있는 거위가 비명을 지르며 털을 뽑히고 있었다. 겨울 패딩 점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위 15~25마리의 깃털과 솜털이 필요하다. 패딩을 위해 태어난 오리는 태어난 지 약 10주 만에 6주 간격으로 실컷 털을 뽑히다가 죽는다.

“저는 패션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단순히 ‘오리 죽이지 말자’는 식으로 캠페인을 여는 것보다는 소비자들도 더 공감을 가지면서 실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업사이클링(up-cycling, 업그레이드+재활용)이라는 방법을 채택한 거죠”

물론 기존에 웰론 등 대체재를 사용해 만든 패딩도 있었다. 하지만 서 대표는 15년 간 패션 업계에 종사하며 소비자들이 실제 오리털과 거위털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더 넓은 범위의 솔루션을 제시하고 싶었다. 서 대표는 “만약에 업사이클 패딩 사업이 정말 잘 돼서 다른 업체가 따라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헌옷 3,000kg, 오리 1만마리 살렸다

실제 사업은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오리털 패딩 업사이클을 시도한 업체는 여태껏 없었다는 게 서 대표의 설명이다. 파타고니아 등 세계적인 브랜드에서도 재활용 캠페인을 벌였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았다. 서 대표는 패딩 업사이클에 뛰어들면서 금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사진=드림워커 제공)
(사진=드림워커 제공)

서 대표는 구스다운과 덕다운 제품을 선별해 납품할 수 있는 헌옷수거업체와 계약해 3,000kg에 달하는 헌옷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헌옷은 일일이 손으로 뜯어서 오리털과 거위털을 추출했다. ‘오리 살리다가 사람이 죽겠다’는 얘기가 절로 나왔다.

서 대표는 “오리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체도 아니고 시설이나 설비가 없는 상태에서 해야하니까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오리털 상태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가면서 골라냈다. 직원들은 물론 아르바이트생 10여명을 고용해 뛰어들었는데도 속도가 잘 안 나더라”고 털어놨다.

쓸 수 있는 오리털 양도 적었다. 서 대표는 “1천벌을 수거했으면 1천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멀쩡한 패딩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덕다운’이라고 적혀있지만 실제로 뜯어보니 웰론 등 합성섬유로 충전한 제품도 있었고 오리털이 오래돼 쓸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또 상당수 패딩에는 생산 과정에서 들어갔는지 많은 양의 모래가 쏟아졌다.

이렇게 추출한 오리털로는 약 600여벌의 업사이클 패딩 ‘베리구스(Verygoose)를 만들 수 있었다. 약 1만마리 분량의 오리털이다. 베리구스는 ’매우 좋은‘ 과 ’거위‘의 합성어로 ’거위들이 고마워 한다‘는 뜻이다. 서 대표는 패딩 디자인도 최신 유행이 아닌 기본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오리와 거위가 죽는 것을 막자는 브랜드인데, 유행에 따라 만들어지는 패딩을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업사이클 패딩은 기존 패딩에 비해 기능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서 대표는 “전문적으로 보온성을 테스트하는 시설이 없기 때문에 새 오리털보다 좋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다만 업사이클 패딩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해 만들었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또 “기존 패딩보다 충전재를 엄청나게 많이 넣었다. 보통 300g정도 들어간다고 하면, 저희는 450g정도 넣었다”고 말했다.

서 대표의 ‘실험’은 이번달 내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베리구스 패딩은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먼저 출시된 제품은 목표치에서 400%를 달성했지만 서 대표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실은 와디즈에서 다 팔릴줄 알았는데 4~50벌 가량 나갔다.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제작완료된 패딩이 들어오는데 다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판매할지, 일반 시중에 내놓을지 내부 논의를 거치고 있다”고 전했다.

서정은 드림워커 대표. 2018.12.04 (사진=김혜선 기자)
서정은 드림워커 대표. 2018.12.04 (사진=김혜선 기자)

서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업사이클 패딩의 의미와 공감대가 얼마나 큰 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만약 이번 달 내로 모든 패딩이 팔린다면 사업적으로도 승산이 있다는 게 서 대표의 생각이다.

“이걸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수익성이 있어야지 비즈니스가 지속되겠지만 첫째로 업사이클 패딩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이런 인식이 조금 더 확산돼서 더 많은 업체가 참여하면 좋겠어요. 올해 판매 추이를 지켜보고 반응이 좋다 싶으면 컬러도 여러 가지로 내고 스타일도 더 늘리고 다른 업체와 콜라보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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