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여성과 아동, 소수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을 고발하는 책이 나왔다.

(사진=반니출판사 제공)
(사진=반니출판사 제공)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나 거주하는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통근하는 사무실은 우리 인생의 물리적 배경에 불과한 듯 보인다. 사물과 공간들의 설계나 디자인에 대해 '안전 의식'의 관점에서는 꾸준히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지만, 우리의 삶과 정신이나 생리 현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간과돼 왔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의 저자 캐스린 H. 앤서니는 환경 디자인에 주목한다. 일상의 모든 제품과 장소의 '디자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특징짓고, 편견을 만들며, 일상생활의 틀을 만든다는 것을 밝혀낸다. 우리 사회의 젠더 균형, 연령 편견, 체형 편향을 조장하는 것은 미디어나 사회적 고정관념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사 입는 옷의 치수표와 매장 구조는 남녀 양성 모두의 외모와 신체 치수에 관한 편견을 조장하고 강화한다. 학교 책상 모양과 각종 비품은 왼손잡이 차별을 당연시 한다. 여자 화장실에만 있는 기저귀 교환대나 차가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는 교외 마을 구조 등은 육아와 가사를 엄마의 몫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들 대부분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디자인들은 젠더·연령·체형·계층 등에 관한 편견을 교묘하게 조장하고, 인간 불평등을 지속한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의류와 제품·건물 설계의 개발과 생산에는 생산자의 편향이 개입한다.

이런 편향들은 단순히 사용 불편을 겪게 하는 것을 넘어서 심리, 사회, 문화, 세대 간의 간극을 넓힌다. 아울러 특정 젠더와 연령, 체형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한다. 문제는 이런 편향적인 디자인 중 실패한 디자인으로 판명 난 것들도 있지만, 표준형으로 자리매김한 것들도 많다는 것이다.

잘못된 디자인의 폐해는 이뿐만 아니다. 이 디자인들은 사용자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유행에 맞춰 높고 거대해진 침대 매트리스는 노약자에게 매우 위험하다.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어린이 옷장과 TV는 툭하면 넘어지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캡슐 세제는 그대로 아이 입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미국 평균 체형의 남성 운전자에게 맞춰 디자인된 자동차는 여성이나 평균 신장 이하인 남성들의 자동차 사고를 유발한다.

안전사고는 안전 불감증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사용 주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에서 나온 것이다. 단골 피해자는 주로 평균이 아닌 사람들 즉 평균보다 키가 작거나 뚱뚱한 성인, 여성, 어린이나 노약자, 장애인 등이다. 세상은 이들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하루하루 더 많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캐스린 H. 앤서니는 우리를 둘러싼 온갖 것들에 어떤 식의 편향이 반영돼 있는지를,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고 안전을 위협하는지를 폭로한다. 이를 통해 일상의 디자인에 관한 문제의식을 촉구한다. 나아가 우리가 디자인 주도권을 확립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 책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소비자로 거듭나는 것을 넘어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관점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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