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과 트럼프의 영웅심리②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트럼프의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열망은 대단하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트럼프는 텍사스 엑페소에서 열린 집회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훌륭한 관계’를 언급하며 “전 대통령들은 85년가량 협상을 벌여왔는데 내가 싱가포르를 떠난 건 15개월 전”이라고 자랑했다.

물론 실제로 북미간 비핵화 협상은 70여년간 지속됐고, 싱가포르 회담은 8개월 전에 열렸다. 하지만 트럼프가 ‘전임 대통령이 해내지 못한 것을 내가 해낸다’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발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웅심리’에서 비롯한 북미정상회담은 향후 어디로 가게 될까.

(사진=AP/뉴시스)
(사진=AP/뉴시스)

당초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와 그 상응조치를 두고 명백하게 이견이 갈려 교착상태를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을 기점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선 비핵화 후 조치’라는 기조가 점차 ‘단계적 조치’라는 기조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이러한 변화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전담팀에 합류하면서 이뤄졌다.

현재 트럼프의 대북전담팀은 트럼프 자신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비건 특별 대표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의사결정 체계가 형성돼 있다. 강력한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정책 전면에서 물러나고 ‘실용주의’인 비건 특별대표가 대북전담팀으로 꾸려진 것은 북한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북한전문지인 38노스 조엘 위트 대표는 최근 존 볼턴 보좌관이 북한문제에서 비껴간 것에 대해 “존 볼턴 스스로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고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실용적이고 현안파악에 빠르며, 트럼프의 북한외교 정책을 성공시키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건 특별대표의 지난달 스탠포드 연설은 트럼프 행정부가 ‘선 비핵화 후 조치’라는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단계적 접근’이라는 기조로 전환했음을 보여줬다. 당시 비건 특별대표는 북한과의 전쟁 종결을 할 준비가 됐다며 북한과 동시적이고, 병행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 북한 팀'이라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비건 특별대표가 직접 트럼프 대통령을 대면해 보고하고 있다. (사진=트럼프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 북한 팀'이라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비건 특별대표가 직접 트럼프 대통령을 대면해 보고하고 있다. (사진=트럼프 트위터)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단계적 접근’이 트럼프의 ‘북한문제 해결 열망’과 만났을 경우다. 북한과 미국은 최소한 '이번 회담에서는 1차 회담보다 구체적인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는 상황. 결국 어떤 식이던 이번 회담에서는 세부적인 비핵화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디테일 부족이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실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최근 미 언론 등에서 나오는 '스몰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스몰딜, 알고보면 빅딜?

그런데 어디까지가 ‘스몰딜’이고 어디까지가 ‘빅딜’일까.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미래핵(핵무기 고도화를 위한 핵·미사일 실험 등)뿐만 아니라 현재핵, 과거핵(이미 생산한 핵무기 등)을 모두 폐기해야 경제제재를 해제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북전담팀이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돌아서면서 하노이 회담은 미래핵·현재핵을 없애는 ‘핵동결’ 수준의 합의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고위급협상에서 ‘영변 핵시설+α’를 폐기할 용의가 있음을 피력했다고 알려졌다. 영변 핵시설은 현재 북한이 핵을 생산하고 있는 핵심 기지로, 핵확산과 수출이 가능한 곳이다. 북한이 ‘미래핵 폐기’ 카드를 이번 회담에서 꺼낸 셈이다.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도 비핵화 속도조절 발언을 꺼냈다. 트럼프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단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원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노이회담 의제조율을 위한 2차 실무진 협상이 있던 19일(현지시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재차 “(핵·미사일) 실험이 없는 한 서두르지 않는다. 긴급한 시간표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AP/뉴시스)
(사진=AP/뉴시스)

국내 보수층이나 미국의 민주당 등 강경파들은 영변 핵시설 폐기(미래핵)는 물론 북한의 핵 신고 리스트 제출(과거핵)까지가 포함되어야 ‘빅딜’로 규정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나는 우리가 비핵화 협정 대신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서 합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지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관련 목록 발표 및 비핵화 로드맵과 시간표 합의라는 두 가지 성과를 북한으로부터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과거핵·현재핵·미래핵 폐기 로드맵과 시간표를 이번 합의에서 이끌어내야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또다른 북핵 전문가들은 이러한 요구가 사실상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요구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핵물질과 핵 프로그램의 전체 리스트 제출은 일종의 ‘항복문서’로 어느 나라도 이와 같은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핵리스트 제출은 전체 핵의 ‘몇 퍼센트’를 신고하는지, 신고한다면 어느정도 수준까지 공개하는지 등 복잡한 협상과정이 필요한데, 이는 현재 비핵화 협상 진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북한은 미국과의 신뢰가 구축될 때까진 적국에 공격대상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은 핵시설 신고·사찰·검증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압력으론 신고·사찰·검증을 달성할 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과거핵·현재핵·미래핵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하지 않더라도, 현재핵과 미래핵을 의미하는영변 핵시설 폐기와 그 검증까지 이뤄낸다면 ‘빅 딜’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38노스 조엘 위트 대표는 “핵분열성 물질 생산을 끝내는 것(미래핵 폐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안보·평화 분야 비영리 외교정책기구인 ‘디펜스 프라이오러티스’의 대니얼 디페트리스 연구원도 미 폭스뉴스 기고 칼럼에서 “우리는 (정상회담) 성공에 대해 완전히 다른 척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티페트리스 연구원은 “워싱턴의 많은 정책입안자와 분석가, 전문가들이 집착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환상을 넘어서야 한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폐기에 초점을 덜 맞추고, 한반도의 우호적이고 예측 가능한 안보·평화 체제를 만드는 데 더 초점을 맞춰야만 성공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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