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부, CMIT·MIT 독성있다..‘인정받는 질환 더 늘어날 것’
- 피해자·시민단체, 공소시효 문제없다..SK본사 앞에서 집회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가 필러물산의 전 대표인 김모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러물산은 CMIT와 MIT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납품한 업체다. 검찰수사의 칼끝이 CMIT와 MIT에 대한 유해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처벌을 피해왔던 SK케미칼 등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CMIT·MIT 원료를 쓴 SK케미칼·애경산업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사진=뉴시스)

필러물산 전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그동안 유해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CMIT(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과 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의 유해성을 상당부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검찰수사가 탄력을 받게 됐다.

환경부의 독성영향보고서 ‘CMIT·MIT 유해’

지난 2011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에는 CMIT와 MIT에 대한 독성학 연구가 전혀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환경부는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현재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은 용역을 발주해 CMIT·MIT에 대한 독성학연구결과를 연차별로 발표하고 있다.

필러물산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지난해 11월 말 환경부가 검찰에 넘긴 가습기살균제 관련 독성영향보고서다. 환경부는 독성영향보고서에서 기존에 유해성이 있다고 밝혀진 PHMG·PGH에 더해 CMIT·MIT의 독성검사도 함께 연구했다.

환경부는 보고서에서 CMIT와 MIT의 유해성을 인정했다. PHMG·PGH·CMIT·MIT 등을 원료로 제조한 가습기살균제의 단독사용과 복합사용 등 여러 가지 유형을 비교해,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의 질환발생률을 분석한 결과였다. 검찰과 법원은 해당 보고서를 근거로 CMIT·MIT의 유해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CMIT와 MIT의 독성영향을 낮게 판단한 보고서도 있다. 지난 2018년 3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부장관에게 300쪽 분량의 '가습기살균제 피해규명을 위한 흡입독성평가와 원인 규명기술 개발'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는 CMIT·MIT에 대해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지만 폐섬유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당시 보고서는 환경산업기술원이 발주해 안정성평가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한 연차보고서 개념”이라며 “그 이후에 증류수를 수돗물로 바꾸는 등 실험요건들에 변화가 있었고, 그 결과 PHMG와 PGH가 유발하는 똑같은 폐질환을 CMIT와 MIT도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피해인정질환 늘리고, 시민단체는 기업 추가고발 예정

환경부는 꾸준한 연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가 유발한 것으로 인정되는 질환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기존의 연구에 더불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참고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코호트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또 다른 특이적인 질환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피해인정질환을 늘리기 위해서다.

환경부의 이런 노력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2011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가 처음으로 드러났을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살균제로 유발된 특이적 질환에 대해 폐가 굳어 기능을 상실하는 폐섬유화증만을 인정했다. 폐섬유화증이 특이적 질환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증의 질환인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이 폐섬유화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이어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해 폐섬유화증 이외의 질환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이에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로 야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질환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2017년에 환경부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천식이 피해인정질환에 포함됐다.

현재 환경부는 기업들이 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 분담금으로 기관지염과 폐렴 등을 가습기살균제로 발생한 인정질환으로 조정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향후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인정질환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부 연구가 진행돼 피해인정질환 범위가 커질수록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유해성 있는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거나 유통한 기업들의 책임은 무거워지고 배상액도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에게 나타나는 질환이 다양하고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줄이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을 신경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 재조사에 착수한 검찰이 애경산업, SK케미칼, 이마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 재조사에 착수한 검찰이 애경산업, SK케미칼, 이마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민단체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CMIT·MIT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필러물산 전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그동안 문제가 됐던 공소시효문제와 CMIT·MIT의 유해성 문제가 해결됐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사례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 2011년이고, 업무상 과실치사 및 중과실 치사상 혐의는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에 법조계 안팎으로 법적으로 죄를 묻는 시효가 끝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검찰이 필러물산 전 대표를 구속기소했다는 사실은 공소시효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참여연대와 가습기넷, 가습기살균제피해자협의회 등은 이르면 다음 주 종로에 위치한 SK본사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책임을 묻는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CMIT·MIT와 관련해 추가 고발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기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GS리테일과 다이소도 SK케미칼에 대한 조사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며 “두 기업도 SK케미칼이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유통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한다. 곧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이소는 CMIT와 MIT 원료로 만든 가습기살균제 '다이소 산도깨비 가습기 퍼니셔'를 유통한 바 있다.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 다이소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에 “해당 가습기살균제를 유통한 것은 맞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에 비하면 소량이기 때문에 책임 부분에서 SK케미칼 등과는 다르다”며, “보상이 될지 배상이 될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피해자들과 만나 도의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필러물산 전 대표의 구속에 대해 SK케미칼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현재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 입장을 밝히기가 곤란한 상황이다”며, “검찰조사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한편, 검찰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실무진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향후 대표 등 경영진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는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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