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이 불러온 ‘5·18왜곡 처벌법’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최근 자유한국당 소속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으로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에서 ‘5·18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을 발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면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일명 한국판 홀로코스트법인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신문, 잡지, 방송 등 출판물이나 인터넷, 공연이나 전시, 문서, 그림 등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를 모욕·비방한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 내용이 담겼다.

이런 움직임에 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이 우리 당 일부 의원의 발언을 계기로 해서 자신의 이념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철퇴를 가하겠다는 것”이라며 발끈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1일 오전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역사적 사실의 기준과 잣대도 문제이거니와, 이에 대한 해석 발언을 중범죄로 처벌하겠다고 한다”며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와 어떻게 (특별법이)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냐.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천안함 침몰이라고만 이야기해서 논란이 됐었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천안함 폭침에 대해 다른 발언했다고 해서 처벌해야 하나”고 따졌다.

반복되는 5·18망언, 법 제정 불렀다

홀로코스트는 지난 20세기 최악의 인종학살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 6백만여명의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아갔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이 잘못을 인정하고 전쟁범죄 처벌 등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나치의 학살을 옹호하고 나치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등 발언을 해 사회적 문제가 됐었다.

이에 유럽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옹호하면 형법으로 처벌하거나 벌금을 내는 등 법안을 다수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보다 희생자들의 존엄성을 상위에 둔 셈이다.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면 5년 이하의 금고형이나 벌금형을, 벨기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5천 프랑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 밖에 프랑스와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리히텐슈타인 등 여러 유럽 국가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찬양 등을 처벌하는 조항을 갖고 있다.

11일 자유한국당 역사왜곡 세력 엄단 촉구 기자회견을 끝낸 서경원 전 의원 등 5.18 단체 회원들이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1일 자유한국당 역사왜곡 세력 엄단 촉구 기자회견을 끝낸 서경원 전 의원 등 5.18 단체 회원들이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형 홀로코스트법 제정 움직임 역시 역사적 사실인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등 각종 왜곡과 비방이 지속되는 현실에 일어나게 됐다.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은 국회 공청회에서 5·18 유공자 명단에 문제가 있다거나 이들이 ‘괴물집단’이라는 등 5·18 희생자를 깎아내리고 유가족에게 큰 상처를 줬다.

특히 당시 발제자로 나선 지만원씨는 예전부터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6년 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례가 있었다. 지씨는 공청회에서도 여전히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 학살을 무력진압한 전두환은 영웅”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현행법 상 지씨의 허위주장을 처벌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지씨에는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이 혐의로 적용될 수 있는데, 명예훼손은 피해 대상이 특정돼야 처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씨의 허위사실 유포도 ‘피해 대상 특정’ 여부에 따라 처벌이 갈렸다. 지난 2009년 지씨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내 시민들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한 건은 피해자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특정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반면 지난 2008년 “5·18 당시 북한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 작전 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을 때에는 검찰이 피해자를 ‘5.18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등’으로 특정했는데, 법원은 “게시물에 의한 비난이 5.18 민주유공자들 개개인에 대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구성원의 수가 적다고 할 수 없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유럽 나라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인·부정 행위를 실정법으로 적극적으로 처벌하는 이유는 과거 나치 통치 때 벌어진 반인륜적 행위의 영향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과거 군사정권 때 빚어진 반인륜적인 행위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유럽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인·부정 행위를 처벌할 근거는 충분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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