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별사탕을 닮은 손으로 엄마의 약통을 들고 따라다녔다 한다. 스스로도 불가역한 폐질환을 앓고 있으면서 숨쉬기조차 힘든 엄마에게 죽지 말고 나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들처럼 뛰는 것이 꿈인 아이의 이야기다. 6,309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흔한’ 사연 가운데 하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인이 고통을 받는 것도 차마 모른 척하지 못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가진 인간인데, 폐꽈리가 굳는 폐섬유화증으로 숨통이 막히는 피붙이를 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가 눈앞에 있다면 누구나 달려가 돕는다. 위태로운 아이를 구하는 것은 아이의 비명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니고, 아이의 부모와 사귀기 위함도 아니며,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마을사람들의 비난이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는 오로지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일 따름이다.

맹자가 인간의 마음은 본래 선하다며 사고실험의 사례로 전한 유자입정(孺子入井) 얘기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맹자는 그보다 앞서 춘추시대를 살아간 유학의 시조 공자를 사숙했다. 그는 성인인 공자에 버금간다하여 아성(亞聖)이라 불렸다.

공자에는 못 미치지만 공자 못지않은 맹자가 유학의 기틀을 잡았다.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 인성론은 조선왕조오백년을 이끈 주류 유학인 주자학에서도 변하지 않는 상수이자 최고원리였다. 유학의 인성론은 24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양사상의 정수이자 윤리의 밑바탕이다. 맹자는 그러한 존재(Sein)를 그러해야 할 당위(Sollen)의 문제로 변모시켰다.

지난달 검찰이 필러물산 전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필러물산은 CMIT와 MIT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납품한 업체다. 현재 검찰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뒤늦게라도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의 노력은 고무적이나,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취재과정은 법인(法人)의 무인격성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SK케미칼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나 하청을 줘 제조한 업체, 또는 유통을 시킨 업체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우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 기업은 이미 한 번 아이를 우물에 밀어 넣은 격인데도 법인의 뒤에 숨어 볼멘소리나 늘어놓기 일쑤였다.  

‘나는 관계자가 아니다’라거나,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라 얘기할 수 없다’거나, ‘다른 기업에 비해 독성이 소량이기 때문에 책임 무게가 다르다’거나, 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이 여는 규탄시위에 대해서도 ‘계속 해오던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말뿐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것은 이미 때를 놓쳤다. 우물에 빠진 아이라도 건지려는 모습을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업들에게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 사건의 존재(Sein)를 넘어선 당위(Sollen)의 태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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