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10명중 8명 "月200이하 계약직" 응답
저임금·비정규직 만연..."소모품 취급 받기 십상"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보존 가치가 있는 소장품·예술작품 등이 한데 모여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인류가 남긴 뛰어난 소장품 뒤에는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큐레이터'라는 호칭으로 친숙한 '학예사'와 관람객 등 시민 교육을 담당하는 '에듀케이터', 자원봉사 개념의 '도슨트', 안내직원 등이 대표적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중 학예사는 '미술관·박물관의 꽃'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전시물 수집과 전시 기획을 담당한다. 전시물의 선택부터 연구 및 기획까지 학예사들이 맡는 경우가 많고, 이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체적인 업무를 관리·감독하기도 한다. 기술 발달 등으로 전시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어 학예사에 요구되는 역량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한국에서는 자격증 제도를 운용해 학예사를 선발한다. 자격증은 1, 2, 3급 정학예사와 준학예사로 나뉜다. 준학예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준학예사 시험 합격과 학사학위, 경력인정 대상 기관에서의 1년 실무 경력 등이 필요하다.

3급 정학예사 자격 취득에는 ▲박사학위와 1년 실무 경력 ▲석사학위와 실무경력 2년 ▲준학예사 자격과 4년의 실무경력 중 하나가 필요하다. 2급 정학예사는 3급 정학예사 자격과 실무경력 5년, 1급 정학예사는 2급 정학예사 자격과 실무경력 7년이 필요하다.

흔히 학예사라고 하면 넓은 공간에서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관람객들을 향해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지적이고 세련된 학예사의 이미지는 청년들의 선망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학예사는 '만족도 1위' 직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2015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간한 '우리나라 직업인의 직무만족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큐레이터 및 문화재 보존원'이었다.

'선망의 대상'이자 '만족도 1위 직업'이라고 회자되는 학예사.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학예사는 베일에 쌓여있다. 미디어에서 단편적으로 비춰지는 학예사의 모습 외에 이들의 실상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존가치가 있는 소장품들을 다루는 직업이다보니 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부량이 요구된다. 실제로 학예사 등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 상당수가 석사 학위 이상을 취득한 전문가다. 하지만 학예직 종사자들은 전문성에 비해 불합리하다 못해 매우 열악한 대우를 받는다고 성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지 자체 설문 조사에 나타난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 근로 조건. (표=이별님 기자/구글 설문지 이용)
본지 자체 설문 조사에 나타난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 근로 조건. (표=이별님 기자/구글 설문지 이용)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

이에 본지는 이달 13일부터 21일까지 국공립 및 사립 박물관·미술관직 종사자들과 예비 종사자들 186명(국공립 126명·사립 43명·예비 17명)을 대상으로 구글 설문지를 이용해 근로조건 실태 관련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상당수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에서 근무했다는 응답자들은 '어떤 부당 대우를 겪었냐'는 질문(중복응답 가능)에 무려 70% 이상이 '적은 임금'(80.2%)'고용 불안정'(70.6%)라고 답했다.  업무 과중(36.5%), 폭언 등 인격모독(24.6%), 초과 근무(15.1%)이 뒤를 이었으나 적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의 응답률에는 한참 못 미쳤다.

실제로 응답자 58.7%는 월 151만 원에서 200만원 사이, 27%는 월 101만 원 150만 원 사이 임금을 받았다고 답했다. 약 85%의 응답자가 200만원도 채 되지 않은 임금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적게 받은 만큼 적게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응답자 96.8%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했다고 답했다. 또한 '초과 근무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15.1%만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용불안 문제 역시 심각했다. 응답자들의 고용 형태는 대부분이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었다. 응답자 66.7%는 2년 이내 계약직으로 근무했고, 무기 계약직이 17.5%로 뒤를 이었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에서 근무했음에도 정규직으로 고용됐다는 응답은 7.1%에 불과했다.

아울러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 상당수가 처우에 불만족했다. '근무 경험 중 대우가 어떠했냐'는 질문에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와 '어느 정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등 부정적인 응답이 67.5%로 '매우 좋은 대우를 받았다'와 '어느 정도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와 같은 긍정 응답 26.2%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본지 자체 설문 조사에 나타난 사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 고용 형태. (표=이별님 기자/구글 설문지 이용)
본지 자체 설문 조사에 나타난 사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 고용 형태. (표=이별님 기자/구글 설문지 이용)

국공립·사립 모두 심각

국공립 기관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립 박물관·미술관에서 근무했다는 응답자들 역시 '적은 임금'(81.4%)과 '고용 불안정'(69.8%)에 부당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업무 과중'(44.7%)과 '초과 근무'(41.9%)과 '폭언 등 인격모독'(30.2%)이 뒤를 이었다.

임금 처우 수준도 국공립 기관 종사자들과 비슷했다. 응답자의 51.2%가 월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에 임금을 받았고, 27.9%는 월 101만 원에서 150만 원 사이의 임금을 받았다고 답했다. 국공립과 마찬가지로 응답자 대다수(90.7%)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했고, 81.4%가 초과 근무가 있었다고 전했다.

고용 형태 역시 2년 이내 계약직이 72.1%로 가장 많았다. 다만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과는 달리 사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은 인턴(11.6%)직이 정규직(7%)보다 많았다.

대우가 부당했다는 응답은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보다 많았다. '어느 정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와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와 같은 부정적인 응답은 79.1%로 압도적이었다. '어느 정도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는 응답은 18.6%이며, '매우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의 저임금 및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전문직임에도 대우가 형편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설문 조사 전체 응답자 186명 중 72.6%는 석사 학위 취득자다.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응답자도 59.1%로 과반수 이상이다.

아울러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박물관 및 미술관 종사자들의 처우는 예비 종사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비 종사자 94.1%가 정규직으로 고용되고 싶다고 응답했다. 기대 급여는 월 300만 원 이상이 47.1%로 가장 많았고, 월 201만 원에서 250만 원 사이가 23.5%로 뒤를 이었다.

학예사 처우 열악 왜?

전문가들은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이 전문성에 비해 지나치게 열악한 대우를 받는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한 바 있다. 2014년 8월 문화정책논총에 실린 '큐레이터의 고용 불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는 학예직 종사자들이 저임금·비정규직에 시달리는 원인을 일부 찾아볼 수 있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박물관·미술관계는 일자리에 비해 공급 인력이 더 많은 상황이다. 학예 인력이 언제나 대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현재 학예사 자격제도는 실무 경력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어 자격증을 얻기 위해 경력을 쌓으려는 인력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대체 인력 많다 보니 많은 학예직 종사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한 학예직 종사자는 "근무 환경이 나빠도 '대체할 수 있는 고학력 인력이 넘쳐난다'는 인식 때문에 소모품 취급을 받기 쉽다"며 "(학예직은) 언제든지 갈아 치울 수 있는 대체물로 여겨진다"고 토로했다.

현재 박물관·미술관에 근무하지 않는 예비 학예직 종사자는 "학예연구사의 경우 1년에 한 자릿수 채용에 그쳐 그 경쟁률도 100대 1에 이른다"면서 "석사 학위가 있어도 학예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경력인증기관에서만 실무경력 2년을 채워야 한다. 학사 졸업자들은 경쟁에 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의 성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점도 저임금·비정규직 문제를 강화한다 지적도 있다. 학예직이 이른바 '여초 직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초 직군보다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논문은 여성의 노동이 남성 노동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본지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80.5%가 여성이었다. (표=이별님 기자/구글 설문지 이용)
본지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80.5%가 여성이었다. (표=이별님 기자/구글 설문지 이용)

실제로 본지 설문조사에도 응답자 80.5%는 여성이었다. 일부 응답자들은 박물관·미술관 근무 도중 성차별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국공립 기관에서 근무했다는 한 응답자는 "젊은 나이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언을 듣고, 성차별을 당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논문은 한국 예술계의 관행 역시 학예직 종사자들의 처우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저임금 등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종사자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박물관·미술관 업계에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상당수의 설문 조사 응답자들 역시 한국 예술계의 부당한 관행이 '자발적 선택'이라는 이유로 당연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공립과 사립 기관을 막론하고 응답자들은 ▲야근 등 초과근무 및 주말근무 ▲경력에 대한 임금 보상이 없는 점 ▲저임금을 주면서도 석사 학위를 필수로 보는 점 등 비합리적인 관행이 업계에서 당연시 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본지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와 관련 논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학예직 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은 '박물관·미술관의 꽃'이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박물관·미술관 내에서 전문성을 갖춘 핵심 인력이지만,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설문지는 박물관·미술관 처우 개선을 바라는 응답자들의 성토의 장이 됐다. 처우 개선을 바라는 학예직 종사자들의 열망은 지면에 다 실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다음 편에서는 단편적인 설문을 넘어서 전·현직자 및 예비 종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인터뷰가 기획돼 있다. 이들을 통해 업계의 문제점을 보다 심도있게 분석하고, 더 나아가 해결점을 들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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