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토지주 "서울시 도로 인접 토지만 따로 매입, 나머지 토지 맹지 만들려 꼼수"
-서울시 "예산 부족에도 최대한 보상해 주기 위한 분할 사업 시행, 꼼수 절대 아냐"
-국가가 지정해놓고 중앙정부는 토지매입비, 관리비 등 '나 몰라라'

[뉴스포스트=홍성완 기자] 도시공원일몰제 기간이 1년 3개월여 정도 남아 있는 시점에서 토지주들과 지자체들 간 갈등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말죽거리 근리공원의 한 토지주는 “서울시가 도로에 인접한 극히 일부의 토지만 따로 사들여 그 뒤쪽 지역을 맹지로 만들고, 이를 통해 토지 가격을 떨어트린 후 매입하려는 꼼수를 부린다”고 주장하는 반면, 서울시는 “당연히 매입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여건이 안되는 상황에서 단계적으로 이를 수용하기 위함일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양 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 한 관계자는 일몰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지정은 중앙부처에서 해놓고 토지매입과 관리는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시공원 일몰제'로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공원 (네이버 항공뷰)
'도시공원 일몰제'로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말죽거리 근린공원 (네이버 항공뷰)

▲ 가시권에 들어온 ‘도시공원 일몰제’

도시계획시설상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토지에 대해 공원 조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를 해제하는 ‘도시공원 일몰제’ 상한 기간이 1년 3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10월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2020년 6월 30일이 상한 기간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예산 마련에 대한 어려움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대책을 미루다 기간이 임박함에 따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실효 대응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 7월 일몰(실효)되는 도시공원 가운데 사유지 40.3㎢를 모두 매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정부가 미집행된 도시공원의 사유지 전체를 사들이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2020년 7월 1일부터 공원에서 해제되는 서울 시내 도시공원은 모두 116곳이다. 
 
문제는 서울시를 비롯해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예산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서울시는 토지를 분할해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토지주들 “도로 인접 토지만 매입, 나머지 땅은 맹지 만들려는 꼼수”

그러나 이 과정에서 토지주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 도시공원 지정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한 토지주는 ‘서울시가 도로에 인접한 땅부터 사들여 나머지 땅들은 맹지로 만들고, 가격을 떨어지면 다시 매입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토지주는 “서울시는 토지를 강제수용 하면서 임의로 필지를 나눠 사람들 통행이 이뤄지는 바깥쪽만 토지를 매입하려고 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나머지 뒤쪽의 면적이 큰 토지들은 모두 맹지가 돼 땅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집을 예로 들면 현관문만 사고 집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제까지 토지를 사주겠다고 계속 말만 하다가 이제 와서 필지의 경계선 부분들만 사고 나머지는 안 사준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미세먼지 등으로 도심공원을 살리려는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토지주 입장에서 큰 손해를 감수하게 하는 건 부당한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현재 전국 지자체들은 도시공원 일몰제와 관련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광역시와 대전광역시 등 광역지자체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로 토지주들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의 도심공원 지정 토지주는 “서울시에서 토지를 사겠다고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매입한다고 하면 모두 사야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며 “자기들 마음대로 필지를 나누고, 개발이 이뤄질 수 있는 도로에 인접한 곳만 강제로 매입한다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2019년 서울 강남에 위치한 A 도시공원 토지보상 계획안
서울 강남 말죽거리 근린공원의 2019년 토지보상 계획안. 올해 보상 예정 토지(검정색 동그라미)를 보면 도로에 인접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토지보상 계획이 이뤄진다. (사진=제보자)

▲ 서울시 “토지주들 입장 이해하지만 꼼수 아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토지주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나, 예산에 따라 불가피하게 분할해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공원 지정 토지들을 한 번에 매입할 수 있으면 우리도 고민하지 않는다”며 “월급 100만원을 1년에 걸쳐 나눠서 준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당연히 그런 맥락에서 정황상 토지주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나, 형평성을 우선적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연히 모두 매입해 주는 것이 의무사항이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당장 사줄 수가 없어 분할해서 이를 시행하는 것 뿐”이라며 “법률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시공원 지정 토지를 보상매입해야 하는 건 명확하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당장 여력이 없으니 재정적 여건이 되는 한에서 일부라도 매입을 해 보상을 해주자는 의미로 특정인의 토지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포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토지를 먼저 산다는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우선 매입지를 선정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한 “토지주의 주장처럼 나머지 토지들이 맹지가 된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감정평가사들이 그런 부분들을 다 감안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맹지가 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토지매매 부분은 도시공원 지정 토지라는 이유로 사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 토지를 매매할 때 법적으로 하자가 있거나 이를 소유하고 있어서 손해보는 것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 갈등 해결 위해선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야

이처럼 지자체와 토지주들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금이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의 책임에서 국가가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도시공원 지정 토지주들은 재산세 등을 내며 개인 땅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왔다. 이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는 부조리함을 그 동안 국가가 방치해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 관계자는 일몰제로 토지주와 지자체의 갈등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도시공원 지정은 당시 국가에서 하고, 이에 대한 예산과 관리는 중앙부처에서 지자체에 떠넘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도시공원 지정 토지에 대해 당연히 모두 사줘야 하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매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해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에서 도시공원 토지를 지정했으면 중앙부처가 매입을 하고 지자체에 넘겼어야 하는데, 지정만 하고 토지 매입과 공원시설 건립은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라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또한 “우리가 내는 세금의 대부분은 중앙부처로 들어가고, 지자체는 중앙부처에서 예산을 찾아서 쓰는 게 대부분”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공원을 만들려면 관리비와 공사비도 발생하는데, 도시공원 토지 지정은 중앙부처에서 하고 이와 관련한 지원은 한푼도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래놓고 헌제판결이 난 이후 20년 동안 뭐했냐고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예산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서울시는 몇 년이 걸리든 도시공원 지정 토지들을 매입해 보상하겠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다.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오죽하면 지방채까지 발행하겠는가”라며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토지들을 매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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