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 3일 경남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후보자가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대통합으로 여권 주자에 나선 여 후보는 초반에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에 10%p까지 뒤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개표율 99.98%에서 강 후보를 앞질렀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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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영국 후보와 강기윤 후보의 드표 차이는 단 504표. 여영국 후보는 9만3240표 중 4만2663표를 얻어 득표율 45.75%를 기록하며 당선했고, 강기윤 후보는 4만2159표(45.21%)를 얻어 2위에 그쳤다.

개표 초반 여영국 후보는 강기윤 후보에 4%p가량 뒤처지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한때 강 후보와의 득표율이 10%p까지 벌어지자 정의당은 침울한 분위기에 빠졌고, 한국당은 승리를 예감하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반송동과 중앙동, 웅남동 등 강 후보가 강세를 보이던 지역의 개표가 끝나고 상남동·사파동 등 여 후보 강세 지역 투표함이 열리면서 점차 득표율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개표율 90%에 이르자 두 후보의 격차는 0.5%p 안쪽까지 줄었고, 사전투표함이 열리자 ‘기적의 역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개표율 99.98%에서 여 후보가 강 후보를 앞지르자 이정미 대표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여영국 후보는 이날 당선 소감에서 “이 시각까지 가슴 졸이면서 지켜봐 주신, 여영국의 당선을 바랐던 국민과 창원시민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창원시민의 승리”라며 “반칙정치, 편가르기 정치 자유한국당에 대해 창원시민들이 준엄한 심판을 한 것이다다. 권영길, 노회찬으로 이어온 진보정치 자존심에 여영국이라는 이름을 시민들이 아로새겨 주었다”고 밝혔다.

‘용접공 출신’ 여영국은 누구?

1962년 경남 사천에서 출생한 여영국 후보는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에 앞장선 ‘용접공 출신’ 노동운동가다. 그는 통일중공업(현 S&T 중공업)에서 용접공을 하면서 금속연맹, 금속노조 등지에서 활동했다.

노동운동을 하며 노회찬 전 의원과 처음 만났고, 1987년부터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인연을 맺어 함께 활동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경남 ‘노동자 정치 실천단’으로 진보정치에 처음 발을 디뎠다. 제10대 경남도의회에서는 유일한 진보정당 도의원으로 활동했다.

여 후보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역전승’에 대해 “좀 부진해도 나중에 이쪽 구역에 오면 좀 뒤집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나름대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지역에서 36년간 살고 있기 때문에 몇 번의 선거를 치러봤다. 그래서 이쯤 오면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거고, 이 지역은 어떻고 저 지역은 어떻고 대충 흐름은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 후보는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이게 잘 와닿지가 않는 그런 상황”이라며 “늘 제가 그렇게 힘든 과정들을 겪으면서 인생을 살아와서 고 노회찬 의원이 ‘역시 여영국답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창원공단 경제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창원 경제를 살리는 여러 가지 공약을 우선적으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민주평화당과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교섭 단체를 구성해서 좀 민생개혁을 주도하고 정치 개혁을 주도하는 그런 역할을 가장 먼저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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