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수 엘리트보다 평범한 민중의 시대가 도래
- 전통적인 행정 경영을 넘어 ‘민관협치’가 중요
- 평등성과 공정성의 참다운 민주주의 가치 절실

이인권 예술경영 컨설턴트
이인권 예술경영 컨설턴트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 = 이인권] 요즘 공공기관에서 ‘평가’라는 용어 쓰는 것을 자제한다고 한다. 평가라는 의미가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갑'보다 좀 더 사업 참여자인 ‘을’ 친화적 용어로 대체하려는 취지에서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관료적 냄새가 짙은 용어를 바꾸려 시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큰 변화는 의식구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 ‘군관민’의 관점에서 ‘민관군’으로 주체의 순서가 바뀐 것이 상징적으로 이를 말해준다. 한국의 현대사를 지배했던 독재정권 시대와 권위주의 시대가 퇴조했다. 그리고 민주체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사회의 곳곳에는 과거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핵심인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더욱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주민이나 소비자가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게 되는 시대다. 그래서 국가기관 공직자의 의식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어디 국가기관뿐이겠는가. 사회문화체계의 영향을 받는 일반 기업의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과 다르게 주주나 소비자의 권리가 막강해졌다. 최근 우리사회에 이슈가 된 기업을 포함 기득권층의 갑질 논란은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준엄한 민심인 것이다.

군관민 시대에는 소수 권력의 엘리트가 중심이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곧바로 사회의 문화체계를 형성했다. 더 나아가 사회의 권력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민의의 확장은 그들이 누리던 독선과 전횡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되었다.

민관군 시대에 걸맞는 다중의 평등과 참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공공 부문의 업무는 더 이상 정부의 독점이 아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새로운 공공 관리방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등장한 민관협치 개념이 ‘거버넌스'(governance)다. 이는 전통적인 행정과 경영의 차원을 넘어 새롭게 전개되는 신문화시대에 부응한 가치체계다. 거버넌스는 무엇보다도 책임성, 투명성, 참여도, 인간의 권리가 주요한 가치가 된다. 국가사회의 운영방식과 사회의 구성 틀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국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가지 축이 있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다. 이 두 개의 영역 간에 보다 신축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작용과 협력이 필요해지고 있다.

이제는 소수 엘리트 중심의 수직관계가 아니라 주민과 소비자 우선의 수평관계다. 이 관계의 새로운 설정이 결정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체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수용하고 주도적으로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이 경쟁이다.

거버넌스는 국가행정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조직 간에, 개인 간에도 충분히 원용되는 가치다. 이는 각 행위의 주체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자율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통하여 스스로 시스템을 조정해 나가는 프로세스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공공의 소유’라는 개념을 중시하는데 있다. 당연히 국가기관의 공직자가 통할하는 자원이나 재원은 당연히 국민의 공공소유다. 공직자들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가 모든 권한의 독점적 주체가 될 수가 없다. 단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아 봉직하는 청지기일 따름이다. 공직자의 대민 서비스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분야보다도 공직사회에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필요하다.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총수들은 이른바 황제경영을 해 왔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동작 하나에 조직과 구성원들이 좌지우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기업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문화체계가 정착되면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인권 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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