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 불합치...66년 만에 사라져
여성들 다수 "환영"...남은 과제도 많아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 11일 오후 2시 52분께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 여성단체 관계자가 "방금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고 흥분했다. 현장에 있던 여성계 인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렸고, 기자들은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낙태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임신중절 처벌을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전체 재판관 9인 중 4명은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 위헌, 2명이 합헌으로 판단했다.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 제정을 국회에 주문했지만, 별다른 입법안이 나오지 않으면 이후 자동으로 효력이 상실된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사회계 인사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사회계 인사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정전협정과 같은 해 태어난 낙태죄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조항은 66년 전인 1953년 입법됐다. 무려 정전협정과 같은 해에 제정된 것이다.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고, 270조는 의료인이 낙태 수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는 경제 개발 계획과 관련해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1973년에는 임신 중절을 일부 허용하는 내용으로 모자보건법이 제정됐다. 해당 법 14조는 부모가 유전적 장애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혈족 간의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될 경우에는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모자보건법은 특정 상황에 대해서는 임신 중절을 일부 허용했지만, 임신한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신의 몸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자기 결정권' 역시 보호하지 못했다.  낙태죄 문제는 이후 천주교 등 일부 종교계가 주장하는 '태아 생명권'과 대립하며 오래도록 방치됐다.

낙태죄가 헌재의 판결을 받게 된 것은 불과 7년 전인 2012년이다. 재판관 8명이 참석한 상황에서 4대4로 찬반이 갈라졌다. 위헌정족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헌재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할 수 없다"며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볍게 제재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듣고 나영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의 공동집행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듣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의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사문화 지적에도 피해 여성 有

낙태가 60년 넘게 불법인 상황에서도 임신 중절 수술은 암암리에 이루어졌다.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불법이란 이유로 여성들은 값비싼 수술비와 의료사고 위험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날 헌재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은 19세 나이로 임신중절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여성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해당 여성은 낙태죄 찬성 단체의 시술 병원에 대한 고발 때문에 수술이 미뤄지게 됐고, 뒤늦게 임신 중절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 위원장은 "찬성 단체의 악의적 고발과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면 이 여성은 사망하지 않았다"며 "2012년 헌재의 합헌 판결로 사망했기 때문에 여성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라고 울먹였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은 낙태를 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2012년 합헌 판결 후 2017년까지 5년간 낙태죄 신고자 대부분이 전 남편이나 전 남편 가족, 전 남자친구라고 보도한 바 있다. 헌재는 이번 판결에서 "자기낙태죄 조항이 상대 남성이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명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2012년 합헌 결정 후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낙태죄 이슈는 2016년 보건복지부가 '불법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료법 개정을 예고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여성들은 검은 옷과 소품 등을 착용한 이른바 '검은 시위'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일부 여성들은 낙태의 불법화 때문에 자신이 입은 피해를 눈물로 고백해 낙태죄 폐지 여론에 힘을 실었다.

과거 숨겨야 했던 치부에서 이제는 대표적인 여성계 이슈가 된 낙태죄 문제를 정부는 더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2017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태아 대 여성의 대립 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혀 천주교 등 종교계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환영하지만, 남은 과제 많아"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1953년에 탄생한 낙태죄는 무려 66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사라졌다. 낙태죄의 '사망선고' 소식에 여성들은 직업과 연령대를 막론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내고 있다. 가수 설리는 SNS에 "영광스러운 날이다. 모든 여성에게 선택권을"이라고 말했다. 혼성밴드 자우림 김윤아와 배우 손수현, 이영진 등도 헌재 결정을 지지하는 글을 남겼다.

현재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 A모(26) 씨의 감회는 더욱더 남달랐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는 지난해 낙태죄를 폐지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바 있다. A씨는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본지 취재진에게 "'세상이 바뀌는구나. 대한민국도 희망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A씨는 특히 아일랜드와 한국의 낙태죄 폐지 상황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 아일랜드는 비슷한 시기에 탈식민지를 한 국가"라면서 "근현대사의 흐름이 비슷해 신기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진행해 유효 투표 60% 이상의 찬성으로 낙태죄를 폐지 시켰지만, 한국은 헌재가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두 나라 모두 낙태죄가 폐지됐으나 차이는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서울 마포구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B모(27) 씨의 반응은 낙태죄 사라졌음에도 이 문제에 대한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본지에 "낙태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정말 분노했다"며 "낙태죄가 사라졌으니 무분별하게 성관계를 해도 된다는 식의 댓글이 적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낙태를 임신 몇 주 까지 허용하느냐도 치열한 쟁점으로 남았다. 헌재는 임신 22주라고 명시했지만, 이는 확정 사안은 아니다. 낙태 수술에 건강보험 적용할지 , 낙태 약물 을 승인할지, 의료인 양성 과정에서 임신중절을 어떻게 가르칠지 등에 대한 문제도 있다. 아울러 낙태 반대론자와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뤄야할 것인지도 여전히 숙제다.

여성계에서도 안전한 임신 중단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존 모자보건법의 완전한 재검토와 성교육을 포함한 교육정책, 보건의료 정책에서의 성평등 보장 등을 촉구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 출산을 한 여성에 대한 정책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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