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주택 소득기준 '경단녀' 두 번 울린다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그가 달라졌다. 청운의 꿈을 품고 부산에서 상경한 스무 살 청년은 PC방에 터 잡고 밤새 스타크래프트로 손가락운동을 하던 동문들과도, 휘경동 파전골목을 전전하며 막걸리 마시는 일로 청춘을 허송세월했던 나와도 달랐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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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3년은 하고 5년은 선방이라는 CPA(공인회계사 시험)도 군대 다녀와 1년6개월 만에 척, 하고 해냈던 그였다. 동문들과 성실히 어울리면서 거둔 성과였으니 초록은 동색이요, 근주자적이고 근묵자흑이라는 옛말을 무안케 한 친구는 졸업 후 대한민국 4대 회계법인 가운데 한 곳에 입사했고 나는 기자가 돼 여전히 막걸리를 마셨다.

대학졸업 후 하루하루가 분주하고 섧다보니 동문들과 교류가 뜸했는데, 재작년에 오랜만에 그 친구와 식사를 함께 했었다. 당시 그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회계사 합격 후 언제나 멀끔하게 차려입고 모교에 와 수험생활 중인 동문들에게 식사 한 끼 사주던 그는, 잠잠한 정열과 무자비한 자기부정의 향내를 풍기는 수험생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 간담회 갔다가 너네 회계법인 상무 만났어. 요즘 일은 좀 어때?
- 법인 그만 둔 지 꽤 됐어(웃음) 지금은 다른 일 해.
- 금감원 준비한다는 소식 들었는데 거기야?
- 집 근처 독서실관리하고 있어. 내년에 다시 법인 가려고.

친구가 법인을 그만 두고 프랜차이즈 독서실관리를 하게 된 사연인즉 이랬다. 결혼을 하려는데 그동안 모든 돈으로 서울에 집을 얻기가 불가능했더라는 얘기다.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해 당연히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뭔 소리야?’ 
 

▲ ‘월소득 500만원 이하’라는 행복주택 입주자격의 굴레

친구는 서울지역 행복주택에 입주해 몇 년간 돈을 모은 뒤 청약을 받아 아파트를 자가로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설명했다. 본래 금감원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법인을 그만 뒀는데 복직을 하려고 보니 결혼을 앞두고 집이 문제였다는 거다. 재학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던 그였다. 집안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 행복주택. 하지만 행복주택의 입주조건은 깐깐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3월 발표한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기준에 따르면 신혼부부가 행복주택에 입주하기 위해선 △예비신혼부부이거나 결혼 7년 이내일 것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일 것 △세대소득이 평균소득의 100% 이하일 것 △세대내 총자산이 2억8,000만원 이하일 것 △보유한 자동차가 2,499만원 이하일 것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행복주택 입주조건은 해마다 바뀌는 소득금액 기준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신혼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집이지만 행복주택 입주조건은 만만치 않다.(사진=pixabay)
신혼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집이지만 행복주택 입주조건은 만만치 않다.(사진=pixabay)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신혼부부 주택 특별공급 운용지침’ 제9조에 따르면 행복주택 등을 공급받고자 하는 자는 월평균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100퍼센트 이하여야 한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엔 120% 이하다.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 기준은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자료에 따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은 3인 이하 가구기준으로 △2017년 4,884,448원 △2018년 5,002,590원 △2019년 5,401,814원 등이었다.

그 친구의 경우 지난해 행복주택 입주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3인 이하 가구 맞벌이 부부 기준으로 월평균소득이 6,003,108원을 넘게 되면 신청자격이 되지 않았다. 

친구는 이 가운데 세대소득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 기준을 상회하는 연봉을 주는 법인으로 복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예비신부가 직장을 그만 둘 수는 없고 내구연한이 있는 자기가 복직을 미루는 선택을 했다고 덧붙였다. 내구연한은 회계사들 사이에서 서로의 근속연수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회계법인 임원인 파트너가 되지 못하면 법인 소속 회계사로 오래 남지 못 한다. 파트너가 되는 것은 바늘구멍 통과하는 일이라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행복주택 소득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일을 마냥 쉴 수도 없었다. 신혼부부 주택 특별공급 운용지침에 따르면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기준으로 1년간 일한 총급여액을 재직한 기간으로 나눠 산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평균소득을 낮춰줄 정규직 직장이  필요했다. 

행복주택 신청자격을 둘러싼 이런 촌극은 비단 그 친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복주택은 경단녀(결혼과 육아 등으로 퇴직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복직에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결혼 후 7년까지 행복주택을 입주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출산 후 행복주택에 지원하려는 가정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자신이 복직하면 행복주택 소득기준을 초과하게 돼 복직을 망설이는 경단녀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의 사연을 직접 보기도 한다. 한 지인은 출산 후 복직을 위해 행복주택 입주조건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기간까지 연봉을 낮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웃픈’ 사연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기도권 빌라에 전세로 거주하는 한 지인은 “서울에 위치한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하루에 드는 차비만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를 합해 7,200원이고 출퇴근시간은 왕복 3시간”이라며 “한 달로 치면 차비가 14만4천원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혼 6년차인 그는 서울지역 행복주택을 넣고 싶지만 맞벌이 부부로 소득기준이 넘어 지원자격이 없는 상황이다.  

그는 또 “금수저가 아닌 이상 외벌이로는 어떤 회사를 다니든 연봉이 얼마든 월급으로 집을 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완성차업계와 이통3사 등 대기업에 다니는 관계자 중 한 명은 기자에게 “혼자 벌어 지천명의 나이가 돼서야 대출받아 도봉구에 아파트 한 채 샀다”며 “여든까지는 갚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 행복주택이 뭐 길래?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행복주택 정책을 꾸려왔다. 행복주택은 신혼부부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을 대상으로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주거비부담을 완화해주는 공공임대주택 개념이다. 그린벨트나 도시 외곽에 지어졌던 공공주택과 달리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또 행복주택이 들어서는 입지는 주변에 도서관과 국공립 어린이집, 체육시설, 복지관, 프리마켓, 쌈지농장 등 주민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거나 행복주택과 함께 설립된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행복주택. (사진=이상진 기자)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행복주택. (사진=이상진 기자)

대학생과 청년 등은 최대 6년 동안 거주할 수 있고 신혼부부와 한부모 가족은 최대 10년 동안 거주가 가능하다. 대상과 지역에 따라 보증금이 5천만원~1억원, 임대료는 월 10만원~20만원 수준이고 전용면적은 36제곱미터~45제곱미터 정도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1분기에 △수도권 4,945호 △비수도권 1,538호 등 행복주택 입주자를 6,483호를 모집한다고 지난 3월 밝혔다. 또 2분기부터는 분기별로 △수도권 14,177호 △비수도권 5,569호 등 2만여 호에 대해 추가모집을 할 예정이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의 ‘2019년 1차 행복주택 입주자모집 최총 청약경쟁률’에서는 1,743호 모집에 19,889명이 몰려 평균경쟁률 11.4:1을 기록했다.

친구는 결국 목표로 하던 행복주택 입주에 성공했다. 해피엔딩인데 뒷맛이 씁쓸한 구석이 있다. 법인 재취업은 생각보다 늦어져 올해 초 복직한 것. 행복주택 소득기준에 대한 현실적인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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