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판소리 전공 박사 학위 코 앞...세계 판소리 전도사

  가냘픈 몸매, 한국적인 이목구비를 갖고 있는 소리꾼 이선희(29,여)씨는 이화여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논문만을 남겨 놓은 상태. 국악 관련 박사들은 많은 편이지만 판소리 전공 박사는 아직 없다. 이번 학기만 마치면 최초의 판소리 전공 박사가 탄생한다. 젊은 나이에 소리에 빠져 버린 이 씨. 전라도 목포 출신인 이 씨는 고장의 특성상 어릴적부터 국악과 쉽게 접했다고 한다.

“당시 목포에서는 국악 관련 학원들이 많이 생겨났었다. 또한 부모들의 국악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6살 때 목포 시립국악원을 다니면서 판소리를 처음 접하게 됐다”

그곳에 가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같이 부채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게 마치 놀이처럼 느껴졌다고.

“그곳의 선생님들이 소리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해서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우게 됐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외삼촌의 권유 때문이다.

외삼촌은 ‘판소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길로 어머니는 짐을 싸서 나를 서울로 유학 보내셨다”

그녀의 어머니는 호탕하고 자식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항상 어떤 일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머뭇거림이 없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강요는 절대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이 씨의 의견을 가장 먼저 경청한다고 한다.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 이 씨도 어떤 일이든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결정이 되면 강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이 때문일까. 판소리를 하면서도 이 씨는 자기개발에 소홀하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에는 수필 강의를 듣고 일본어 공부도 병행한다.

이런 이 씨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사춘기 시절 목소리에 변성기가 와 소리를 못할 입장에 놓였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판소리를 하는데 나는 목소리가 올라가지도 않고 조금만 소리를 내도 금세 쉬어버렸다. 당시엔 정말 이러다 뒤처지는 게 아닌가 싶어 심각히 고민했다”

특히 판소리의 경우 목소리 변화에 민감해 자칫 소리를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목에 좋다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었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원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노력 끝에 이 씨는 1990년 전국판소리 경연대회 학생부 금상을 수상했고 이후 많은 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각광받았다.

현재 이 씨는 명창 안숙선 선생에게서 소리를 사사 받고 있다.

“내가 닮고 싶은 분 중에 한분인 안 선생님은 예의범절에 어긋난 음악은 본질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런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소리를 한다”

그녀는 말한다. 목표를 정해 놓고 한정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다만 판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라고.

“보다 쉽게 판소리를 접하고 재밌게 알리기 위해 내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영국의 비틀즈처럼 대중에게 다가가 전 세계적으로 판소리를 사랑받게 하고 싶다”

젊은 소리꾼 이선희. 그녀의 판소리 인생은 이제 1막 1장을 채우고 있다. 앞으로 그녀가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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