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북러회담 후 급박해진 김정은
단거리 발사체로 ‘저강도 도발’ 속내는?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 4일 오전 9시 6분~0시 55분경 북한이 함경북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수십여발을 발사하면서 하노이 노딜 이후 진전이 없던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남한과 북한, 미국 모두 북한이 쏘아올린 발사체를 ‘미사일’로 단정하지 않으면서 비핵화 논의를 끌어가려고 노력 중이지만,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결국 비핵화 논의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전술유도무기의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2019.05.05. (사진=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전술유도무기의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2019.05.05. (사진=노동신문)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발사한 다수의 단거리 발사체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한 240㎜와 300㎜ 방사포 등이다. 이중 수발의 단거리 발사체는 고도 약 20∼60여㎞로 약 70~240여㎞를 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미는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의 세부 탄종과 제원을 공동으로 정밀분석 중이라고 밝힐 뿐, 구체적으로 ‘미사일’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고 있는 상태다. 지난 6일 국정원은 국회 정부위원회 비공개보고에서 미사일 여부를 묻는 위원들에 “답을 할 수 없다”면서 “이번 발사는 과거처럼 도발을 위한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역시 ABC방송 ‘디스 위크’ 등에 출연해 “(북한 발사체가) 중장거리 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은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나 북미간 모라토리엄(동결) 선언의 취지와는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어서 향후 비핵화 협상 판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 13시간여 만에 자신의 트위터에 “김 위원장은 내가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합의는 성사될 것(Deal will happen)”이라고 대화 유지 의사를 명백히 밝혔지만, 미 온라인 매체 ‘복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속았다고 생각해 격노했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저강도 도발 속내는?

북한은 지난 2월28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오다가, 3월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을 “강도같다”고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일에는 관영언론을 통해 최근 공중과 해상에서 열린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서푼짜리 힘자랑으로 얻을 것은 세인의 조소와 비난뿐”이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지난달 25일 북러정상회담을 갖고 풀리지 않는 경제재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통적 우방국인 러시아와의 밀착에도 북한이 바라는 ‘경제적 지원’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당시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요구했고, 이에 김 위원장이 불만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이번 북한의 발사체 사태는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상응조치’에서 미국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우방국인 러시아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나왔다. 북한이 발사체 발사 이후 관영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도 미국을 겨냥한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7일 군사당국으로부터 비공개 보고를 받은 후 “북한이 이를 언론을 통해 보도한 이유는 한국과 미국에 시그널(신호)을 주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 내 군부 등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체제를 결속하기 위한 목적이 있지 않나 한다”고 설명했다. 또 “만일 도발 의도였다면 예전처럼 새벽에 미상의 장소나 도로 위에서 발사했을 텐데 오전 9시에 개방된 장소에서 훈련 중 발사한 것은 타격 훈련이었다는 것이 나름의 평가”라고도 밝혔다.

발사체 그림자 뒤엔 新강경파 대미라인

리용호 외무상(좌)과 최선희 부상(우) (사진=뉴시스)
리용호 외무상(좌)과 최선희 부상(우) (사진=뉴시스)

최근 대대적으로 물갈이된 북한의 대미라인이 기존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강경파’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대미라인은 당초 군부 출신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도맡아왔다.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점차 누그러질 무렵 북한은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 부위원장을 비핵화 실무라인으로 내세웠고, 김영철 부위원장은 1차 북미정상회담 직전 미국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 전하는 등 전방에서 뛰었다.

하지만 지난달 11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기점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소속된 국무위원회에는 그동안 대미 협상에서 강한 목소리를 냈던 통일전선부 라인이 뒤로 물러나고 외무성 인사가 대폭 강화됐다. 특히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새로운 국무위원으로 편입되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며 ‘미국통’ 입지를 강하게 굳혔다.

실제로 김영철 부위원장은 앞서 북러정상회담에 동행하지 않고,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배석하면서 향후 비핵화 협상은 이들이 끌고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비핵화에 소극적이었던 김영철 부위원장 대신 리용호·최선희가 비핵화 협상팀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라고 분석한다.

다만 이들도 만만치않은 ‘강경파’라는 주장도 나온다. 최선희 부상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회담을 코앞에 두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부르는 등 거침없는 강경발언을 해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7일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연 정책 컨퍼런스에서 “리용호와 최선희 모두 강경한 성향의 인물들”이라며 “ 그들이 김영철처럼 군부의 이익을 대변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군부의 이익에 반대되는 비핵화 협상 방안을 작성해 김 위원장에게 제시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본부장은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인 공정표를 만들어 미국과 1차적으로 합의를 본 후 특사를 통해 또는 제6차 남북정상회담(또는 제4차 문재인-김정은 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같은 해법을 청와대와 외교부의 제한된 역량만으로 도출해내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외교와 안보, 북한과 미국 전문가들 및 핵과학자와 핵기술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한반도 비핵․평화 T/F’를 청와대나 외교부 산하에 구성하는 것을 더는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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