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그 후...
한국당은 장외투쟁 민주·바른 원내사령탑 교체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달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공조로 선거법·고위공직자수사처·검경 수사권 조정 등 개혁입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이후 후폭풍으로 국회는 전면마비 상태다. 한국당은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고 전국 장외투쟁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원내사령탑이 교체됐다. 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각 당의 사정에도 ‘목표’는 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 내년 4월 예정된 총선이 그것이다.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에 ‘범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은 홍영표 전 원내대표가 임기 만료되고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하며 향후 정국에 대비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3선의 이인영(54·구로갑) 의원이 125표(총 128명 중 3명 불참) 중 76표를 얻어 선출됐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민주당 의원들의 이 같은 선택은 당내 주류인 친문 세력 견제의 의미가 강하다. 이해찬 당대표는 대표적인 친문계고, 홍영표 전 원내대표 역시 친문으로 분류되는 인사여서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친문 일색이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 신임 원내대표는 이른바 ‘86세대’로 불리는 운동권 세대의 대표주자로 범문(범 문재인)파에 속한다. 이 원내대표는 선거 운동에서도 “당의 얼굴은 ‘모노톤’이 아닌 ‘듀얼톤’이어야 한다”고 변화를 강조했다. 결과는 박빙이 예상됐던 ‘친문(친 문재인)’ 김태년 후보를 27표차로 크게 제쳤다. 민주당의 이미지가 친문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출신 친문’이 내년 총선에 대거 몰려오는 게 아니냐는 당내 우려도 한몫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목표로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행정관들의 구체적인 이름도 오르내리는 상황.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면 내년 1월까지 당비를 6회 이상 내야 하는데, 늦어도 8월 부터는 청와대에서 나와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 이에 오는 7~8월 사이에도 청와대 행정관급 인사들의 추가 사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원내대표가 신임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되면서 당내 다양성이 확보되고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원내대표 역시 이날 취임일성에서 “당내에는 정말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고 있었다. 타당한 견해였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옳다. 개인의 의견보다 집단의 사고를 모으면 더 많은 정책혁신과 성과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반면 계파별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단일대오’였던 민주당에서 갈등과 분열이 드러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 외에도 이 원내대표는 전국 장외투쟁에 나선 한국당을 달래 국회로 돌아오게 하는 숙제를 맡았다. 현재 국회는 잇따른 파행으로 개혁입법은 물론 지난 강원 산불 추가경정예산 등 일거리가 산적해있는 상황.

이 원내대표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나 국회정상화를 최우선으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9일 첫 정책조정회의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를 만나면 우선 한국당의 입장을 경청하고 국회 정상화를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겠다”고 말했다.

한편, 충북 충주 출신인 이 신임 원내대표는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1990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의장을 역임하며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을 통해 지난 2000년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구로갑에 출마,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18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이후 19대와 20대 국회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 중진의원이 됐다.

 

‘텃밭’가꾸는 한국당 장외투쟁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전국 장외투쟁에 나선 상황. 그러나 황 대표의 장외투쟁은 TK·PK지역을 중심으로 한 ‘보수 텃밭’에 집중됐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2일 서울역을 방문해 패스트트랙 반대 집회를 열었고, 같은날 대전역, 동대구역, 부산 등에도 방문해 집회를 이어갔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하지만 3일 방문한 광주·전주 호남지역 집회에서는 일부 시민이 달려들어 황 대표에 물병에 든 물을 뿌리고 거센 항의를 받는 등 호된 수모를 겪었다. 결국 쫒겨나듯 호남 집회에서 빠져나온 황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영남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국민 속으로 민생투쟁대장정’을 시작했다.

황 대표의 장외투쟁은 오는 25일까지 영남→충청→호남→수도권·강원 등 전국을 순차적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지만, 첫 순회일정을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잡으면서 ‘집토끼 단속’을 단단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자리에서 황 대표는 ‘한국당을 중심으로 뭉쳐야 산다’는 한 지지자의 당부에 “ 이 말씀들이 다 정말 애국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황 대표는 “끼니때가 되면 지역 사람과 식사를 하고, 마을이든 경로당이든 재워주는 곳에서 잠을 자겠다”며 첫날에는 경남 거제시 신동노인회관에서, 8일에는 울산 다개리 마을회관에서 숙박했다. ‘뚜벅이 유세’로 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다.

황 대표는 장외투쟁 중 청와대를 겨냥한 발언의 수위를 날로 높이고 있다. 황 대표는 울산 매곡산업단지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책 수정 불가를 선언하고 좋은 통계를 찾아서 홍보하라는 특별팀까지 만드는데 이는 국민 삶이 망가지든 말든 눈과 귀를 가리고 속일 궁리만 한다”며 “청와대에 앉아서 조작된 보고만 받지 말고 지금이라도 절망의 민생현장으로 나와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황 대표의 이같은 행보가 ‘민생투쟁’이 아닌 ‘대권투쟁’이라고 비판했다. 홍영표 전 원내대표는 8일 “(한국당이) 민생투쟁 대장정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대권투쟁이다. 황교안 대표가 대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국회를 볼모로해서 국회를 파행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황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좌파세력은 자유한국당의 민생대장정을 대권투쟁이라고 폄하한다”며 “당신들이 망가뜨린 민생에서 나오는 고통의 절규를 제대로 들어봐라. 당신들은 국민의 겉에 있고, 저는 국민의 속에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한국당은 이번 장외투쟁으로 민주당과 지지율 격차가 1.6%p까지 좁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최소치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는 tbs 의뢰를 받아 지난 7∼8일 전국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3.7% 포인트 하락한 36.4%, 한국당은 1.8%포인트 오른 34.8%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호남,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서울, 20대, 30대, 60대 이상 등 전 연령층, 중도층과 진보층 등 대부분 지역과 계층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당은 한국당 지지율은 서울, 충청권, 호남, 부산·울산·경남, 30대, 40대, 중도층, 진보층에서 주로 상승했고 경기·인천, 대구·경북, 60대 이상에서는 하락했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바른미래, 김관영 전격사퇴 ‘기호3번’ 지킬까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에 캐스팅보트를 던진 바른미래당은 지도부와 의원 사이 분쟁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다가 결국 김관영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했다. 임기 만료 약 한달을 남겨둔 시점에서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를 끝낸 김관영 원내대표가 오신환 의원과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뉴시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를 끝낸 김관영 원내대표가 오신환 의원과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동안 바른정당 출신인 ‘유승민계’ 의원들과 국민의당 출신인 ‘안철수계’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강행에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기호 3번’을 달고 총선에 나가면 사퇴하겠다고 밝혔고, 하태경 의원 등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5명은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 민주평화당과 합당하지 않고 바른미래당으로 출마하는 것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며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결국 지난 8일 바른미래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논의했다. 이날 바른미래당 15명의 의원들은 3시간 동안의 격론 끝에 오는 15일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하기로 결정했고, 김 원내대표는 이 같은 안을 투표에 부치기 전 사퇴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사퇴를 거부한 것은 당 결속을 위한 ‘전략’이라고 자평했다. 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바른미래당은 존속까지 위협을 받았지만, 김 원내대표의 사퇴로 총선 이전 ‘분당’ 혹은 ‘타 당과 연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는 주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9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내년 총선까지 자유한국당, 민주평화당, 민주당과의 통합 연대를 하지 않겠다’ ‘우리 모두가 바른미래당 이름으로 당당하게 출마해서 국민 심판받겠다’고 결의했다”면서 “(사퇴 거부는) 이런 결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작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원내대표는 “저희 의원들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 저는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유승민 의원님이나 다른 우리 당의 지도자급 되시는 분이 전원이 동의를 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이 원칙대로 당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분당 위험까지 제기되던 바른미래당은 어느정도 내홍이 갈무리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직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바른정당 출신 일부 의원들은 “손학규 대표의 사퇴 문제는 결론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유승민계인 이혜훈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에 출연해 “창당을 할 때는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 세력이 하나의 당을 만든다고 합의했으면서 합당을 하고 나니까 일각에서 우리는 진보라고 한다”면서 “그동안 분열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가 정체성”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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