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도 화훼업계 시름...양재 꽃시장도 타격
경제사정 악화가 원인?..."김영란법 때문 NO"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5월 가정의달은 각종 기념일이 모여있어 화훼 업계에서는 대목으로 꼽히지만, 과거와 비교해볼 때 화훼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다. 화훼업 종사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 전국 최대 꽃시장인 양재 화훼공판장도 다르지 않았다.

13일 이날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입구로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13일 이날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입구로 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입양의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이 한데 모여있어 이른바 '가정의달'로 불린다. 자녀들과 부모님, 은사, 배우자 등에게 사랑과 존경의 메시지가 담긴 소정의 선물을 주는 건 5월의 흔한 풍경이었다.

특히 카네이션 등 화훼류는 부모님과 선생님 등 웃어른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선물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선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카네이션을 주는 풍경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실제로 SK텔레콤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빅데이터 5만 7천여 건을 분석한 결과 어버이날 선호 선물 1위는 현금이었다. 화장품 등의 뷰티 제품과 건강식품, 가전·가구가 뒤를 이었다. 꽃 같은 화훼류보다 실용적인 선물을 하는 것이 대세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화훼 시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이하 '양재 꽃시장')은 지난해 기준 경매실적으로 전국 6개 공판장 중 5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등 국내 최대 규모의 화훼 시장으로 불린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이달 13일 오전 9시 30분께 양재 꽃시장 입구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른 시각부터 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출하된 화훼류를 싣고 도매시장과 경매장 등으로 향하는 차들도 줄을 이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 꽃상가 1번 출구.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 꽃상가 2번 출구. (사진=이별님 기자)

대목 못누리는 꽃 시장

도매시장 역시 화훼류를 구입하려는 상인들로 붐볐다. 각양각색의 꽃을 구입하려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도매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5월 가정의 달 특수를 노려야 할 지하 꽃상가는 사정이 달랐다. 오전 10시께 본격적인 판매준비를 마친 지하 꽃상가는 한산한 분위기를 보였다.

꽃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보다 상가에 자리잡은 상인들이 더 많았다. 카네이션과 장미 등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져 향긋한 내음이 상가 곳곳에 가득했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양재 꽃시장 지하 꽃상가에서 화훼류를 판매하는 상인 A모 씨는 본지 취재진에 시장이 많이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에서 화훼업을 시작해 48년째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A씨는 양재 꽃시장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평생을 화훼업에 몸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A씨는 "최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올나잇(밤샘 작업)으로 일을 했다"고 설명했다.

수년 전까지만해도 꽃을 구매하려는 손님들이 쏟아져 물량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A씨는 화사한 꽃들이 가득 차 있는 판매대를 가리키며 "그런데 지금은 꽃들이 가득 차 있지 않냐"고 취재진에게 반문했다. 그는 화훼업이 한창 잘 될 때 직원을 5명까지 고용했다고 했지만, 현재는 김씨와 직원 1명이 판매대를 지키고 있다.

A씨와 본지 취재진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오전 10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이른 오전이기 때문에 손님이 없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전엔 이 시간에 꽃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요즘은 오후가 돼도 손님이 많지 않다"고 답했다.

A씨에 따르면 과거에는 손님들이 원하는 제품을 서로 맡아놓고 뺏어갈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다. 이 때문에 꽃을 예쁘게 포장할 시간도 없었다는 A씨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5월의 경우 가정의달 특수로 다른 달보다는 매출이 조금 나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13일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 꽃상가에서 포장된 꽃들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13일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 꽃상가에서 포장된 꽃들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13일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 꽃상가에서 포장된 꽃들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13일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 꽃상가에서 포장된 꽃들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김영란법보다는 경제 문제"

밤샘 작업을 해도 소비 물량을 못 맞출 정도로 성행했던 화훼업이 수년 사이에 위기를 맞게 된 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2016년 9월 제정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화훼업이 직격탄을 입었다는 주장이다. 김영란법 시행 1년 뒤인 2017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한국은행은 1년 사이에 화훼업의 법인 매출 감소세가 이어졌고, 개인매출 증가세가 둔화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직 화훼업 종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A씨는 화훼 시장이 어려워진 이유에 대해 경제사정이 전반적으로 악화됐 점이라고 봤다. 그는 "모든 경제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이 잘돼 직원들 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촉진될텐데, 그게 잘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IMF가 한창이던 1998년에도 주요 화훼류의 경매가격이 하락하는 등 화훼 시장이 얼어붇은 바 있다.

A씨는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고용을 담당해야할 직장이 없어지고 있으니 돈을 쓰는 소비자들도 줄고 있다"며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 경제 사정의 문제인 거 같다"고 설명했다.

13일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꽃을 실은 차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13일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꽃을 실은 차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김영란법 때문에 화훼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A씨는 김영란법 위반 여부는 상대적으로 값이 나가는 화환 종류의 문제라며 "꽃바구니를 드리는 거는 개인의 주머니 사정"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과거에 7만 원 제품이 많이 나갔다면, 지금은 3만 원 제품이 많이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꽃은 먹고 입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꽃에 돈을 쓰려고 하지 않고, 아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거다"라고 토로했다.

경기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생필품 소비 외에 화훼류 등에 대한 지출은 줄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가정의달 선물은 꽃 종류보다 현금 등 실용성을 따지는 게 대세인 상황에서 화훼 시장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5월 가정의 달이 절반가량 남은 가운데,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값비싸지 않더라도 소정의 꽃 선물을 주는 것은 어떨까. 죽어가는 화훼 업계와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에 메마른 감성까지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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