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없어야 돼요, 체벌. 훈육으로 체벌이 시작돼도 부모가 감정조절이 안 되면 아이는 더 크게 상처 받잖아요”

“법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건 반대예요. 학대와 체벌의 기준 자체도 모호한데, 그런 법이 생긴다고 해서 아동학대가 사라질지 실효성에 의문이 드네요”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최근 부모의 자녀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체벌금지법 제정을 정부가 들고 나오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23일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심의·발표하면서 민법상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도록 한 ‘징계권’ 조항(제915조)을 개정하기로 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할 예정이다. 민법 915조에는 ‘친권자는 자식을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내용을 삭제하고 체벌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체벌금지에 대한 논의는 아동학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있었다. 최근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생한 일가족 참사 역시 가정형편을 비관한 아버지가 주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6일에는 중학생 딸을 칼등과 자전거 체인 등으로 수차례 때린 어머니가 집행유예 처벌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부모(76.8%)’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학대 사례 95%는 부모에 의해 발생했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12년에는 1만여건에 불과하던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지난 2017년 3만4천여건으로 불어났다.

전 세계적으로도 자녀 체벌을 없애는 추세다. 스웨덴 등 전 세계 54개국은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도 지난 3월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기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관련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 가정과 학교, 모든 여타 기관에서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과 규정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부모의 자식 체벌 금지’에 대한 여론은 팽팽히 갈린다. 체벌이 필요하다는 쪽은 아동학대가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정상적인 훈육 과정을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최근 돌이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이한솔(29·인천 연수구)씨는 “체벌이라고 해서 매질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무릎꿇고 앉아있기 등이 있지 않나. 경우에 따라서는 약간의 체벌이 아이 교육상 ‘필요악’으로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옳고 그른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잘못된 행동을 제제하는 게 부모로서 분명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계도를 위해서는 물리적 억제력도 필요한 법”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 무조건적이고 부모의 감정적인 체벌은 그저 가학행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체벌이 오히려 아이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 중·고등학생 두 딸을 키우는 이상미(56·경기도 파주)씨는 “훈육으로 체벌이 시작됐지만 부모가 감정조절이 안 되는 경우 아이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면서 “학교 밖 아이들만 봐도 가정의 무관심과 체벌이 비행청소년을 만드는 것 같다. 체벌이 없어도 아이를 신뢰하고 진심으로 존중해주면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체벌금지법에 대한 여론도 다소 팽팽하지만 ‘체벌이 필요하다’는 쪽이 약간 우세하다. 2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공개한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 국민 찬반 여론조사(CBS 의뢰로 24일 실시)에 따르면, 체벌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반대한다는 응답보다 2.7%p 높았다. ‘자녀를 가르치다 보면 현실적으로 체벌이 불가피하므로 반대한다’는 응답이 47%, ‘심각해지고 있는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찬성한다’는 응답은 44.3%였다. ‘모름·무응답’은 8.7%였다.

(그래픽=리얼미터)
(그래픽=리얼미터)

다만 체벌에 대한 인식은 남성과 여성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남성은 체벌금지법 반대 62.2%, 찬성 32.5%으로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욱 많았고 여성의 경우 각각 31.9%, 55.9%로 ‘체벌에 반대한다’는 인식이 압도적이었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50.6% vs 33.6%)과 40대(50.8% vs 45.7%)가 체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했다. 30대(반대 47.1% vs 찬성 44.4%)와 50대(46.1% vs 48.5%)는 찬반여론이 팽팽했다. 유일하게 20대(38.0% vs 54.2%)는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지역별로는 대전·세종·충청(반대 65.0%, 찬성 35.0%)과 광주·전라(52.2%, 44.0%), 부산·경남(51.6%, 34.1%), 서울(47.7%, 41.6%) 등에서 반대가 우세했다. 이에 비해 대구·경북(반대 42.0%, 찬성 54.3%)과 경기·인천(38.7%, 52.1%)은 찬성이 다수였다.

정치성향 및 지지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층(반대 31.4%, 찬성 62.7%)과 진보층(38.7%, 57.0%)만 찬성이 높았고 보수층(61.4%, 31.8%)과 한국당 지지층(62.9%, 24.3%), 바른미래당 지지층(60.4%, 27.0%), 무당층(55.4%, 33.9%), 정의당 지지층(55.0%, 41.9%)에서는 반대가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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