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삼국지 리더론②] 그들은 왜 악평만 남았을까?
[창간기획 삼국지 리더론②] 그들은 왜 악평만 남았을까?
  • 홍성완 기자
  • 승인 2019.06.19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유부단함과 지나친 의심병 가진 유표, 남은 건 악평 뿐
-따뜻한 인품으로도 메워지지 않은 무능력의 소유자 ‘유장’
-괴팍한 성격으로 뛰어난 능력마저 묻혀버린 ‘공손찬’

[뉴스포스트=홍성완 기자]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책 중에서 삼국지와 관련된 책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까지 많은 영웅들과 호걸들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호족과 군벌세력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 때의 이야기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건 등장 인물들과 사건들이 현 시대에도 많은 의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보통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건 유비와 조조, 그리고 손권 정도다. 삼국지 이야기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연의’(이하 ‘연의’)인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연의에 대해 ‘역사를 바탕으로 한 허구소설’이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의를 통해 중국의 삼국시대가 알려졌고, 당시의 인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은 어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연의로 인해 진수가 집필한 정사 ‘삼국지’(이하 ‘정사’)까지 주목을 받았다. <뉴스포스트>는 창간을 맞아 삼국지의 연의와 정사 등을 통해 중국 삼국시대 인물들을 조명하고, 경영자들과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한다. (편집자주)

업적은 어디가고 악평만

중국 삼국시대 성장 가도를 걷던 군벌 세력이 마지막 주인공 중 하나가 되지 못하고 몰락하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원술과 원소 같은 명문집안 출신들도 스스로의 결함에 의해 무너지는 마당에 그 외에 군벌들은 오죽 했겠는가.

명확한 장점을 통해 드넓은 중원대륙에서 이름을 떨쳤던 인물들, 그 중에서도 유표와 유장, 공손찬 등은 천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업적을 남긴다.

그러나 한 사람은 수준 높은 처세술과 정치력을 보였음에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또 한 사람은 좋은 인격을 갖췄음에도 무능했다. 또 다른 인물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갖췄음에도 인격적인 결함과 부족한 통치력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어느 정도 수준의 업적을 남긴 이들이 왜 결과적으로 당대와 후대 사람들에게 악평을 받게 된 것일까?

유표 상상도 (출처=위키백과)
유표 상상도 (출처=위키백과)

▲ 유표, 뛰어난 업적과 학자적 풍모마저 지워버린 우유부단함

한실의 종친이었던 유표는 동탁이 권력을 잡았던 시기 형주자사로 임명됐다. 중국대륙의 정 중앙에 위치하는 형주는 장강 중류의 영역으로서 비옥한 땅과 풍부한 강수로 인구가 상당했던 지역이다.

아울러 전략적 요충지이다 보니 많은 군벌들이 탐내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형주의 자사였던 왕예는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혼란 속에 손견에게 살해당했고,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형주는 권력의 공백으로 인해 수많은 호족들이 난립하는 혼잡스러운 상황이었다. 

유표는 이런 시기에 필마단기(匹馬單騎)로 형주자사에 취임했으니,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는 중앙을 따르지 않는 호족들을 규합하고 원술 세력도 견제하기 위해 형주지역의 유력한 호족들이었던 채모, 괴월, 괴량과 연대해 난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형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채모와는 인척관계를 맺는데, 괴월의 지모와 채모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한꺼번에 소탕하며 순식간에 형주 전역을 평정한다.

아울러 중앙정부가 필요로 할 때마다 조공을 보내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수준 높은 처세술을 보여준다.

유표는 또 원소와의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맺어 원술 뿐만 아니라 조조와도 대등한 세력을 유지한다. 

군웅할거 시대 이름을 날리던 원술과 조조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특유의 처세술과 외교력으로 많은 군벌들이 탐내던 형주지방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세력을 더욱 확장해 가는 수완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남쪽에서 장사태수 장선이 반란을 일으키고, 북쪽에서는 조조가 침공해오는 상황을 동시에 맞이하면서도 결국 이들을 모두 평정하며 10만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큰 세력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뤄놓은 그의 업적은 아들 대에 이르러 고스란히 조조에게 흡수돼 버렸다.

이는 유표가 남중국의 최강자로 올라선 이후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유부단함을 보이며 스스로 패망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유표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대부분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초기 선택지가 많지 않을 시절에는 과감한 결단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점점 세력이 커지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우유부단하게 변모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표는 원소와의 연대를 통해 조조와 원술을 견제하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계속해 판단 착오를 보여준다.

원소는 관도대전을 일으키며 유표에게 조조의 배후를 쳐 줄 것을 요청했다. 유표에게도 좋은 기회였던 이 전략은 그에게도 호재로 여겨져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기회를 얻고도 관망하는 자세로 일관하기만 했다.

이후 원소는 유비를 다시 유표에게 보내 조조와의 전쟁에 개입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원소의 세력들을 흡수한 뒤에는 형주를 목표로 할 것이 누가 봐도 불 보듯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유표는 자신의 처세술과 모략에만 의존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예상대로 조조는 하북을 평정한 뒤 곧바로 형주로 남하한다. 유표는 조조가 형주에 도착하기 전 병으로 숨을 거두는데, 그의 우유부단함은 후계 문제에서도 빛을 발하며 채모 등이 지지하는 차남 유종과 유비가 지지하는 장남 유기가 대립하는 내부분열을 낳는다.

결국 유종이 형주의 넓은 땅을 고스란히 조조에게 바치면서 유표가 일궈놓은 업적은 허무하게도 조조에게 그대로 흡수된다.

유표에 대해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의심과 꺼림이 많아 매사에 하는 일이 이런 식이었다”고 비판했고, 위나라의 책사 가후는 “평상시라면 능히 삼공에 오를 만한 재주를 갖췄으나, 사세를 살피는데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해 난세에는 무능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제갈공명 등은 유표에 대해 ‘학자의 기질이 지나쳐 군사에 대한 일을 잘 모른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처럼 유표는 의심병이 지나칠 정도로 심했고, 결단력이 부족해 우유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리더에게 꼭 필요한 용병술도 최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사와 많은 사서에서 인정받는 유비‧관우‧장비 의형제와 손권과 유비, 조조 밑에서 나중에 큰 활약을 펼치는 감녕과 황충, 장수 등의 빼어난 인재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는 많은 업적을 이뤘음에도 당대 명사들과 후대의 평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박하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 중원에서 큰 세력을 유지했던 유표는 결과적으로 현실에 안주하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고, 이런 모습으로 인해 사후에는 그의 업적들이 무색하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인물로 남았다.

좀 더 결단력을 가지고 주변에 군사적 재능을 겸비한 참모를 얻었다면, 유비가 아닌 유표가 천하삼분지계에 어울릴만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용병술로 인해 그는 자신의 단점들을 보완해 줄 인재를 놓쳤고, 기회가 있을 때 결단력을 내리지 못하는 그의 우유부단함이 그의 뛰어난 장점들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유장 상상도 (출처=위키백과)
유장 상상도 (출처=위키백과)

▲ 사람으로는 좋았으나 능력은 ‘쥐뿔’도 없던 유장

유표와 마찬가지로 한실의 종친이었던 유장은 아버지 유언에 이어 익주지역(사천성, 충칭 시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서쪽 지역)을 다스리는 익주목이 되었으나 후에 유비에게 익주를 내주는 비운의 인물이다.

익주를 다스리던 유장의 아버지 유언은 사실상 한실에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급사하면서 얼결에 그의 아들인 유장이 익주를 다스리게 된 것이다.

유장에 대해 공통적으로 ‘따뜻한 인간이었으나, 능력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런 평가가 이뤄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가 임명한 사람들이 권력을 제멋대로 부렸고, 그의 유능한 신하였던 장송과 법정이 유비에게 익주를 바치려 했던 모습들을 통해 그의 통치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익주의 많은 백성들이 능력 있는 통치자가 오길 바랐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아버지였던 유언과는 다르게 익주를 다스릴 카리스마나 능력은 부족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아울러 유장 자신이 임명했던 인물들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조직 장악력도 부족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언이 끌어들여 한중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던 장로는 유장이 익주목에 오른 후에는 순종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았다.

익주는 분지형태로 넓은 평야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계절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비옥한 지역이었기에 잘만 다스린다면 한 나라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유장은 자신이 익주를 다스리는 기간 동안 이런 지형적인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또한 유비가 익주를 다스릴 때에는 반란이 거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가 얼마나 무능한 인물이었는지 쉽게 비교가 가능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큰 단점으로 남의 말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결단력이 없다 보니 이 말 저 말 신경 쓰다가 결국 아랫사람의 신임을 잃어갔다.

안타까운 건 유장이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유비군이 익주의 수도인 성도에 다다르자 종사 정탁은 “유비군은 물자가 부족하니, 백성을 모두 이주시킨 후 창고와 들판의 논밭을 모두 불태우고 우물에 독을 풀어 수성에 전념하면 유비군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라며 극단적인 전략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유장은 “적을 막아 백성을 평안케 한다는 말은 있을지언정, 거꾸로 백성을 내몰아 적에 대비한다는 말은 없다”며 정탁의 모진 계책을 거부하고 유비에게 항복한다.

또한 유장이 항복하자 성도가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그가 다스리던 성도의 민심은 그에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좋은 인격을 갖추고도 무능한 경영자로서의 모습을 남긴다면 주변 사람들과 후대의 평가가 좋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유장이다. 그가 한 고을의 현령 정도의 위치에만 있었다면 존경 받았을 인물이었을 것이다.

보통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유장이라는 인물을 봤을 때 이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아울러 경영의 우선순위로 구태여 골라야 한다면 좋은 인격보다 능력이 우선이라는 게 개인적인 사견이다. 

여기에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집착한다면 두고두고 후대에 안주거리로 밖에 남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좋은 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공손찬 상상도 (출처=위키백과)
공손찬 상상도 (출처=위키백과)

▲ 개인 능력은 우수, 통치자로는 낙제점 받은 동북의 제왕 공손찬

공손찬은 모친의 신분이 낮아 차별받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능력을 통해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인물이다.

하북에서 나고 자란 공손찬은 동북지역의 국경을 지키며 이민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오환 및 선비족이 반란을 일으켜 하북에 쳐들어오자 큰 열세의 병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패퇴시키는 저력을 보여준다. 또한 황건적 30만명이 하북으로 올라오자 2만의 군사로 이들을 몰살시키며 동북의 맹장(猛將)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는 당시 잘 나가던 원소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치며 대등하게 싸웠고, 그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인물로 성장한다.

공손찬은 적어도 장수로서는 매우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군사적 재능과는 반대로 정치와 경영 능력은 매우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가장 큰 실책은 한 때 황제로까지 추대되던 명망 높은 유우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공손찬은 결국 유우를 사로잡아 처형했고, 이로 인해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게 됐다.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그는 결국 하북 지역에서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다.

그의 행보들을 보면 다혈질적인 성격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민심을 잃자 공포통치를 지속하는 한편, 점쟁이와 비단장사 등을 관료로 기용하는 경악스러운 인사를 단행하면서 사람을 쓰는 면에서 큰 결함을 표출한다.  

그의 밑에 조운이나 전예 같은 인재들이 있었음에도 이들을 중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단점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로 인해 친분이 있던 유비 등 많은 인재들이 떠나게 된다. 

후에 유비에게 큰 힘이 되는 조운도 이 때 “원소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는 평을 남기며 그 역시도 공손찬의 곁을 떠난다.

결국 공손찬의 주변에 남은 참모들은 아첨하는 무리만 남아있게 됐고, 이들은 부정축제를 일삼았다.

이에 따라 원소를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에게 패배하게 된다. 

초패왕 항우와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자랑했던 공손찬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인 뒤 본인도 자결해 생을 마감한다.

공손찬의 몰락은 개인의 능력은 뛰어나다 할지라도, 경영과 통치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엄연히 경영능력과 개인의 역량은 구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일궈낸 업적도 경영의 실패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과 공포정치가 가지는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더가 자신의 권력과 능력만 믿고 강압적으로 회사를 경영한다면 그의 주변에는 아첨하는 무리만 남고 능력 있는 인재들은 떠나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홍성완 기자 seongwan6262@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