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장인을 찾아서] ②대금연주가 홍석영(34) 다원 국악아카데미 대표
[청년장인을 찾아서] ②대금연주가 홍석영(34) 다원 국악아카데미 대표
  • 이상진 기자
  • 승인 2019.07.01 09:39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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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이란 단어는 곰팡내 나는 책을 뒤적여야 찾는 빛바랜 훈장 닦는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시대. 본지는 일찍이 자신의 업을 찾은 청년장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악사(樂士)와 악기(樂器)는 서로의 꿈이다. 악사의 손에서 홀로 소리가 나지 않고 악기 또한 스스로 울지 못한다. 악사는 악기로 몸을 연장해 늘어난 몸을 늘리고 구부리고 당기고 밀어내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소리를 불러온다.

소리는 비어있음(空)에서 나온다. 존재를 양보한 빈 공간 없이 소리는 공명하는 법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동서고금의 모든 악기는 자신의 내부를 비워내야 했다. 空에서 난 소리는 다시 空으로 되돌아가고 뒤이어 다른 소리가 空을 채운다.

대금(大笒)을 쥔 악사는 상몽을 꾼다. 쌍골죽 몸통의 속살을 전부 다 파내어 만든 대금의 빈 공간이 인간의 호흡을 오롯이 감당하기 때문이다. 날숨에 대금은 맥이 뛰어 생명을 얻고, 들숨에 대금은 악사와 함께 필일신(必日新)한다.

28일 본지는 소리 만드는 청년 대금장인 홍석영(34)을 만나 청년 대금연주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서울 중랑구 상봉동에 위치한 국악아카데미 ‘다원’에서 진행했다.

▶ 대금이란 악기가 낯선 분들도 계실 텐데 대금이란 악기에 대해 말한다면.
“대금은 중국 등 다른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나라 전통관악기다. 신라시대 신문왕 시대부터 있던 가로로 부는 악기다. 신문왕이 만들었다는 설화 속 악기 ‘만파식적’이 바로 대금이다. 만파식적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라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피리는 가로로 부는 피리가 유일했고 이게 바로 대금이다. 역사적으로는 1,600~1,700년 정도됐다.” 
 
▶ 대금은 ‘쌍골죽’으로 만든다고 한다. 쌍골죽이 뭔가?
“쌍골죽은 쉽게 말해 병든 대나무다. 병든 대나무지만 보통 대나무보다 질기고 강한 것이 특징이다. 쌍골죽에는 양쪽에 크게 골이 가 있다. 대나무 뿌리가 우연히 땅위로 솟아 뿌리가 대나무 몸통으로 자라버린 것이다. 쌍골죽은 아주 독하고 단단하고 살이 꽉 차 있다. 다른 대나무보다 영양분을 많이 흡수한다. 이런 까닭에 쌍골죽은 내부의 속살을 일정하게 뚫어 악기로 만들기 쉽고 안의 공간이 넓기 때문에 악기로 만드는 데 적합하다.”

▶ 쌍골죽에 따라 대금 소리가 천차만별일 것 같다.
“그렇다. 어떤 대금은 소리가 깊고 어떤 대금은 소리가 가볍다. 소리는 파인 골 깊이에 의해 달라진다기보다는 쌍골죽이 어떻게 자라났는지에 달렸다. 쌍골죽이 묵었느냐, 묵지 않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쌍골죽 가운데서도 1년산으로 만든 대금이 있고 2년산으로 만든 대금 등 연도별로 단단하기도 하고 무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그래서 평생 자신에게 맞는 대금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양악기처럼 기계로 찍어내는 게 아니고 천차만별인 쌍골죽을 전부 수작업으로 손질해 악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원 아카데미에서 만난 홍석영 청년 대금장인. (사진=이상진 기자)
다원 아카데미에서 만난 홍석영 청년 대금장인. (사진=이상진 기자)

▶ 대금연주가의 삶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격 자체가 고리타분했다. 한복도 좋아하고 한옥집도 좋아했고. 살풀이춤도 그냥 혼자 멋에 겨워 추고. 학창시절 별명이 인간문화재였고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나 졸업앨범을 봐도 장래희망이 인간문화재다. 그렇다고 청학동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대금의 존재를 16살인 중3 때 처음 알았다. 당시 도덕선생님이 단소를 잘 부셨는데 그때 내게 대금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웃음)”

▶ 부모님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부모님 두 분 다 국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울토박이다. 부모님 두 분 다 내가 대금연주가가 되기 위해 예고를 진학한다고 했을 때 원서도 못 넣게 하셨다. 심지어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내가 대금연주를 하는 것을 결사반대하신다. ‘나는 네 대금소리가 듣기 싫다!’라고 아주 강력하게 이야기하신다. (웃음) 아마도 부모님께서는 대금을 연주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금을 배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거기서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신 이생강 선생님을 만나 대금을 배웠다. 이생강 선생님은 내 평생의 스승이시다. 지금도 이생강 선생님과 이틀에 한 번 꼴로 통화를 하고 자주 만난다.”

(사진=이상진 기자)
(사진=이상진 기자)

▶ 이생강 선생님과의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사실 처음에 이생강 선생님께서는 나를 미워하셨다. 대금은 수업만으로는 따라가기 어려운 악기다. 그래서 학교 수업 이외에 개인레슨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대금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생강 선생님 댁에 가서 레슨을 받았는데 나는 레슨비가 없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형편도 좋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대금 배우는 걸 반대하는 마당에 레슨비를 줄 일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레슨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 했다. 선생님께서는 그때 나에 대해 공부 안 하는 학생, 절대 대금으로 성공할 수 없는 학생, 이렇게 생각하셨다고 하더라. (웃음)”

▶ 그쯤 되면 인연이 아니라 악연 같은데. (웃음)
“그런데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즈음에 이생강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고는 왜 레슨에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대금을 정말 배우고 싶지만 레슨비가 없어 못 갔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레슨비 안 받을 테니까 와라’고 했다. 그 뒤로 군대 전역하기까지 7~8년을 선생님 댁에서 먹고 자고 했다. 대학 진학했을 때는 운전면허 따라고 돈을 주셨고 그래서 면허를 따오니까 ‘이제 나랑 같이 연주 다니자’라며 승용차를 한 대 사주시더니 운전연수까지 해주셨다. 그 뒤로 선생님이 가시는 연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선생님을 모시고 다녔다. 선생님의 연주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그때 대금에 대해 많이 배웠다.”

▶ 대금이란 악기의 매력은 뭔가?
“대금은 사람의 몸과 가장 가까운, 살아있는 악기다. 사람 목소리 대신해주는 악기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복식호흡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높은 음으로 올려야겠다, 이런 생각만 해도 높은 음이 난다. 서양악기는 높은 음을 내려면 똑같은 주법의 버튼을 눌러야 하고 그래야 올라가는데 대금은 그렇지 않고 호흡으로만 옥타브 조절이 가능하다. 똑같은 운지에서도 음을 높이 올리려면 호흡을 얇게 빼서 넣으면 되고, 음을 떨어뜨리려면 호흡을 늦추면 된다.”

(사진=이상진 기자)
(사진=이상진 기자)

▶ 대금연주 커버곡 유튜브 스타이기도 한데.
“유튜브 스타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웃음) 유튜브에 커버곡을 올린 계기는 이누야샤ost인 시대를 초월한 마음의 대금악보인 정간보를 만들어 달라는 네이버 지식인 글을 보고 나서다. 어린 학생인 것 같아 정간보를 만들어 메일로 보내줬다. 그런데 그 노래가 들어보니 괜찮아 직접 연주해 유튜브에 올린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 뒤로 연주 동영상을 몇 개 더 올렸는데 많이들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커버곡을 연주하는 것도 이생강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대중없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당신께서도 칠갑산과 목포의 눈물 등 그 시절 유행하는 대중가요를 국악으로 재해석하는 일을 하셨다.”

▶ 대금 등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정부정책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육부분이 아쉽다. 비유하자면 외국인들이 처음에 김치를 못 먹지 않나? 된장도 그렇고. 하지만 우리는 김치와 된장이 묵었을 때의 맛을 안다. 묵은지와 제대로 묵은 된장의 맛, 그 맛이 바로 국악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교육을 보면 어렸을 때 전혀 국악을 접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동안 국악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면 어린아이들은 습득이 빨라 분명히 국악의 맛을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맛만 안다면 국악은 최고의 예술이다.”

▶ 홍석영의 연주는 애틋하고 귀하고 애절하다. 연주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원체 슬픈 곡들을 좋아해서 그런 곡들만 연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웃음) 그런 곡들을 연주할 때 스스로 위안 받는다. 어렸을 때 어렵게 대금을 배웠던 기억들이 마음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혼에 한이 있다. 연주를 할 때는 오롯이 연주에 집중하기 때문에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연주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추억과 상념이 몰려와 감정이 잡힌다.”

▶ 요즘 특별히 연습하는 곡이 있다면.
“전통곡인 대금산조는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산조는 악기로 부르는 판소리라고 보면 된다. 기악독주곡으로 우리나라 전통음악이다. 판소리 안에 장단별로 진양조와 중모리조 등등 장단이 있듯이 산조도 진양조 중모리조 자진모리조 등 장단이 나뉘어 그 안에서 즉흥적인 연주가 진행된다. 우리 무속신앙과 계통을 같이 하는 우리 고유의 음악이다. 궁중음악 등과는 연관없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악이다. 마치 서양음악의 재즈와 같다. 대금으로 연주하는 대금산조는 40분에서 120분 이상까지 연주가 계속된다.”

▶ 생활인으로서 대금연주가의 삶은 어떤가?
“워낙 다양하기에 특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숙련된 대금연주가의 경우 20~30분 공연에 100만원을 받기도 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악단에 들어가면 월 300만원 안팎의 고정수입이 보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생계가 어려워 국악을 접고 바리스타나 요리사 등 다양한 길로 빠지는 지인들도 많다. 전문 대금연주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음악을 생계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켜나간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배워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예술은 생계를 뛰어넘는 정말 아름답고 멋있는 세계다.”

▶ 대금연주가로서 최종목표가 궁금하다.
“일단 대금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다원이라는 국악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다원이란 이름도 직접 지었다. 다원은 '모두가 다 국악을 원하는 그날까지'란 뜻이다. 대중들에게 대금이란 악기를 친숙하게 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가 돼 국악학원이 아닌 한옥집 형태의 대금전수소를 세우고 싶다. 내가 대금을 어렵게 배웠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대금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대금을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이상진 기자 elangvit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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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2019-09-11 10:56:37
멋진 한옥 전수소를 지어서 선생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갈망합니다.

대금이좋아 2019-08-16 09:54:48
언제나 응원합니다.
홍석영님 화이팅

김은자 2019-07-03 10:53:54
홍석영선생님의 심금을 울리는 대금소리, 선생님의 마음과 혼이 담긴 소리,, 너무 좋아합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의 인간문화재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임병석 2019-07-03 09:42:57
대금및 국악을 사랑하는이에게 힘이될수있게 하여주심을 감사합니다.

풍류랑 2019-07-02 13:15:45
여지껏 대금소리 듣고 감동하긴 첨입니다...
무형문화재의 꿈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