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니 얼른 아이부터 갖는 게 어떻겠니?”

신혼여행에서 방금 돌아온 친구가 시부모님에게서 들은 말이다.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방문이라 친구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시부모님을 쳐다봤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 역시 당황한 얼굴인 걸 보니 잘못들은 말은 아니었나 보다. 올해 서른넷,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그녀가 맞닥뜨린 첫 번째 시련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과거 가족 구성의 기본적 형태가 4인 가구였다면, 이제는 딩크족, 1인 가구, 동거 등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가족의 개념을 혼인이나 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주거를 공유하는 것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다양한 형태의 삶의 등장에 대해, 과거 획일화되고 경직된 사회에서 자신이 중심이 돼 가치와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선택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20~30대 젊은 부부들의 현실을 통해 어떠한 인식의 변화가 있는지 살펴봤다.

◇ 임신·출산 여부는 ‘선택’

친구는 결혼 당시 양가 부모님들께 전혀 도움을 받지 않았다. 받을 수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만, 일단 그랬다. 남편이 5년째 살고 있던 원룸에 자신의 옷가지들을 들고 들어간 것이 신혼의 시작이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금방 일어설 수 있다며 오히려 주변을 다독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는 남편과 합의로 5년간 2세 계획을 미루기로 했다. 친구는 ‘딩크족(결혼 후 의도적으로 자녀를 낳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부부,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칭)’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편과 확실히 노선을 정한 것이 아닌 탓에 기한을 뒀다고 했다. 물론 딩크족이 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친구는 시부모님이 무조건적인 임신을 권유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속상해하는 눈치였다. 금전적인 문제를 부모님께 해결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임신과 출산으로 겪게 될 경력단절, 육아 등의 문제 역시 부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친구가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은 오래된 원룸이었다. 2세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친구와 같은 환경에 놓인, 그래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20~30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20~30대의 10명 중 6명은 ‘결혼과 출산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에는 금전적인 문제와 결혼생활에 대한 부담, 자녀교육 등 복합적인 배경이 얽혀 있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앱 알바콜이 20~30대 회원 9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출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34.8%에 그쳤고,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65.2%로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돈’ 문제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드러났다. 결혼·출산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금전적인 문제(25.3%) ▲결혼 생활·문화에 대한 부담(20.1%)과 ▲자녀 교육·미래에 대한 불안(13.7%) ▲일과 가정의 불균형(12.8%) ▲육아휴직 등 제도 미비(9.5%)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 딩크족 확대 

결국 친구는 당분간 예비 딩크족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5년 이후에도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완전한 딩크족에 합류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상 ‘비자발적 딩크족’이 된 셈이다. 물론 친구 시부모님의 성화는 계속됐다.

‘자발적 딩크족’은 아이를 낳지 않고 인생을 즐기면서 사회적 지위를 달성하고자 하는 부류고, ‘비자발적 딩크족’은 경제적 부담의 확산으로 자녀를 낳지 말자는 부부간의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젊은 부부들이 비자발적 딩크족에 합류하기까지는 경제적인 문제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딩크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2019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1%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특히 20대는 91.9%, 30대는 81.2%, 40대는 70.3%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발표한 20~30대 미혼 성인남녀 8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딩크족 계획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3.9%가 ‘그럴 계획이 있다’고 답했고,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점(48.8%)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결혼 하면 임신해서 출산해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 역시 줄어들고 있는 점도 딩크족의 확대 이유로 꼽힌다. 또한 과거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는 기혼여성이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고학력 여성의 증가로 맞벌이가 늘었고, 이후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이 많아진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자녀가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기혼여성이 큰 폭으로 급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15~49세 기혼여성 1만 1,161명) 중 ‘자녀가 꼭 있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49.9%에 그쳤다. 지난 2015년 조사 때(60.2%)와 비교해 10% 이상 감소했다. 이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는 32.8%, ‘없어도 무관하다’는 16.9%로 조사됐다. 자녀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로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25.3%)’,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기 위해서(24.1%)’, ‘자녀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해서(16.2%) 등으로 나타났다. 

◇ 결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

다행히 친구의 시부모님은 당분간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약속하셨다. 경제적 지원이나 육아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았던 점도 있었겠지만, 친구 남편이 ‘자신이 중심이 되는 선택하는 삶’에 대해 진지한 모습으로 설명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친구는 완벽한 동의가 아닌 한시적인 약속이라는 점에서 섭섭하다면서도, 그래도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다고 했다. 

물론 모든 50~60대 부모 세대들이 자녀들의 결정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이들도 많다. 30대 딩크족 자녀를 두고 있다는 김 모 씨(58·여)는 “지금처럼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라며 “애 아빠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딸아이가 아이를 낳기를 바라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걸려 있으니 뭐라고 쉽게 말은 못 하더라고요”고 말했다. 덧붙여 “딸아이 부부 역시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마음껏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네요.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 같아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결혼’ 이후 ‘출산’이 인생의 절대적인 공식이라 생각하는 기성세대 입장에서 딩크족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인식과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아이를 낳아 부모의 삶을 사는 이들만큼 딩크족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젊은 부부들의 입장이다.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세대 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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