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44만 시대...동작구, 노량진청년일자리센터
불합격자 발길 어디로...“장수생 재사회화 대책 必”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공시생 3년 하다가 그만뒀어요. 제가 더이상 못 버틸 것 같더라고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 내 가판대에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 내 가판대에 공무원 시험을 포기할수 없는 이유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교육 공무원을 2년간 준비하다 일반기업에 취업해 노량진을 빠져나온 이모 씨(32)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블랙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학도 늦게 졸업했고 공시를 준비하며 사회진출이 더욱 늦어졌다”며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공시생 기간이 길어지니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공시 블랙홀에 빠진 청년들은 약 44만 명. 공무원 시험 경쟁률과 시험 응시자 수 등의 수치를 근거로 지난해 한국국정관리학회가 추정한 규모다. 만 20세부터 29세까지 우리나라 청년 인구 중 6.8%가 ‘공시족’인 셈이다.

하지만 44만 명의 공시생이 모두 공무원이 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달 서울을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에서 치러진 9급 지방 공무원 시험의 전체 선발인원은 2만 3,519명인데, 지원자는 이보다 10배 이상 많은 24만 5,677명이다. 평균 경쟁률은 10.4대 1로 1명이 붙으면 9명은 떨어지는 구조다.

합격하지 못한 공시생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계속 시험에 도전하거나 시험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생으로 전환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장기간 시험을 준비하던 공시생이 취업전선에 곧바로 뛰어드는 일은 쉽지 않다. 공시생들을 위한 ‘맞춤형 취업연계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다.

(사진=이별님 기자)
(사진=이별님 기자)

‘공시촌’ 노량진에 청년 위한 공간 마련

공무원 시험과 관련된 각종 학원 및 고시원이 한데 모여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일대는 전국의 공시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으로 알려졌다. ‘공시촌’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별칭으로 불리는 노량진에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이하 ‘센터’)’가 올해 4월 개관했다.

센터는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취업으로 고민하는 만 19세에서 39세 청년들에게 전면 개방됐다. 연면적 759.49㎡ 규모로 지어진 센터는 2층과 3층으로 나뉘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 마련된 면접정장 대여실에 정장들이 걸려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 마련된 면접정장 대여실에 정장들이 걸려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 내에 마련된 VR 게임기.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 내에 마련된 VR 게임기. (사진=이별님 기자)

2층에는 취업상담실과 스터디 공간, 다목적홀, 면접정장 대여실 등이 마련됐다. 3층에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실, VR 게임 체험 공간 등 휴게공간, 세미나룸, 미니 스튜디오 등이 있다. 본지 취재진이 지난 3일 오후 이곳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2층 면접정장 대여실이었다. 값비싼 정장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 무료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산수 센터 총괄 매니저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약 100명이다. 지난 3일 오후 센터를 방문한 본지 취재진은 이곳에서 전문상담사와 1대1 상담을 받는 공시생과 스터디 공간에서 개별적인 자습을 하는 수험생, 세미나룸에서 그룹 스터디를 진행하던 취업 준비생 등을 볼 수 있었다.

센터를 이용하는 청년들은 비교적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20대 남녀 5명으로 구성된 한 공기업 취업 스터디 그룹 멤버들은 이날 오후 세미나룸을 이용했다. 일주일에 2번 모여 그룹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이들은 “관련 홍보물을 보고 센터를 알게 됐다”며 “스터디 장소를 찾기 쉽지 않은데, 센터에서 무료로 대여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룹 스터디를 진행할 장소가 더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서 1대1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서 1대1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웰 센터, 공시생 민간기업 취업 도와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학습공간이나, 면접정장 대여 등 눈에 보이는 서비스만 제공되는 게 아니다. 진로 전환을 원하는 공시생들을 위한 맞춤 사업이 센터의 핵심이다. 사업 이름은 ‘웰 (WorkExperience Learning) 센터’다. 문자 그대로 직무 경험을 배우는 센터다.

동작구와 고용노동부, 사단법인 ‘ESC상생포럼’ 등 민관 협력 사업인 웰 센터는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취업을 희망하는 이른바 ‘취업전환 희망 공시생’들의 진로 전환을 목표로 한다. 사기업에 필요한 경험과 ‘스펙’ 준비가 없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취업 전환 희망 공시생들을 경제활동 인구로 복귀하도록 돕는다.

웰 센터는 공시생 취업 전환 희망자들을 상대로 1대1 심리상담과 직업적성검사, 직무능력검사 등을 진행한다. 검사 결과에 따라 취업을 위한 고용노동부 직업훈련과정이 제공된다. 취업성공패키지, 동작구 직업훈련교육, 청년 내일채움공제 등 다양한 제도를 연계·지원한다.

웰 센터에서 1대1 상담 업무를 맡은 지선영 상담사는 “상담 희망자는 하루에 많게는 6~7명”이라며 “취업 상담을 희망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오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4월 센터가 개관한 이후 약 2개월 반 동안 3명의 취업 전환 희망 공시생들이 취업에 성공했다. 올해 10월까지 취업 성공 사례 30건을 만드는 게 웰 센터의 목표다.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청년들이 자습을 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청년들이 자습을 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공시생에게도 정부·사회 지원 절실”

그러나 웰센터 같은 ‘공시생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지 상담가 역시 공시생들을 위한 정부·사회의 지원과 대책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 상담가는 “공시생들은 포지션이 매우 애매하다. 노약자 등 눈에 보이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도적) 도움을 받지 못한다”며 “장수생분들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먹고살 만하니까 공시를 준비한 게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공시생들의 수험생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 상담가는 “공시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해도 기업은 이걸 열심히 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국사와 국어 등을 공부한 역량이 있는데, 무경력이 되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120번 가까이 공시생들과 상담을 진행했다는 지 상담사는 실제로 상담 일을 하기 전까지는 공시생 신분이었다. 공무원 시험에 3년을 투자했다가 진로를 전환한 지 상담사는 공시생 진로 전환 문제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지 상담사는 “시험에는 반드시 합격자가 있지만, 불합격자가 있다. 불합격자들은 (공시라는) ‘굴’에 들어가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이 제도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라며 “공시생들의 취업 전환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5~6년 차 이상 장수생들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빨리 민간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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