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들은 항상 ‘죄인’이다. 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 낯선 환경 속에서 엄마의 보살핌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 아이가 아파도 회사에 눈치가 보여 휴가도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서러움. 가끔은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나’라는 억울한 마음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도 부지기수다. 육아를 힘들어하는 것 자체가 유난이라는 이상한 분위기 탓에, 어디에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을 워킹맘들의 진짜 ‘현실’을 <뉴스포스트>가 들어봤다. 지난 5일 진행된 좌담회에는 직장생활 10여 연차 이상의 워킹맘 두 명과 함께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임신, 마냥 기쁠 수만은 없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느꼈던 기분? 완전 ‘망했다’였다. 회사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육아휴직은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건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마냥 기쁠 거로 생각했던 임신이 절망으로 다가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 같다”

회사에 입사 후 한 달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는 A씨는 정말 절망 그 자체였다. 1년 이상 회사 생활을 하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난 뒤에, 그리고 집 대출금도 어느 정도 갚고 난 뒤에 2세 계획을 하고 있던 터라 A 씨는 한동안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A 씨는 “당시 회사에서도 반겨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현실 부정도 심하게 했었다.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할 것 같은 느낌에 고민하다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3개월쯤 됐을 때 회사에 알렸다”고 말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줬고, 육아휴직도 보장을 해줬다. 그동안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표의 시원한 반응에 긴장이 풀렸다는 A 씨는 “회사마다, 대표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육아휴직을 못 받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B 씨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B 씨는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막막했다. 당시 다녔던 회사가 규모가 크지 않고, 근무하는 도중에 대표가 바뀌는 등 안정적인 회사가 아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3년 이상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 사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B 씨는 현실 부정이 더 심했다고 말한다. 안정기에 들어서기까지 2개월 동안 옷도 평소처럼 입고 다니고, 높은 굽의 구두도 신고 다녔다는 것. B씨는 “입덧으로 속이 좋지 않았는데도 티를 안 냈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핑계를 댔던 것 같다. 그만큼 임신 사실을 밝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회사 눈치가 보여 임신 사실을 숨기다가 유산을 경험한 적 있다는 지인의 사례도 있었다. B 씨는 “지인이 4년 전에 임신했었는데 너무 눈치가 보여서 회사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직속 상사가 40대 싱글 여성이었던지라 더더욱 입을 떼기가 어려웠고,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유산하게 됐다고 들었다. 지인은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배가 신경 쓰여 배에 힘을 주고 다니거나, 임신한 게 죄스러워 손으로 배를 몇 번 툭툭 치기도 했었다고 한다. 특히 그것 때문에 아이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B 씨는 현재 지인이 돌 지난 아들을 키우며 ‘헬 육아’를 경험하고 있다는 근황도 함께 전했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워킹맘들의 좌담회가 있었다. (사진=선초롱 기자)
지난 5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워킹맘들의 좌담회가 있었다. (사진=선초롱 기자)

"육아휴직 100% 쓰게 해주는 회사는 어딘가요?"

육아휴직도 직장을 다니는 몇몇 여성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꽤 있었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모두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 기간을 보장받는다고 해도 복직을 하지 않는 조건을 내 거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 중소기업의 경우 현실적으로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구한다고 하더라도 1년이 되기 전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회사 입장에서는 육아휴직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다.

공교롭게도 A 씨와 B 씨 모두 조건부 육아휴직을 받았다. A 씨는 “입사 후 1개월 만에 아이가 생겨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회사에서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1년을 채우는 대신 복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회사에 미안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알아보니 법적으로 벌금, 징역 등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1년 동안 정부에서 60~7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는 A 씨는 “이거라도 어디냐”며 지극히 을의 입장인 직장인 임신부에 대해 토로했다. 복직 후 받는 나머지 25%에 대해서는 “복직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시켜주지 않는데 방도가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참고로 육아휴직급여액 중 일부(25%)는 직장 복귀 6개월 후에 합산해 일시불로 지급된다. 

B 씨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를 포기하겠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출산휴가 전 60일분 급여의 일부를 회사가 지급해야 하는데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두 달 치 급여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육아휴직을 받은 것이다. 그 정도로 만족하고 회사 측에 고마워해야 했던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기업이라고 해서 임신 사실에 대해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업무에 공백이 생기면 그만큼 주변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되기 마련이고, 또 대체인력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숙련도 부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B 씨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회사 입장에서는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형 제약사에 근무하는 40대 후반의 지인은 본인이 회사에서 완벽한 육아휴직을 받은 첫 사례라고 한다. 당시 그 회사는 임신을 하면 ‘설마 1년 쉬려고?’라고 물어본다더라. 지인은 육아휴직을 1년 쓰는 게 매우 눈치가 보였지만 후배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고 한다. 임신했다고 해서 ‘당장 나가’라고 까지는 안 했지만 스스로 나가거나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육아휴직 제도를 지키지 않는 기업을 신고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도 토로했다. B 씨는 “우리나라는 고소·고발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 불합리한 일을 겪어 고소나 고발을 할 경우 이른바 ‘싸움꾼’ 등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특히 경영진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 육아휴직을 거부했다고 하면 비판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직원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이 있는 경영진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공부했다는 A 씨는 생각보다 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은 더욱 제도가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제도들을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직장인 부모 중 절반 이상이 육아휴직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서북권직장맘지원센터가 직장인 부모 666명을 대상으로 육아휴직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63.6%가 육아휴직을 써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육아휴직 경험이 없는 응답자 가운데 30.3%가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를 꼽았다. 이어 ‘경제적인 부담(21.7%)’, 사용 방법 잘 모름(5.7%)로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라고 답한 응답자 128명 중 57.8%는 ‘동료 대부분이 육아휴직을 쓰지 않아 부담스럽다’고 했고, 15.6%는 ‘복직 후 직급이나 직무가 달라지는 등 불이익이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답했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워킹맘들의 좌담회가 있었다. (사진=선초롱 기자)
지난 5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워킹맘들의 좌담회가 있었다. (사진=선초롱 기자)

임산부 근로자가 회사에 요청할 수 있는 또 다른 제도는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있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법정기간인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임산부 근로자가 임금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고, 사업주는 반드시 허용해야 하는 제도다.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추고 퇴근 시간을 1시간 당기는 방식, 출근 시간을 2시간 늦추는 방식, 중간에 휴게시간을 추가로 늘리는 방식 등 사용 방식에는 제한이 없다. 다만 사용자가 6시간 미만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위반 시 과태료는 500만 원이다. 

육아휴직이 이 정도인데, 임신 초기, 말기 임산부 근로자들이 과연 이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현실은 ‘전혀 아니다’ 이다. B 씨는 “해당 제도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회사에서 눈치가 보여 사용은 하지 못했다. 대신 회사에서 인간적인 배려는 해줬었다. 만삭이었을 때 퇴근 시간 30~40분 정도 전에 퇴근했는데,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고 말했다. 

A 씨 역시 근무 단축 시간을 2시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는 입장이다. A씨는 “퇴근 시간을 피해 30분이라도 일찍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 혼잡한 퇴근길에 입덧하거나 만삭의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정말 힘든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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