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묘 구제시장, 노인과 청년이 ‘패션’으로 하나됐다
[르포] 동묘 구제시장, 노인과 청년이 ‘패션’으로 하나됐다
  • 김혜선 기자
  • 승인 2019.07.11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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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서울 동묘 구제시장은 원래 노년층이 자주 찾는 도떼기시장이었지만, 최근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세대 통합의 장으로 변했다. 노인과 청년이 ‘통하는’ 지점은 패션이다.

(사진=김혜선 기자)
9일 동묘 구제시장의 옷 무덤. 옷 무덤은 구제 옷을 한 곳에 쌓아 놓고 파는 장터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9일 오후 1시경 방문한 동묘 구제시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북적였다. 동묘 시장은 구제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구제 옷거리’가 메인 스트리트이고, 구제 옷 거리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퍼진 골목에는 골동품 등 잡동사니를 쌓아 놓고 판다. 원래는 ‘할아버지들의 홍대’로 불리던 동묘였지만, 최근 공중파 등 방송에서 저렴한 구제 상품을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소개되면서 청년층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때문에 동묘 거리는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한데 섞여 옷을 고르는 풍경이 일상이다. 과거에는 촌스럽다고 외면받던 동묘의 ‘아재 패션’도 요즘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테크웨어’라는 스타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테크웨어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와 웨어(Wear)의 합성어로, 등산복 등 기능성 의류를 조합한 패션을 뜻한다.

동묘 시장에서는 반팔 셔츠에 등산용 조끼를 걸쳐 입은 어르신들의 옷차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다른 색의 조끼를 입거나 크로스백으로 포인트를 주는 등 나름대로의 멋을 뽐냈다. 영국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동묘 시장의 아재 패션을 보고 영감을 얻어 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코스타디노브는 지난해 동묘 시장을 방문한 뒤 자신의 SNS에 “세계 최고의 거리. 스포티(sporty) 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 매치 정신”이라고 극찬했다.

유명 디자이너 외에도 동묘는 연예인이나 그에 준하는 ‘패션 피플’들이 사랑하는 장소다. 온갖 옷가지들이 모여있는 탓에 기성품과는 다른 매력의 옷을 고를 수 있기 때문. 모델로 활동하던 배정남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묘 시장을 애용한다고 밝혔다. ‘3시 전에는 한 장에 2천~3천 원, 3시 이후에는 3장에 5천 원’이라는 쇼핑 노하우도 함께 알렸다.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동묘 시장을 찾았다는 정현우(17·남) 학생은 “테크웨어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 패션 유튜브 같은 곳에서 동묘에 쇼핑하러 가는 영상을 많이 본다”며 “원래 10만 원정도 하는 옷을 3만 원에 샀다. 학생이라서 구제인가 아닌가는 상관없고, 저렴하면 다 좋다”고 말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9일 동묘 시장에서 쇼핑하던 학생들. 검은 봉지에 구제 옷을 가득 담았다. 젊은이들은 유튜브나 방송 등을 보고 동묘 시장에 찾아온다고 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테크웨어가 아니더라도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동묘 시장을 찾는다. 이날 옷 무덤(옷을 바닥에 쌓아놓고 파는 장터)에서 옷을 고르던 김경령(24·여) 씨는 “패션을 잘 모르긴 하지만, 요즘 오버핏 재킷 같은 구제 스타일을 입어보고 싶어서 동묘를 찾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구제라서 찝찝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친구들이 잘 입고 빈티지나 구제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작 테크웨어나 빈티지 패션의 선두주자가 된 어르신들은 ‘편해서’ 입는다고 한다.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등산용 조끼는 각종 잡동사니를 넣기 좋고, 사이즈가 한참 큰 옷은 활동하기 편리하다. 일명 ‘오버핏 재킷’을 입은 김정곤(85·남) 씨는 “매일 동묘에 온다. 옷은 집에서 직접 골라 입었다”며 “너무 딱 맞는 옷은 걷기 불편하다. 편하게 입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젊은이들이 없었는데 2년 전부터 많아졌다. 옷 장사가 잘 되니 거리가 온통 옷 가게로 가득 찼다”고 덧붙였다.

(사진=김혜선 기자)
동묘 시장에서 만난 어르신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의 옷차림을 재해석해 일명 테크웨어나 빈티지 룩으로 입곤 한다. (사진=김혜선 기자)

체크무늬 바지와 셔츠를 과감하게 믹스 매치한 50대 남성은 “동묘에 옷을 사러 오지는 않고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온다”고 말했다. 스타일이 좋다고 하자 “조금 젊게 입는 편이다. 젊었을 때는 노래를 조금 했다”고 웃었다. 그는 “최근 3~4년 전만 해도 젊은이들이 없었는데, 요즘 (동묘)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거리가 밝아졌다”고 말했다.

동묘의 변화는 외국인들도 느끼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바네사 씨와 크리따 씨는 “6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동묘에 와 본 적이 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옷 가게가 굉장히 많아졌다”며 “길이 조금 좁긴 하지만, 구제 옷 품질이 생각보다 좋다. 나도 몇 개를 샀다”고 말했다.

김혜선 기자 hyeseonkim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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