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비장애인 체험 진행
약시부와 전맹부 경기...귀 기울이는 축구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새까만 안대로 모든 빛을 차단하니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이내 두 귀를 열고 공이 굴러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사각사각. 어린 시절 한 번쯤 사용해본 리듬악기 ‘마라카스’와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미니 공이 느껴졌다. 귀를 열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12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의 송파시각장애인 축구장을 본지 취재진이 방문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12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의 송파시각장애인 축구장을 본지 취재진이 방문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문화·예술 및 스포츠 여가를 비장애인만큼 자유롭게 향유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영화관에만 가도 시각,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자막과 화면해설 등이 제대로 갖춰진 베리어프리(Barrier Free) 상영관을 찾기 어렵다. 문화·예술 여가뿐만 아니라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등록 장애인 인구는 254만 명 이상이다. 웬만한 광역지방자치단체 인구수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충분하지 않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주관하는 전국의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 63곳이다. 장애인 인구수를 비교하면 민간 체육시설을 합한다 해도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이하 ‘송파축구장’)은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향유할 수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축구 경기를 위한 체육시설이다. 스포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축구’와 ‘시각장애인’을 연결 짓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축구는 하계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권위있는 스포츠다.

다산복지재단이 지난 1999년 6월 서울시와 송파구의 지원으로 개장한 송파축구장은 아시아 최초의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이다. 송파축구장에서는 축구 강습과 동호회 운영, 전문 지도자 양성, 국제 교류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인 만큼 이곳은 시각장애인 축구 규칙에 맞는 규격과 물품 등을 갖추고 있다.

왼쪽부터 시각장애인 경기 전용 축구공에 사용되는 자석과 안대. (사진=김혜선 기자)
왼쪽부터 시각장애인 경기 전용 축구공에 사용되는 자석과 안대. (사진=김혜선 기자)

경기 규칙은 ‘풋살’과 유사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는 ‘약시(弱視)부’와 ‘전맹부’로 나뉜다. 약시부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지만, 시력 교정이 불가능한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한다. 반면 전맹부는 시력이 남아있지 않은 시각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경기다. 경기 규칙은 풋살과 비슷하다. 풋살은 축구와 유사한 점이 많은 스포츠이나 경기 인원과 시간, 경기장 규모 등에서 일부 차이점이 있다.

경기에는 골키퍼를 포함한 5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이때 골키퍼는 비장애인이나 약시인들이 맡는다. 골이 쉽게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경기장 규모도 풋살 경기장과 비슷하다. 송파축구장은 일반적인 축구 경기장의 절반가량인 20m×40m 규모 인조 잔디 구장과 2개의 골대를 갖췄다. 축구 경기에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 역시 풋살공과 매우 흡사하다.

다만 전맹부 경기에서 사용하는 공은 비시각장애인 경기와 약시부에서 사용하는 공과 다르다. 공 안에 소리가 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공 안에는 쇠로 만든 자석들이 있는데, 선수들은 자석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로 공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그라운드를 누빈다. 이 때문에 전맹부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에서는 응원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울러 경기에는 선수 외에도 3명의 가이드가 경기를 함께 뛴다. 가이드는 선수들에게 골대와 공 사이 거리 등의 정보를 전달한다. 전맹부 경기의 경우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 흐름이 끊기는 걸 막기 위해 경기장에 펜스를 설치한다. 또 경기의 공정성을 위해 선수들에게 특수 안대를 씌운다. 일부 전맹부 선수 중 빛을 감지하는 시각장애인도 있기 때문이다.

송파시각장애인축구경기장 전경. (사진=김혜선 기자)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 전경. (사진=김혜선 기자)

눈을 감고 귀 기울이는 축구의 매력

본지 취재진은 이달 12일 오후 2시께 시각장애인 축구를 체험하기 위해 송파축구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해를 돕고, 시각장애인 축구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장애인들을 상대로 체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체험 종목은 전맹부 경기다. 사전에 신청하고 약속을 잡으면 누구나 체험이 가능하다.

체험에 임하기 전 송파축구장 관계자를 통해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 규칙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날 교육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해외 전맹부 시각장애인 축구 선수들의 실제 경기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다. 빠르게 드리블하거나 상대 선수를 향해 반칙을 범하는 등 선수들의 움직임은 비시각장애인 선수들만큼 역동적이었다.

체험은 경기장에서 이루어졌다. 한 줌의 빚까지 전부 차단한 새까만 안대를 쓰고 진행됐다. 촉감은 부드럽고 폭신폭신하지만, 다소 더웠다. 다행히 전날 한 차례 비가 내린 덕분에 30도가 넘지 않는 쾌적한 날씨가 체험을 도왔다.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체험은 간단한 동작만 진행한다. ▲ 3m 앞에서 정면으로 굴러오는 공을 차기 ▲ 좌우 사이드 방향으로 굴러오는 공을 차기 ▲ 공을 직접 드리블하면서 관계자 주변을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가기 등 세 가지다. 송파축구장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축구 경험이나 운동 신경이 부족한 사람들도 큰 어려움 없이 체험할 수 있다.

지난 12일 오후 시각장애인 축구를 체험하는 본지 취재진.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12일 오후 시각장애인 축구를 체험하는 본지 취재진. (사진=김혜선 기자)

안대로 눈을 가린 체험자는 굴러오는 공에서 나오는 소리에 의지해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소리는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리듬악기인 ‘마라카스’ 소리와 유사했다. 어린 시절 한 번쯤 들어봤던 익숙한 소리였다. 귀를 자세히 기울이면 비장애인들이라도 공이 왼쪽으로 오는지, 오른쪽으로 오는지 알 수 있다.

눈을 가리고 오직 소리에만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과감하게 움직여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면 공이 금세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관계자의 지시와 공의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발에 공이 걸린다. 체험이 끝난 후 안대를 벗으니 뜨거운 햇빛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날씨 때문인지 땀이 났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시원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초반에 다소 당황했지만, 이내 두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하니 투박한 공을 느낄 수 있었다. 귀를 열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취재진의 체험을 지도했던 관계자는 “실제로 주말마다 시각장애인분들이 축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오신다”며 “전맹부, 약시부 경기가 격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은 향후에도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스포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해당 관계자는 “내년에도 시각장애인 축구 강습이나 축구 동호회 지원 등의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며 “축구를 배우고 싶다는 시각장애인들의 요청이 들어올 경우 적극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도 치러질 도쿄 패럴림픽에 대해서는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며 “우리 측에 지원 요청이 있다면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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