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일본의 경제 보복과 중국·러시아의 군용기 도발, 북한 비핵화 등 외교 문제가 산적한 한반도에 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내민 것은 ‘청구서’였다. 24일 볼턴 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났지만 우리 측이 내심 언급을 바라던 일본의 경제 보복 관련 발언은 자제하고 방위비 분담금과 호르무즈 해협 사안을 논의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사진=뉴시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사진=뉴시스)

이날 정 실장은 청와대에서 볼턴 보좌관을 만나 최근 현안과 한미 간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하고 ‘한미 안보실장 협의 결과 대외 발표문’을 밝혔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밝혔다.

회동에서 정 실장은 볼턴 보좌관에 최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으로 진입한 사건을 설명했다. 전날 중국 군용기와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KADIZ)에 수차례 진입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특히 러시아 군용기는 동해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약 7분간 침범했다. 이에 대해 볼턴 보좌관은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회담 이후 북미 간 실무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은 한미 간 상호 호혜적이고 포괄적인 동맹을 재확인하고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여기서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 동맹관계’라는 표현은 한일 관계에 대한 논의를 뜻한다고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대신 볼턴 보좌관은 방위비 분담과 호르무즈 파견 등 ‘청구서’를 내려놨다.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은 오는 2020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동맹의 정신을 기반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초 미국과 방위비 협상에서 올해 한국의 주한미군 분담금을 8.2% 인상한 1조 389억 원으로 합의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동안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재차 강조한 만큼, 이번 발표문 역시 방위비 인상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한 사안도 지속적으로 협의해가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파견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민간 상선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이와 관련하여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너비 50km의 좁은 바닷길로 주요한 원유 수송로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미국은 연합군을 조성해 해협을 지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정 국방장관과 강 외교장관과의 만남에서도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정 장관과의 회동에서는 한일 안보 협력을 지속·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같이 하고 한일 및 한미일 안보 협력 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는 최근 청와대에서 일본 경제보복의 대응카드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가 거론되자 미 국무부에서 즉각 “미국은 한·일 지소미아를 전폭 지지한다”고 반응한 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또 정 장관과 볼턴 보좌관은 미의 공동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달성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강 장관과의 회동에서는 볼턴의 ‘청구서’가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강 장관과 볼턴 보좌관은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합리적, 호혜적으로 해결해왔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해 평가했다. 반면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한일간 추가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다는 기본 인식하에, 미측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포함, 향후 더욱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며 구체적인 일본 경제 보복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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