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 구걸하는 ‘베그패커’ 번화가서 성행
젊은층 백인 다수..정부 “단속 어려움 有”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A(26)씨는 최근 유동인구가 많은 홍익대학교 입구 인근에서 사진을 판매하는 배낭 여행객들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청년층으로 추정되는 백인 남성이었다. A씨는 “외국 현지 사진에 한창 관심이 많을 나이인 20대 청년들이 판매대 앞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본지 취재진 역시 수개월 전 퇴근 시간대 서울 구로구 지하철역 인근에서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2, 30대로 추정되는 백인 여성이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돈이 모자르다. 도와달라’라는 문구가 써진 상자를 앞에 두고 팔찌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하고 있는 물건들은 액세서리로 상품성이 높지 않아 보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간편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불법적인 상행위 등을 통해 여행비를 버는 외국인들. 이들을 전문용어로 ‘베그패커(Begpacker)’라고 한다. ‘구걸하다’라는 뜻인 ‘Beg’와 배낭 여행객을 뜻하는 ‘Backpacker’의 합성어다. 서울의 번화가나 관광지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지 취재진과 A씨가 목격한 것처럼 이들은 자신이 직접 찍었다는 여행 사진이나, 손수 제작했다는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아마추어 수준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놓고 구걸하는 베그패커들도 있다. 주로 북미나 유럽 출신으로 알려진 젊은 층 백인 남녀다.

베그패커는 불과 수년 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B(27)씨는 “재작년 서울 관악구 일대에서 팔찌나 액자, 사진 등을 판매하는 젊은 백인 남성을 본 적이 있다”며 “대학가 인근이라 (해당 남성) 또래 학생들이 판매대를 많이 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백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우호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점 때문에 베그패커들은 현지인으로부터 상당량의 돈을 버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태국에서 독일 남성이 베그패커 활동으로 돈을 벌어 술값으로 탕진했고, 현지 당국으로부터 강제 추방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자 나라 여행객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아시아 국가 현지인들의 금전을 노리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불법이지만, 단속 어려움 有

모든 베그패커가 번 돈을 유흥비로 탕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난한 배낭 여행객이 여행지에서 돈을 벌어 여행비를 마련하는 행위는 보는 시각에 따라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출입국 정책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대변인실 답변을 통해 본지에 “베그패커의 대부분은 무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으로 추정된다”며 “이 경우 국내에서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베그패커들의 상행위가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법무부 대변인실은 “‘영리 활동’에 해당하려면 연속적·반복적이거나 업으로 하는 등 직업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며 “일회적이거나 일상생활에 부수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은 경우에는 ‘영리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외국인이 순수하게 예술 활동을 목적으로 길거리 공연을 할 경우도 있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법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게 법무부 대변인실의 설명이다.

물건 판매 행위나 길거리 공연을 하는 베그패커의 경우 상황에 따라 단속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불법적인 영리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야만 조치가 가능하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대놓고 구걸 행위를 하는 베그패커는 그나마 조치가 쉽다. 법무부 대변인실은 “단순 길거리 구걸 행위라면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경찰에서 단속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 경범죄 처벌법이 적용돼도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 등의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베그패커에 대한 문제 의식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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