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대 대학생들로 가득한 ‘젊음의 거리’ 신촌은 다른 곳들보다 변화가 빠른 곳이다. 그런 곳에 강산이 다섯 번 변할 만큼의 세월 동안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어찌 보면 젊음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그곳은 50년 넘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복지탁구장’이다.

신촌역 3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복지탁구장 (사진=선초롱 기자)
신촌역 3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복지탁구장 (사진=선초롱 기자)

 

복지탁구장은 신촌역 3번 출구로 나와 연세대학교 방향으로 50미터쯤 걸어가면 나오는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즐비한 상가들 사이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이 건물은 1958년 3개 층으로 건축됐다가 1961년 1개 층이 증축된, 6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복지탁구장은 1962년 5월 기계체조 선수 출신 윤요섭 씨가 개업했다. 윤 씨는 이 건물의 건물주이기도 하다. 현재는 따로 관리인을 두고 있다. 

개업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연세대학교 인근의 탁구장은 복지탁구장이 유일하다. 복지탁구장은 오랫동안 생활 탁구의 명맥을 이어온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엔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또한, 서울의 역사를 품고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가기를 바란다’라는 뜻으로 서울시가 선정한 ‘오래가게’에도 선정된 바 있다.

‘복지탁구장(福地卓球場)’의 상호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복지(福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교회 용어인 복지(福地)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땅을 의미한다. 물론 탁구장 분위기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는 않다. 

복지탁구장 내부 모습. (사진=선초롱 기자)
복지탁구장 내부 모습. (사진=선초롱 기자)

추억의 사랑방

오랜 추억을 품고 있는 만큼 복지탁구장은 옛날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새롭게 시공한 바닥재와 소모품인 탁구대, 탁구채 등의 교체만 있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과거가 이어져 오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주로 찾는 이들 역시 70~80대의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다. 물론 대학교 근처에 있어 대학생 및 젊은 고객들도 많이 찾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로 오는 고객은 나이대가 높다. 특히 복지탁구장을 찾는 70~80대 대부분은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다닌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기자가 복지탁구장을 직접 찾았던 지난달 29일에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연령대는 상당히 높았다. 그래도 탁구 라켓을 들고 있는 모습만큼은 20대 젊은이들의 열정과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현재 복지탁구장을 7년째 관리해오고 있는 관리인 이윤자(69) 씨는 “70~80대 어르신들은 레슨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아요. 동네 분들을 비롯해 지인들도 많이 오고 있어 사랑방 개념으로도 볼 수 있죠. 그리고 수년간 탁구를 배워온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엔 서울시에서 선정한 보존 가치가 크고 상징성이 있는 ‘추억 담긴 가게’ 50곳에 이름을 올리면서 복지탁구장을 찾는 가족 단위 고객이 늘기도 했었다. 특히 서대문구에서는 복지탁구장을 비롯해 홍익문고, 미네르바 등 지역 내 선정된 3곳의 가게를 공동홍보하기 위해 ‘서대문 골목 여행 시리즈’를 기획해 진행했다. 3개 가게의 이야기와 위치 등을 담은 종이 쇼핑백을 제작해 배포하고, 카드 뉴스, 영상, SNS 등에 홍보하기도 했다. 

다만 그 기간이 1~2개월로 짧아 꾸준한 고객 유치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 씨는 “당시 홍보 종이 쇼핑백에 기한이 적혀 있었어요. 그게 없었더라면 종이쇼핑백이 다 소진될 때까지는 계속 진행되지 않았을까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복지탁구장에 진열된 탁구채. (사진=선초롱 기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탁구채. (사진=선초롱 기자)

초보자도 부담 없는 곳

복지탁구장의 매력은 탁구 초보자들이 부담 없이 와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씨에 따르면 다른 곳들의 탁구장은 동아리, 동호회 등을 이룬 사람들이 찾아가거나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선뜻 방문하기가 어렵다. 반면 복지탁구장은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이용하기 쉽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는 “복지탁구장은 레슨은 물론 혼자 연습도 가능해 초보자들도 많이 찾아와요. 그 점이 바로 이곳만의 특별한 점이에요”라고 덧붙였다. 

현재 복지탁구장은 7개의 탁구대와 연습을 도와주는 1개의 탁구 로봇으로 구성돼있다. 또한 탁구 레슨을 도와주는 전문 코치가 늘 상주해있다. 실제로 이 씨도 복지탁구장에서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32년간 운영하던 하숙집을 정리하고 이곳을 관리하게 된 것도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에서 시작됐다. 

이 씨는 “원래부터 탁구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동네에 있는 탁구장에 다니게 됐는데, 그곳을 주로 찾는 이들은 교직에 있던 교사분들이었어요. 학교에서 탁구 레슨을 받은 것은 물론, 경력도 10년 이상 되는 그들과 함께하기란 쉽지 않았죠. 그래서 복지탁구장에 와서 레슨을 받게 됐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오게 됐죠”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아쉽게도 기자가 찾아가 날에는 전문 코치가 휴가 중으로 직접 레슨을 받지는 못했다. 

복지탁구장 관리인 이윤자 씨가 손님들과 함께 탁구를 치고 있다. (사진=선초롱 기자)
복지탁구장 관리인 이윤자 씨가 손님들과 함께 탁구를 치고 있다. (사진=선초롱 기자)

복지탁구장의 미래는?

현재 복지탁구장을 찾는 고객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다. 2~3년 전과 비교해 1/6로 줄었다는 게 관리인 이 씨의 설명이다. 그나마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다른 곳에 비해 관리비가 적게 들기는 하지만, 일정한 수입 없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게 쉬운 일을 아니다. 이 씨도 이런 이유로 고민이 많은 상태다.

그런데도 복지탁구장 운영을 이어나가고 싶은 건 그동안 간직해온 추억 때문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생활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만큼 그 의미도 깊을 것이다. 

이 씨는 “부부, 연인, 가족들이 적은 돈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요. 그런 점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탁구는 무척이나 유쾌한 운동입니다. 특히 이곳은 누구나 쉽게 탁구를 접하고 배울 수 있기도 하죠. 마음 넉넉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복지탁구장’에 많이들 놀러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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