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걷지 마라’ 청원 등장...수험생·경험자 공감 有
평가원, 올해도 시험지 회수...“부정행위 막는 게 우선”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몇 년 전 수능 당일 가채점표에 정답을 적으려다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일부 문항을 다 적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다음 과목에서는 적지도 않았습니다. 수험생들에게 부담만 가는 데 왜 시험지를 걷어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2학년도 수험생 직장인 C씨-

(사진=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캡처)
(사진=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캡처)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시기 수험생들은 시험 공부뿐만 아니라 시험 환경과 시험 시간 관리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수험생들의 열의가 가장 불타고 있을 무렵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부산에서 고3 수험생들을 가르치는 한 교사가 수능과 관련한 청원을 게재했다. 해당 청원은 2일 오후 3시 30분 기준 2만 8,374명의 동의를 받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해당 교사는 지난달 11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당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시험지를 걷어가지 말고, 수험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그는 “수험생들은 부족한 시험 시간을 쪼개 40개나 되는 정답을 매시간 수험표 뒤에 정신없이 적어서 나오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못 적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많은 수험생은 가채점을 위해 시험 시간 내에 자신이 적어낸 정답을 수험표 등 다른 종이에 옮겨 적는다. 자신의 점수와 예상 등급을 알아야 대학 입학 상담과 원서 지원 전략을 마련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지가 이달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20대 이상 성인남녀 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70.37%에 해당하는 38명이 수능 시험 당일 가채점을 위해 수험표 등에 답안을 옮겨적었다고 응답했다.

해당 교사는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학생들은 점수와 등급이 필요하다”며 “특히 최저 등급이 적용되는 학교에 지원한 수험생들을 면접 참여 여부 등을 논할 때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면접을 하러 갈지, 면접이 겹치는 경우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를 판단할 때 꼭 필요하다”며 “그래서 필사적으로 답을 적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무원 시험은 되고 수능은 안 된다?

올해 수능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 역시 시험지를 회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고3 수험생들이 다수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A 수험생은 “다른 국가 자격증 시험을 볼 때는 시험지를 회수하지 않는다”며 평가원의 시험지 회수 방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공무원 시험의 경우 시험지를 수험생들에게 나눠준다. 다만 직렬에 따라 시험지 회수 여부가 다를 수 있는데, 군무원 시험 등의 경우 시험지를 나눠주지 않는다.

또 다른 회원 B 수험생은 “현재 입시 정책은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 지원을 못 한다”며 “학생들이 수능을 잘 본 경우 수시 면접에 참가하지 않는 등의 행동으로 정시 지원을 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험지를 걷어가) 가채점이 잘못되면, 수험생들에게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시험지 회수를) 반대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아울러 시험지 회수가 수험생들에게 도리어 부담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수능을 치렀던 20대 성인남녀 상당수는 수능 시험 도중 가채점을 위해 정답을 적느라 소요된 시간 때문에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고 대답한 이들은 54명 16명으로 전체 29.62%에 불과했다.

2012학년도 수능을 치렀던 직장인 C(27) 씨는 “수능 시험 당일 가채점표에 정답을 적으려다 시간에 쫓겨 일부는 적지 못했다. 다음 과목은 적지도 않았다” 며 “수험생들에게 부담이 가는 데 왜 시험지를 회수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DB)
(사진=뉴스포스트DB)

평가원 “수험생 불편 알지만...”

수험생들과 수능 경험자, 현직 교사 등의 불만에도 평가원은 시험지 회수 방침을 고수할 입장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시험지를 수험생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이 해마다 제기되는 것을 안다”면서도 “수험생이 작성한 OMR 카드가 오류가 있거나, 잘못 표기되는 경우 해결하기 위한 근거자료로 시험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수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해당 관계자는 “학생들이 OMR 카드를 입력할 때 홀수형이나 짝수형을 잘못 기재하거나, 시험 배부 시 잘못 배부되는 경우가 있다”며 “평가원에서는 학생들이 홀수형 짝수형을 올바르게 기재했는지, 수능 성적이 나오기 전에 시험지를 통해 미리 검토한다”고 말했다.

시험지를 통해 잘못 기재한 것을 처리한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매년 수십 건 정도 수정된다”며 “수능 시험 성적이 최종 발표된 이후에는 점수를 절대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성적이 발표되기 전에 홀수, 짝수형을 잘못 기재했는지 검토하는 것”고 덧붙였다.

시험지를 회수하는 이유는 OMR 카드 기표 오류 때문만은 아니다. 해당 관계자는 “장애인 수험생 경우 시험 시간이 비장애인 수험생보다 길다”며 “시험지를 회수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유출되는 부정행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의 부정행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수험생들의 편의를 위해 시험지를 회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과 최소한의 부정행위와 수험생의 홀, 짝수 기표 오류 등을 방지하기 위해 시험지를 돌려줄 수 없다는 평가원의 입장이 매년 갈등을 빚는 상황.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부정행위 등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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