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인권] 택배기사의 소원...'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노동과 인권] 택배기사의 소원...'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 선초롱 기자
  • 승인 2019.08.08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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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노조, 8월 16, 17일 '택배 없는 날' 제안
- 사측 "개입할 수 있는 문제 아냐"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부산의 A 택배회사 터미널에서 6년째 근무하는 장 모 씨는 5명의 아이를 둔 다둥이 아빠다. 매년 아이들 방학 시즌이 되면 장 씨의 집은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방학동안 친척집으로 보내려는 와이프와 보내지 말라는 아이들 사이의 웃지 못할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방학 숙제 제출용 사진을 찍으러 송도 바닷가에 가서 사진만 찍고 바로 돌아오고는 한다. 장 씨는 호소문을 통해 “열심히 일 한 대가로 가족들과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을 바라는 게 그렇게 큰일인지 모르겠다”며 “방학 숙제용 사진 속 아빠가 아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 속의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8일 오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 노원터미널 앞에서 노원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시민사회와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8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 노원터미널 앞에서 노원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시민사회와 함께 '택배 없는 날'을 촉구하는 내용의 합동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최근 택배기사의 휴식 보장을 위해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택배연대노동조합 등은 휴가철인 8월 택배업계 비성수기에 맞춰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을 만들어달라며 지난달부터 꾸준히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같은 제안에 국민들은 압도적인 찬성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대형 택배사들은 택배기사들의 휴가는 대리점의 고유 권한이라며 한걸음 물러나 있는 중이다. 택배 없는 날로 제안한 8월 16일, 17일을 일주일여 앞둔 8일, 이들은 한 번 더 거리로 나섰다.

8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전국택배노동조합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노원터미널 앞에서 ‘8월 16, 17일 택배 없는 날!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노원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시민사회 등도 함께했다. 

노조는 “택배노조에서 제안한 ‘택배 없는 날’이 사회적인 호응을 얻었다”며 “8월 16일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지금, 현실화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결단한다면 ‘택배 없는 날’이 만들어질 수 있다. CJ대한통운 노원지점은 동참 물결에 호응해 달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CJ대한통운 노원터미널에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의 휴가 신청서를 받아 내일(9일) 사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150명의 택배기사 중 35명이 휴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8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 노원터미널 앞에서 노원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시민사회와 함께 '택배 없는 날'을 촉구하는 내용의 합동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8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 노원터미널 앞에서 노원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시민사회와 함께 '택배 없는 날'을 촉구하는 내용의 합동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택배기사들이 쉽게 쉴 수 없는 이유

이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선 까닭은 택배기사들의 노동 실태 때문이다. 서울노동인권센터가 서울지역 일반택배업체 소속 택배기사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017년에 진행한 ‘서울지역 택배기사의 노동실태와 정책개선방안’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3.37시간, 한 달 평균은 320시간에 달한다. 연간으로 따졌을 때는 3,848시간으로 OECD 평균 노동시간(1,764시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작업량 또한 평상시엔 253건(집하 66건, 배송 187건), 성수기엔 378건(집하 102건, 배송 276건)으로 근무 강도 역시 높은 편이었다.

누구보다 휴식이 필요한 직업이지만 헌법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특성상 쉽게 휴무를 사용하기가 어렵다. 택배기사는 택배회사 대리점과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법정노동시간, 연차휴가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측 역시 이들의 병가나 휴가에 대해선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스스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물론 택배기사가 휴일을 쓰는데 법적 제약은 없다. 다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휴가를 낼 경우 당일 택배 물량을 기사 개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택배기사는 휴가를 쓰려면 직접 다른 배송 차량(용차)과 인력을 수배해 하루 일당의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급하는 등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택배기사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구조적 문제인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택배기사들의 휴무는 대리점과 협의로 진행되는데, 이미 이전부터 같은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이 순차적으로 휴가를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측이 특정날짜에 휴가를 권고하는 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에게 휴식을, ‘8월 16, 17일 택배 없는 날‘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글에는 “택배회사는 일 시킬 때는 직원처럼 부려먹지만, 휴가나 병가를 낼 때는 ‘개인사업자’라며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므로 팔이 부러져 깁스하고도 배송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에게 휴식이 보장되도록, ‘8월 16, 17일 택배 없는 날’을 양해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선초롱 기자 seoncr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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