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경고에도 정부 ‘수수방관’…법망 허술함 이용한 ‘사기’
-향후 피해사례 더 늘어날 듯…기존 피해자 구제방안은 어디에
-‘집 값이 오르면 내 것, 떨어지면 세입자 것’, 도덕적 해이가 만든 폭탄
-허술한 국가 제도와 비양심적인 임대인들 사이에서 고통 받는 세입자들

[뉴스포스트=홍성완 기자] 평택 비전동에 사는 30대 초반의 A씨는 1억5000만원의 전세계약을 맺고 입주했다. 그러나 2년 뒤 계약 만료가 된 시기에는 이 아파트 시세가 6000만원이 떨어졌고, 집주인은 돈이 없다는 핑계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계약이 끝난 상태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30대 초반의 B씨는 2억원의 전세금을 내고 서울 은평구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B씨의 전세금으로 여러 곳에 갭투자를 했고, 집값이 오르지 않자 전셋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잠적해버렸다. B씨가 알고 보니 집주인은 자신의 건물 소유권을 노숙자에게 넘겨버린 상태였고, 자신뿐만 아니라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 됐다. 

법망의 허술함을 이용해 갭투자를 활용한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다. 피해자들은 현재 집주인에 대해 사기혐의로 형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최근 부동산시장이 안정세에 들어서면서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투자는 집주인들이 했으나, 그 피해는 세입자들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피해자 대부분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들이거나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사회초년생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갭투기'로 인해 '청운'의 꿈을 안아야 할 꽃다운 청년들이 절망감과 함께 사회에 대한 불신감만 키워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갭투자 열풍이 절정에 올랐던 2년 전부터 깡통전세에 대한 피해를 경고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제야 전세가율 확인 시스템 및 보상 대책을 연내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다가구 주택 밀집지역(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홍성완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다가구 주택 밀집지역(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홍성완 기자)

▲ ‘갭투자’ 열풍이 부른 ‘깡통전세’ 피해

최근 수원 영통구에서는 무려 800명이 넘는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위기에 처했다. 앞서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에서는 1000여 채의 집을 가진 다주택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광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1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갭투자’로 인해 세입자가 피해를 받은 경우다. ‘갭투자’는 전세금을 떠안고 집을 사 집값이 오르면 그 차액으로 이득을 보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시세 1억원 집에 8000만원의 전세금으로 입주한 세입자가 있으면, 세입자의 전세금을 안는 조건으로 2000만원에 이 집을 사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그 차액만큼의 이득을 보는 투기행위다. 

이들 갭투자자들은 그 동안 폭탄돌리기를 하듯 집을 매매하고 매입해왔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찾으면서 갭투자자들이 파산하는 상황이 늘었고, 무분별한 갭투자를 한 이들로 인해 세입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갭투기자들이 수백 채의 집을 샀다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나몰라라’하는 행태를 보이며 피해를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갭투자로 인한 피해사례는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업계와 일부 언론 등에 따르면 조선산업이 하향세를 보이면서 거제와 창원, 광양 등 남부 지역을 시작으로 충북 청주 120여 세대, 전북 익산 200여 세대, 경기 동탄 270여 세대, 수원 영통 820여세대, 서울 강서·양천 1000여 세대, 서울 영등포 140여 세대 등 그 피해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더 큰 문제는 이사를 가기 전까지 세입자들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같은 피해사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확률이 높다.

▲ 수수방관하던 정부, 피해자 구제도 뒷전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뾰족한 수를 내놓고 있지 못하면서 전세보증대출 가입만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일 국토교통부는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특례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동안 전세 계약기간의 2분의 1 이상 지난 경우 가입이 불가능한 전세금반환보증특례 가입을 계약기간 종료 6개월 전까지도 가입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23일 금융위원회는 주금공이 미반환 전세금을 우선 반환하고, 임대인에게 채권을 회수하는 프로그램을 연내에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고위험주택(선순위 대출 및 전세금 대출)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전세대출 이용 시 반환보증 가입가능 여부 확인을 의무화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세입자들은 늦게라도 대책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태를 반복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갭투자로 인한 깡통전세 피해 우려는 2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정부가 고강도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깡통전세’ 피해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충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부처에서는 연내에 대책을 내놓는다고 발표는 했으나, 아직까지 기존 피해자를 구제할 구체적인 방안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아울러 대부분 피해자들은 빌라나 원룸(다가구‧다세대) 세입자들인데, 이들 세입자들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 청년들과 신혼부부에게 전가되는 ‘갭투기’ 피해

갭투자로 인한 사례들을 통해 본 피해자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직장생활에 뛰어든 사회초년생들이거나 아파트 입주를 꿈꾸며 맞벌이를 하는 신혼부부가 대부분이다. 국민청원에는 갭투자로 인한 이들 세입자들의 구제를 요청하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서울 강서구 양천구 1000채 갭투기 전세 피해자라고 밝힌 한 청원자는 전세보증보험 가입 가능기간을 전세만료 6개월 전까지 늘려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현재 피해를 본 피해자들은 특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호소했다.

이 청원자는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 우선순위, 가입기간 등 모든 것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최근에 벌어지는 일로 또 다시 보험가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며 “전세보증보험사에서 100세대의 주택에 모조리 가압류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자는 “잠적한 갭투기 임대인에게 몇차례 구상권이 청구됐고, 그것을 빌미로 나머지 주택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한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생색은 내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가압류를 걸고 있다는 게 큰 기대에서 더 큰 실망으로 다가온다”고 비판했다.

이어 “벌써 6~9개월, 많게는 1년을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출산과 결혼 계획까지 모두 망쳐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사람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냐”며 “허술한 국가 제도와 비양심적인 임대인들 사이에서 왜 힘없는 세입자들이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갭투기 피해자라고 밝힌 청원자는 국민청원을 통해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이사를 계획 중이던 부부, 전세금을 회수할 수 없어 결혼일정과 출산계획이 엉망이 된 사람들, 부모님의 피 같은 돈 마저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 가압류가 들어와 곧 길 위에 나 앉아야만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살 방도를 찾아 나서다 전세자금을 온전히 회수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공들였던 청약의 기회도, 무주택자의 혜택도 모두 강제 박탈당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 청원자는 또 “피해자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청춘들”이라며 “부동산 법망과 안전망은 어찌 그리 허술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찌 그리 어려운 것일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갭투기자들에 대한 민사. 형사적 처벌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간곡히 요청한다”며 “‘집 값이 오르면 내 것, 떨어지면 세입자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상황에서 갭투기꾼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면 결국 이 투기가 ‘옳은 것’이라는 사회 정의로 간주될 것이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신뢰도는 크게 추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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