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함 100가지 넘는 전통 한복, 생활 한복 재해석 통해 대중화
- ‘코르셋 한복’, 멋있는 연출이지만 미스코리아에 적절하지 않아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곰팡내 나는 책을 뒤적여야 찾는 빛바랜 훈장 닦는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시대. 본지는 일찍이 자신의 업을 찾은 청년장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지자과지 우자불급야(知者過之 愚者不及也),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예술인은 중용(中庸)에 전해지는 이 풀기 어려운 화두를 마주하곤 한다.

옛것을 새것으로 풀어보려는 작업은 고루함과 방종함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옛것을 잘 아는 이는 계승이 지나쳐 현대적 해석이 부족한 아류작을 만들고, 옛것을 모르는 사람의 손끝에서는 새것의 모사품에 불과한 정체 모를 것이 나오는 까닭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려면 독을 강물에 던져버리라’는 일갈로 공안(公案)을 깨듯, 이 중용의 화두를 젊은 시선으로 시원스레 깬 한복 디자이너가 있다. 황이슬 ‘손짱’ 대표가 바로 그다. 그는 ‘나는 방탄소년단으로부터 전통문화를 재해석하는 영감을 얻는다’라고 명쾌하게 말한다.

<뉴스포스트>는 12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 위치한 손짱에서 반만년 한복의 본류에 새로운 물길을 내고 있는 황이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이슬 대표가 신혼여행 당시 입고 갔다는 생활 한복을 들고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황이슬 대표가 신혼여행 당시 입고 갔다는 생활 한복을 들고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 전통 옷인 한복을 디자인한다는 한복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생소하다.
“디자이너는 형태와 쓰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한복 디자이너도 다르지 않다. 형태라 함은 색깔, 소재, 길이 등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을 구상한다. 또 쓰임이라고 하는 것은 옷은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실용성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한복 디자이너도 다른 옷과 마찬가지로 축제, 장례식, 일상복 등 때와 상황에 맞는 한복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한다.”

▶ 한복 디자이너라고 하면 명인 아래 수제자가 있는 도제식 교육이 떠오르는데.
“정통파라고 하는 분들은 아직까지도 도제식 교육을 한다. 대금이나 가야금 같은 경우 해당 명인의 제자라는 표현으로 ‘홍 아무개 류’라고 하지 않나? 한복은 명인으로부터 배운 제자를 ‘홍 아무개 이수자’ 이렇게 표현한다. 또는 무형문화재 전수생, 이런 타이틀이 있다. 이런 라인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처럼 특정 라인이나 파벌이 없는 신진 한복 디자이너들도 설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처럼 전통적인 한복도 디자인하지만 퓨전한복이나 생활 한복을 주로 만드는 한복 디자이너들은 정통파 라인과는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르다.”

▶ 퓨전 한복 디자이너와 전통 한복 디자이너의 지향점이 어떻게 다른가?
“비단 한복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하는 타이틀의 세계적인 흐름과 방향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라고 하면 유명한 패션스쿨들을 나와야 했다. 국내는 또 안 쳐준다. 영국 세인트 마틴이나 미국 파슨스나, 벨기에 앤트워프나 이런 라인이 있었다. 거기 나와 런웨이를 한 번 꾸려야 디자이너라고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유명 스쿨에서 디자인을 배우지 않더라도 소비자의 의견과 니즈에 귀 기울여서 시대의 요구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디자이너들이 인정받는 추세다. 내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 나름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황 대표는 학부에서 디자인과 거리가 먼 산림자원학을 전공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황 대표는 학부에서 디자인과 거리가 먼 산림자원학을 전공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 비전공자라면, 학부에서 디자인과는 관련 없는 전공을 배운 것인가? 
“대학 4년 동안 산림자원학을 전공했다. 평점 4.4를 받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한복 디자이너라는 낯선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디자인 관련 여러 수업을 청강하거나 도강했다. 학부 시절 들었던 디자인 수업을 기반으로 대학원에서는 의류학을 전공해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배웠다. 대학원에서 복식사를 전공했는데 복식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 한복의 기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한복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정립했다.”

▶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
“2006년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축제에서 당시 유행하던 만화 ‘궁’에 나왔던 한복을 직접 제작해 입었다. 퓨전한복 형태였다. 공들여 만든 한복을 버리기 아까워 혹시나 하는 기대로 블로그에 판매를 희망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정말로 팔린 것이다. 내가 만든 한복이 팔린다는 데 재미가 붙어 몇 벌 더 제작해 블로그를 통해 팔았고 그 뒤로 아예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 생활 한복을 만들게 된 계기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한복을 더 편하게 잘 입을까를 고민했다. 2011년에 ‘한복 입기 100번 프로젝트’를 했었다. 1년에 한복을 100일은 입어보자는 계획이었다. 한복을 입고 활동하면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마음도 있었다. 스스로 소비자가 되고 한복 홍보도 하고. 이석이조 효과를 노렸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채 스무 번이나 입었을까.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고 느껴지는 불편함을 기록했는데, 100가지가 넘었다. 그래서 한복 디자이너로서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일상에서 활동이 편한 한복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 구체적으로 불편했던 점을 꼽는다면?
“형태 하나만 놓고 봐도 치마의 길이가 길어서 밟혔고 치마의 폭이 너무 커서 문처럼 좁은 공간을 지나다니기 불편했다. 화장실 이용은 말할 것도 없었고, 고름은 볼 때마다 풀어져 있고. 소매는 통이 넓어서 상을 가로질러 젓가락으로 반찬 한 번 집어먹을라치면 소매에 음식물이 다 묻었다. 치마저고리가 짧은 건 조선 후기 한복 형태인데 현재 대부분의 한복이 그 양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치마저고리가 짧아 손을 들면 겨드랑이가 딸려 올라가 상체가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접한 뒤 전통 한복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게 한복을 재해석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복은 벽에 걸어두고 감상하는 옷이 아니라는 신념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은 '2018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황이슬 대표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선 바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방탄소년단의 지민은 '2018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황이슬 대표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선 바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 한복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롤모델이 있다면.
“BTS다. 최근 BTS 팬클럽인 아미에도 가입했다. 그들이 세계 1등이라는 위치에 올라가기까지의 주옥같은 스토리가 좋다. 또 그 자리에서 겸손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 BTS의 그런 모습은 한복을 닮았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기 안에 있는 걸 숨김없이 꺼내놓았을 때다. 한복은 우리 민족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이다. 굉장히 독자적이고 멋있는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식 옷에 밀려 꺼내지 못했던 우리 민족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바로 한복이다.”

▶ 전통 한복을 생활 한복으로 재해석할 때 ‘이것까지는 한복이다’라는 기준이 있다면.
“한복다움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형태와 색깔, 디테일, 문양, 장식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형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옷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이때 전통 한복의 요소가 반절 이상은 담겨 있어야 한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개인적인 기준이다.”

▶ 2019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일명 ‘코르셋 한복’이 논란이 됐는데.
“그런 창작을 할 수 있다. 시도도 좋았다. 코르셋이라고 하는 서양 란제리와 한복을 융합한 발상은 굉장히 신선했고 연출도 멋있었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는 대한민국의 대표 미녀를 뽑는 상징성이 있는 대회다. 지금 21세기 여성상이 변하고 있지 않나? 몸매 예쁜 여성이 멋있는 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이 멋있는 시대다. 게다가 젠더 감수성이 민감해진 이 시기에, 여성이 코르셋을 벗자는 얘기가 나오는 이 마당에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코르셋을 입은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코르셋 한복을 시상식의 레드카펫 무대의상으로 입고 나왔다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슬 브랜드의 주력상품.
리슬 브랜드의 주력 상품. (사진=이상진 기자)

▶ 한복 사업을 시작하는 데 부모님이나 정부의 지원이 있었나.
“104만 5천 원. 부모님이 금전적으로 지원해주신 금액이다. 4만 5천 원은 사업자등록비용이었고 100만 원은 한복을 만들기 위한 원단이 필요했는데, 마침 중고 원단이 싸게 나와 부모님께서 그 비용을 지원해주셨다. 그 외 부모님 지원이라면, 밥 먹여주고 잠자리 제공해주신 것이다. (웃음)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한 지원이지 않나. 정부의 지원 사업은 물론 아니었다. 당시에는 지금만큼 활발하게 창업에 대한 지원이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또 스무 살의 나이에 그런 지원 사업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그때는 계획서를 작성할 실력조차 없었다.”

▶ ‘손짱’과 ‘리슬’ 두 브랜드의 차이는 뭔가?
“손짱이 처음 오픈한 브랜드다. 손짱은 ‘손재주 짱’의 줄임말이다. 손짱은 예복 등 퓨전한복 전문 브랜드로, 초창기 한복뿐만 아니라 앞치마와 손가방, 카드지갑 등 다양한 핸드메이드 소품을 함께 판매했다. 2014년 생활 한복 전문 브랜드로 론칭한 리슬은 내 이름인 황이슬에서 이슬을 따서 리슬이라고 바꾼 것이다. 리슬은 만들 당시부터 글로벌 진출을 고려했다. 이슬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하고 판단해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고 외래어 느낌이 나도록 리슬로 바꿨다.”

▶ 2006년부터 현재까지 매출액 변화가 궁금하다.
“2006년 당시에는 한 달에 20만 원 벌었다. 대학 1학년 학생이 꼼지락꼼지락 만든 제품이었으니 디자인이나 품질이 썩 좋았을 리가 없잖은가. 그러던 매출액이 슬금슬금 올랐다. 2013년은 1억 2,000만 원으로 매출이 늘었고 2014년 리슬 브랜드를 론칭한 뒤에는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15억 원 정도 매출이 나왔는데,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생활 한복 리슬 브랜드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한복과 생활 한복의 판매 비율은 1:99 정도다. 전체 매출액의 7 퍼센트가 외국인 비율이다.”

▶ 손짱과 리슬 브랜드의 한복이 다소 가격대가 높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손짱과 리슬 브랜드 한복의 가격대는 백화점 영 캐주얼 라인 의류 가격대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브랜드 여성복 정도다. 결혼식 등 예복을 맞춰봤다면 알겠지만 전통 한복 가격대의 1/4~1/5 정도 가격대다. 전통 한복을 대여하는 것과 비슷한 가격이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진 금액이라든지 원단을 비수기 때 비축한다든지 여러 가지 절감 방법을 사용해 최대한 낮춘 가격대다. 공임과 유통비를 줄인다면 더 낮은 가격도 가능할 텐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다.”

▶ 한복 시장이 크지 않다는 게 문제라는 것인가?
“그렇다. 수요가 적다 보니 만드는 양이 적고, 결국 생산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똑같은 티셔츠를 만들어도 100장 만드는 공임과 10,000장 만드는 공임은 10배 정도의 인건비 차이가 나게 된다. 이 부분이 한복 가격대를 높인다. 가격대와 더불어 한복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복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 한복 시장 파이를 키우기 위한 방법들을 제언한다면.
“후배를 양성하고 인재를 키워야 한다. 실제 한복 디자이너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의류회사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한복 업계 75%가 1인 기업일 만큼 소규모 회사가 많은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지난해부터 한복 디자이너가 꿈인 학생들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는 한복 디자이너 인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또 2017년부터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청소년들을 대학으로 ‘한국 스타트 스쿨’이라는 창업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하는 황 대표. (사진=이상진 기자)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하는 황 대표. (사진=이상진 기자)

▶ 정부 정책에 아쉬운 점은 없나.
“(한숨) 정부 주도의 산업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한복이라고 하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열악하다. 대표적으로 한복진흥센터가 있는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산하 기관이다. 문체부가 한복진흥원을 건립하기 위해 2019년 예산을 14억 5,600만 원 배정했다. 이 정도 금액이면 한복 행사 5개쯤 하면 예산 다 쓴다. 반면 한식진흥원이 있는데 여기는 1년 예산이 100억 원이 넘는다. 정부의 직접 지원 금액이 2019년 기준 100억 5,800만 원이다. 똑같은 전통문화 기관인데 예산 차이가 이렇게 난다. 예산 차이는 곧 관심의 차이다. 또 정부에서 추천해주는 유통망 지원을 보면 대부분 특산품 전시관이다. 김치 옆에 한복을 진열해놓고 그런다. (웃음) 이렇게 되면 김치나 한복이나 서로 민망하지 않겠나.”

▶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 한복을 입고 다닐 때 굉장히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국악인이냐, 무속인이냐 등등. 한복을 입은 사람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복도 하나의 다양한 패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더 나아가 한복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우리 전통 옷이다.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것에 편견을 갖지 말고 한복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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