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미술관 태극기 전시...임정 100주년, 광복절 기념
박광일 작가 역사 강연..."태극기 의미 오염되지 말아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태극기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국민들의 자유입니다. 태극기가 어떻게 쓰이든, 그걸 바라보는 것도 국민들 선택의 몫입니다. 다만 태극기의 의미가 오염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 미술관에 대형 태극기가 전시돼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 미술관에 대형 태극기가 전시돼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2019년은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서울지역은 물론 강원 삼척, 충북 옥천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태극기 달기 운동이 추진되는 등 태극기 관련 행사 열기가 뜨겁다. 

특히 서울 종로구 시립 탑골 미술관에서는 지난 5일부터 오는 16일까지 광복 기념전 '역사의 물결, 태극'을 개최해 다양한 태극기를 전시한다. 해당 전시회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한 태극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열렸다. 본지 취재진은 태극기의 역사와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탑골 미술관을 방문했다.

탑골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벽면 중앙에 걸린 거대한 태극기다. 태극기의 의미와 전시 목적 등이 벽면에 적혀있다. 탑골 미술관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서 쓰였던 태극기, 태극기를 찍어낸 목판, 김구 선생의 서명문이 담긴 태극기 등의 사진이 전시됐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탑골 미술관 관계자는 본지 취재진에 "'데니 태극기'부터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17개의 태극기 사진을 전시했다"며 "역사적으로 태극기가 어떻게 변천했는지 보여주고, 주 관람층인 어르신들이 태극기를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회에서 마주한 태극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국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건곤감리의 위치나 태극 문양 가운데 곡선의 기울어짐 등이 제각각이었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태극기는 수많은 변화과정을 거쳤다. 태극기가 현재의 형태로 지정된 것은 1949년 10월로 불과 70년밖에 되지 않았다.

흰색 바탕 한가운데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 문양,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네 모서리에는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 오늘날의 태극기의 모습은 이와 같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상징한다.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건은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상징한다. 이들 4괘가 태극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룬다.

14일 오전 박광일 작가가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4일 오전 박광일 작가가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태극기'

이날 오전 탑골 미술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27년 발자취를 담은 역사 탐방기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의 저자 박광일 작가가 진행하는 역사 강좌가 열렸다. '태극기의 역사와 근현대사'라는 주제로 열린 강좌에는 노년층 관람객 10여 명이 참석했다. 박 작가는 태극기의 의미와 제정 과정을 설명하면서 강좌를 시작했다.

탑골 미술관에서도 전시된 '데니 태극기'와 대한제국 의병장이 갖고 있던 '불원복 태극기',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소장하던 태극기에 대한 자세한 에피소드도 소개됐다. 강좌에 따르면 진관사 태극기는 3·1운동 당시 이곳에서 활동하던 백초월 스님이 독립운동에 쓰려고 일장기 위에 덧칠해 그려 만들었다. 백초월 스님은 독립 자금 모음에 앞장서는 등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동아일보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故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신문에서 지워버린 '일장기 말소사건'과 동족상잔의 비극 이후 북한이 태극기 사용을 금하고, 인공기를 국기로 제정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강연됐다. 일제의 탄압과 한국전쟁 등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관람객들의 탄식이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2019년 우리에게 '태극기'란

강좌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 태극기는 시대 상황에 외형뿐만 아니라 의미도 달라졌다. 일제강점기의 압제에서 태극기는 조국의 독립과 진정한 애국애족의 상징이었으나, 남북한이 갈라지는 동족상잔의 비극 이후에는 한민족 절반만 대표하게 됐다. 하지만 4·19와 5·18, 6·10 항쟁 등 민주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태극기는 여전히 국민 통합의 상징이었다.

현재 태극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2016년 촛불 항쟁 이후 태극기에는 이른바 한국의 극우 세력을 상징하는 '태극기 부대'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실제로 강좌를 들은 한 관람객은 박 작가에 태극기의 의미가 퇴색돼가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박 작가는 "태극기를 어떻게 쓰는 지는 국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면서도 "다만 태극기의 의미가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에는 일본 정부의 무역 규제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태극기가 또다시 강조되고 있다. 태극기가 '태극기 부대' 이미지에서 벗어나 일본의 일장기와 대비돼 국민통합 상징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이 태극기를 마케팅화 하면서 지나친 애국주의 상술 조장에 국기를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본지 취재진의 질문에 박 작가는 "평상시 태극기 마케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사람들은 무언가가 위협을 받을 때 그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의 대립이 커지면서 국가가 위협을 받는다고 (국민들이)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가 마케팅화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작가는 일부 기업들의 태극기 마케팅이 지나친 애국심을 조장한다는 주장에 크게 우려하지는 않았다. 그는 "국가 위기 상황이라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라며 "지금은 하나의 붐을 일으켰지만, 붐이 가라앉는다면 (기업들은) 애국심 마케팅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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