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국내 대기업들의 채용 전선에 '빨간불'이 커졌다. 대내외적인 경영 환경 악화로 인해 상당수의 대기업이 하반기 공개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 다만 인력 수요가 생겼을 때 충원하는 '수시채용' 비율은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여 직무 중심의 채용방식 변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사진=인크루트)
(사진=인크루트)

공채 줄고 수시채용 늘어

21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채용 동향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들이 하반기 공개 채용 규모를 하향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하반기에 상장사 2,221곳 중 조사에 응한 699개사의 66.8%는 채용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채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졸 신입사원 채용규모는 총 4만4,821명으로 전년 하반기보다 5.8%P 줄었다.

대기업의 하반기 채용 예정 규모는 전년 대비 4.1% 감소한 4만2,800명이었고, 중견기업은 21.7% 줄어든 1,390명으로 조사됐다. 

하반기 채용을 하지 않겠다는 기업도 11.2%에 달했다. 나머지 22.0%는 아직 채용 여부를 확정 짓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방식(복수 선택 가능)은 ▲‘공개 채용’ 49.6% ▲‘수시 채용’ 30.7% ▲‘인턴 후 직원 전환’ 19.6% 순으로 집계됐다. 공채 선발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가운데, 기업 규모별 공채 계획은 ▲’대기업’이 56.4%로 가장 높았고 ▲’중견기업’ 54.4% ▲’중소기업’ 42% 순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대기업의 수시채용 계획은 늘었다. 하반기 기업 규모별 수시채용 계획은 ▲’대기업’ 24.5% ▲’중견기업’ 26.3% ▲’중소기업’ 37.8% 순으로, 전년 하반기 대비 대기업 수시채용 계획은 11.8%로 1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한편, 본 조사는 올해 7월19일부터 8월14일까지 총 27일간 진행했다. 조사에 응한 상장사 699곳 중 △대기업 186곳 △중견기업 164곳 △중소기업 349곳이 포함돼 있다. 1대1 전화 조사로 응답률을 높였으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56%이다.

 

(사진=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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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중심으로..."규모 아닌 방식의 차이"

실제로 수시채용 확대는 일반적인 흐름이다. 연초 현대차 그룹이 가장 먼저 신입사원 공채 폐지에 나섰다. 이후 지난 7월 SK그룹과 KEB하나은행이 공채 규모 축소계획을 밝혔다. 신한은행도 디지털 및 IT 분야의 수시채용을 도입했다. 재계는 산업 환경의 급변으로 필요한 인재상이 수시로 달라지는 요즘 기존 공채 방식만으로는 민첩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기업 인사채용담당자들은 1년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상하반기 공채 준비에 매달려야 했고,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했다. 

이 같은 변화에 취업 시장은 술렁이고 있다. 대규모 채용을 견인해 온 공채 문화가 사라지면 취업 문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수시채용에 대해 전문성을 충족하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 고용창출팀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기업의 채용 트렌드가 공채 중심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은 '공채'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공채를 기반으로 한 호봉제를 채택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의 호봉제를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라며 "일본마저도 고도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는 수시 채용을 기반으로 한 직무급제로 임금 체계를 바꿨다"라고 덧붙였다.

호봉제란 공채로 입사해 근속연수에 따라서 급여가 상승하는 급여체계다. 호봉제는 안정적인 임금 인상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는 주원인으로 꼽히며 폐지를 고민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경연 관계자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공채는 비효율을 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시 채용'을 선호하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정기적으로 근로자를 뽑아 회사가 직무에 내리꽂았다면 이제는 필요한 시기에 직무에 대한 공고를 내 전문가를 찾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수시 채용은 공정한 채용문화 확산 과정으로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그는 "채용비리 문제로 블라인드 채용이 전 공공기관에서 의무시행 되면서 공정한 채용문화 확산이 주요 이슈로 부각됐다"며 "수시 채용의 근본 취지 역시 고스펙을 타파하는 블라인드 채용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펙에 대한 평가는 줄이고 직무수행 능력 비중이 확대된다는 의미"라며 "채용시기와 방법이 다양해지고 특히 실무능력을 강조하는 만큼 구직자들은 직무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경연 관계자는 수시채용이 채용 규모 축소로 귀결 될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대외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경제 상황 때문에 하반기 채용 시장이 축소되는 것이지 수시채용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공채와 수시 채용은 규모가 아닌 방식의 차이로 경제 상황이 좋아진다면 신속하게 더 많은 인력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이 수시 채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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