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도 질병인가. 2019년 상반기 한국 사회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됐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vs 산업계, 청년 vs 중년식 구도로 찬반양론이 일며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 기획에서는 게임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듣고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과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 5월 25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 총회에서는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으로 일상 및 교육·직업 생활 등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 상태가 12개월 이상 지속하면 게임중독이라는 게 WHO의 판단이다.

게임도 지나치면 병이라는 WHO의 결정에 국내 게임 산업계는 격앙했다. 게임 문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강화돼 게임 산업 전반의 후퇴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학부모 단체 등 게임중독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중독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부처도 입장이 엇갈렸다. 게임 산업을 관할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WHO의 결정을 국내로 도입하려는 보건복지부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찬반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자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4일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국내도입 문제를 논의할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제1차 회의를 열었다. 민관협의체는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정부 부처와 의료계(3명), 게임 업계(3명), 법조계(2명), 시민사회계(2명), 관련 전문가(4명) 등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게임중독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제 막 첫걸음마를 뗀 것이다.

하지만 협의체 구성 후 국내도입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는 협의체 구성 하루 만에 “게임 질병코드 관련 사안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필요하다”며 한국 게임 산업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 배치를 요구한 바 있다. 국내 도입 찬성 측인 ‘게임 이용자 보호 시민단체 협의회’에서도 이달 12일 게임 중독 피해자 및 가족, 학부모 단체를 위원으로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게임의 역사, 시작은?

WHO의 결정에 정부 부처는 물론 국내 게임 산업계와 시민사회계까지 의견이 엇갈리며 갈등을 이어가는 양상. 게임중독 문제 관련 찬반 양측의 의견 엇갈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게임만큼 갈등이 심한 문화 콘텐츠도 드물다. 하지만 한국 게임의 역사를 살펴보면, 게임이 처음부터 갈등의 재료가 된 것은 아니었다.

2012년 출판된 ‘한국 게임의 역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자 게임의 역사는 1970년대 말부터 등장한 전자오락실을 통해 시작됐다. 전자오락실에서 아케이드 게임 중심으로 향유하던 게임문화는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증가하면서 발전했다. 1987년 민주주의가 꽃피운 이후부터는 ‘신검의 전설’, ‘대마성’, ‘왕의 계곡’ 같은 국산 게임들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게임이 대중문화로서 사회에 인식되기 시작한 건 이 시기라고 저서는 말한다.

1990년 PC 패키지 게임 유통이 시작되면서 외국 게임을 정품 라이선스 형태로 국내에 판매하는 유통사(publisher) 개념이 생겼고, 1990년대 중반에는 국산 PC게임 시장이 커졌다. 하지만 IMF는 발전하던 한국 게임 산업에 제동을 걸었다. 이 시기 수많은 유통사가 도산하고, 전 분야에서 소비가 위축됐다.

서울 송파구 인근에 자리잡은 PC방. PC방 문화의 발달은 국내 게임 산업의 성장 토대가 됐다.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송파구 인근에 자리잡은 PC방. PC방 문화의 발달은 국내 게임 산업의 성장 토대가 됐다. (사진=이별님 기자)

IMF는 게임 개발사들이 PC 패키지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 개발로 전환하게 된 계기도 됐다. 또 이때 등장한 PC방은 게임 산업의 확대를 예고했다. 아울러 김대중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구축 정책도 발달에 기여했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으로 PC방 외 가정에서도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국산 게임은 ‘리니지’가, 외국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 온라인 게임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중반에 들어서는 장르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세계 최고 수준인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바탕으로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e스포츠도 성장해갔다. 2000년대에는 프로게임 리그가 TV를 통해 중계되고, 프로게이머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됐다. 스마트폰이 개발된 이후에는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도 한국 게임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현재 국내 e스포츠는 게임의 역사 발전을 토대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게임중독과 셧다운제

지난해 기준 국내 게임 산업의 해외 매출은 4조 7,800억 원 규모로 전체 콘텐츠 분야 수출의 60%를 차지했다. K-POP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한 상황에서도 게임은 음악의 10배, 영화에 100배에 달하는 수출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명과 암은 어디에나 있는 법. 게임 산업의 찬란한 성장이 있다면, 어두운 부분도 존재한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기는 풍토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이른바 ‘게임중독’에 빠질까 봐 염려한다. 게임중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0년 초부터였다. 그해 7월 시민단체가 경향신문에 기고문을 통해 아이들이 ‘전자 마약’에 중독돼 창조성이 길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언론에서 그려진 게임중독 담론은 점점 범위가 확장됐다. 2000년대 들어서 언론은 게임중독을 의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게임 중독이 정신병리학적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범죄학적 해석이 더해졌다. 게임중독 환자의 흉악 범죄를 보도하면서 ‘게임으로 가상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는 논리를 펼쳤다. 게임중독에 대한 담론이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게임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지난 12일 게임이용자보호시민단체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낙연 총리에게 게임 업계의 사행성 조장을 강력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2일 게임이용자보호시민단체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낙연 총리에게 게임 업계의 사행성 조장을 강력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게임중독 문제 논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이슈는 2011년 11월 도입된 ‘셧다운제’다.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심야 게임 규제 정책으로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제한 한다. 인터넷 게임 서비스 업체는 이 시간대에 연령과 본인 인증을 통해 청소년 게임 이용을 강제로 원천 차단해야 한다.

셧다운제 시행으로 게임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는 셧다운제 시행 1년 후인 2013년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19.6%가 감소했고, 셧다운제 시행 이전과 이후 각각 2년을 비교한 결과 게임 업계 평균 매출이 2.2%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청소년들 중독은 게임 탓?

셧다운제 같이 유례없는 강력한 규제를 펼쳐야 할 만큼 한국 청소년들의 게임중독 문제는 우려할 수준인 것일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초등학교 4~6학년과 중·고등학생 15만 2,9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군’과 ‘과몰입 위험군’은 각 0.3%와 1.5%이다. 최소 약 2,300명의 청소년이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한 수준으로 게임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게임을 건전하게 이용하는 집단인 ‘게임 선용군’은 17.7%, 게임 이용에 게임 이용 후 긍정적인 결과를 얻진 않지만 특별히 문제가 없는 ‘일반 사용자군’은 57.4다. 게임을 이용하지 않는 ‘비 사용자군’은 23.1%다.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한 수준으로 게임에 몰입한 청소년은 소수다. 하지만 최소 약 2,300명의 청소년이 게임중독 위험에 놓여있다는 것은 무시 못 할 수치다.

이들을 게임중독의 늪으로 몰아넣은 요인은 어떤 것일까. 전문가들은 원인을 게임 자체에서 찾지 않는다. 2012년 8월 한국디지털정책학회에서 발행된 ‘중학생의 부모애착과 학교생활 스트레스가 인터넷 게임중독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는 게임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부모 애착’과 학업, 친구, 교사 문제에서 야기되는 ‘학교생활 스트레스’, ‘자아존중감’ 등 크게 3가지로 보았다.

안정적인 부모 애착이 형성된 사람은 인터넷 게임 중독 성향이 낮다는 게 논문의 주장이다. 중독된 청소년들은 부모-자녀 관계에 갈등이 있고, 부모의 양육방식이 권위적이라고 인식한다. 한국 학생들의 공통적인 스트레스 원인인 학업 문제와 친구 문제, 교사 문제도 인터넷 게임 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자아존중감이 낮은 청소년들이 진취적인 삶을 누리려는 노력보다는 가상공간에서 즐거움에 대한 기본 욕구에 충실해지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와 비슷한 내용은 또 다른 연구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해 12월 한국인간발달학회에서 발간된 ‘청소년의 심리적 요인, 부모 애착이 인터넷 게임 중독과 휴대폰 중독에 미치는 영향’은 “남학생의 경우 충동성과 학업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부모와의 친밀한 애착이 낮을수록 인터넷 게임 중독 점수가 높게 나타난다”며 “같은 경우 여학생은 휴대폰 중독 점수가 높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설문 조사에서는 부모의 게임 이용과 자녀의 게임 이용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조사에 따르면 과몰입 위험군 학생들의 부모가 게임을 가장 많이 했다. 과몰입군과 게임 선용군, 일반 사용자군 순으로 부모의 게임 이용 정도가 높게 나타났다. 대체로 게임에 과몰입한 청소년들의 부모가 게임을 많이 이용한다는 게 설문조사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이나 정부 기관은 모두 청소년의 게임 중독 요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부모와 학교, 청소년 개인의 자아존중감 등에서 문제점을 찾았다. 아이의 게임 중독이 결국은 어른 탓이라는 논의로 귀결된다. 청소년들의 게임중독 치료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게임중독 요인과 치료 방법을 연결해 말한다.

앞서 언급한 ‘중학생의 부모애착과 학교생활 스트레스가 인터넷 게임중독에 미치는 영향’ 논문은 게임중독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존감과 친구 관계, 교사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을 개발·배포에 더욱 힘을 쓸 것을 제안했다. 관련 전문가와 학생을 연결하고, 기간을 정해 진행하는 1:1 멘토 관계 프로그램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시작 연령에 대한 검토와 연령이 낮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게임 이용 교육 확대를 제안했다. 또 문화 시설이 상대적으로 서울 수도권 지역에 비해 미비한 읍면 지역 학생들을 위해 게임 외 다른 여가 활동 기회가 주어지도록 인프라를 구축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게임 습관에 영향을 끼치는 점을 고려해 학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한편 정부 기관에서는 중독 문제를 겪는 이들에게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산하 서울스마트쉼센터 관계자는 본지 취재진에 “게임뿐 아니라 스마트폰 및 인터넷 사용으로 문제가 있는 당사자 및 가족들을 대상으로 전화 및 온라인 상담을 진행한다”며 “센터 내방이나 가정 방문을 통한 개인상담, 집단 상담 프로그램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질병코드나 셧다운제 같은 규제 도입이 아닌 게임 중독을 방지할 ‘안정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각계가 참여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 정착은 물론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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