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던 국민연금이 골칫덩이 신세다. 고갈될까 불안하고, 관리가 잘 될지 의심되고, 보험료율이 인상될까 걱정되고.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곳곳에서 훼방꾼이 나타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기금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며 세대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기획에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들에 대한 세대별 생각을 듣고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을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그래픽=김혜선 기자)
(그래픽=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국민연금 개혁은 꼭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수차례의 개혁을 거친 선진국들도 연금개혁은 언제나 난제였다. 공적연금 개혁을 위해 스웨덴은 15년, 영국은 10년, 일본은 4년의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시간을 가졌다. 연금 천국으로 통하는 스위스도 재정안정성을 위해 지난 20년 동안 세 번이나 연금 개혁을 시도했지만 모두 좌절된 바 있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제도다 보니 연금개혁이라는 화제는 나올 때마다 엄청난 관심을 받는다. 잘못하면 정권을 그대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개혁 방안을 4개나 늘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 인상만을 염두에 두고 계획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보고를 받으면서 “국민들 의견이 보다 폭넓고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수정, 보완하라"라고 퇴짜를 놓았고, 결과적으로 현행 유지를 기반으로 한 2가지 안이 추가됐다.

그런데 현행 유지를 선택한다면 언젠가는 연금이 고갈돼 보험료율 올려야 할 시점이 반드시 찾아온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은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리느냐는 논의로 흐르게 된다. 지난해 국민연금 자문위원회(자문위원회)가 4차 재정계산 결과를 내놓으면서 제시한 2가지 개혁안도 모두 보험료율 인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이 필연적이다. 이에 대한 이견은 많지 않다. 본 지가 진행한 세대별 국민연금 좌담회에서도 보험료율을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대부분이 동의했다. 남은 것은 어떻게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현 9%인 보험료율을 얼마큼 올리느냐는 것이다.

앞서 세 번의 좌담회에서는 ‘어떻게’에 대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노년층은 후세대들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 국민연금 수급자들이 만드는 복지 기금을 제안했다. 현재 연금 기금을 쌓고 있는 기성층에선 △정부의 지급보증 △가입 당사자에 선택권 부여 등으로 공적연금에 대한 신뢰도를 쌓고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저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년층은 국민연금공단의 적극적인 홍보로 미래 세대들의 공적연금 불신을 덜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의 제안은 실행 가능한 것일까.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위원장에게 물었다.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의 비밀

지급보장 명문화는 국민연금 신뢰도 향상을 위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정부는 “국가 부채 규모 등 재정 건전성 지표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급보증 명문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가의 지급 보장을 분명히 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향후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를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어떻게 지급보장을 명문화하느냐다. 복지부 역시 국가 지급 보장을 추진하면서도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단순히 법률로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고 써 놓으면 보험료율을 올리는 식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있고, 공무원 연금처럼 국세가 투입되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지급보장에 대한 국민연금 개정안은 두 가지로 나뉜다. 공무원 연금처럼 ‘적자 보전 조항’이 있는 개정안과 단순히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추상적 규정을 담은 개정안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적자 보전 조항이 들어가 있는 개정안은 정춘숙·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안, 윤영일 무소속(전 평화 당) 의원,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안이다. 정춘숙 의원안은 국가 지급보장 규정과 함께 “국민연금 재정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가 이를 부담한다"라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전혜숙 의원안은 국가 지급보장 규정과 함께 자세한 보장 방법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비슷하게 김광수 의원안도 국민연금 기여금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없을 경우 부족한 금액을 대통령령에 따라 지급하도록 했다. 윤영일 의원안과 김재원 의원안은 국가가 기금 수지 부족분을 보전할 경우 각 7년·5년간 국민연금 기금을 계산해 재정적 균형이 유지되도록 했다. 반면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가가 “급여의 안정적·지속적인 지급을 보장한다"라는 내용만 규정으로 명시돼 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관련 개정안. (자료=국회 의안정보시스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관련 개정안. (자료=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오건호 위원장은 아예 지급보장 명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미봉책’이라고 판단했다. 오 위원장은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지급보장 법제화를 이야기하지만 지금 당장의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받을 수 있나’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재정적 경제적 여건이 확보되는 것인지 문제이지 법제화 문제 아니다. 당시 국민연금이 지급할 수 있는지 제도 개혁 모형을 제시해야 답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제2의 국민연금 가능할까

앞서 기성세대 좌담회에서 제안한 ‘제2의 국민연금’은 실현 가능할까. 오 위원장은 단칼에 “적절치 않다"라고 답했다. 그는 “공적연금을 가입자 임의대로 선택하게 하면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연금제도를 극대화해서 활용하고, 없는 사람들은 당장 보험료 부담이 있어 연금제도를 활용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민간연금은 개인 선택에 따라 활용이 가능하지만, 공적 연금은 그렇게 하면 부작용이 훨씬 더 크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공적 연금에 ‘선택권’을 주는 곳은 없다"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1994년 세계은행이 제시한 ‘연금의 3층 체계(공적-퇴직-개인)’ 중 1층에 해당하는 공적연금에 선택권을 주는 나라는 없다.

‘제2의 국민연금’이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는 국민들이 9%의 보험료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는 게 오 위원장의 설명이다.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한다든지,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게 하자 단지 등 주장도 마찬가지다. 오 위원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제도가 가입자들에게 무척 중요하고 유리한 제도라는 걸 많이 알려야 할 것 같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내는 것이 부담이 되는 계층에게는 다양한 보험료 지원 방안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했다.

그는 “예를 들면 근로자는 절반의 보험료를 사용자로부터 지원받는다. 농업인은 국가로부터 절반가량 지원받는다. 지금 도시지역가입자들만 아무런 지원 없이 본인이 9%를 다 내고 있다. 그래서 저희(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쪽에서는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오 위원장은 노년층의 복지 기금 조성 제안에는 “노인 빈곤이 심각하긴 하지만 그런 여력이 있는 노인세대가 움직이는 것은 좋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차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 소득 보장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문성현(왼쪽 다섯번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장지연(오른쪽 다섯번째)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 소득보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열린 '제1차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 소득 보장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문성현(왼쪽 다섯 번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장지연(오른쪽 다섯 번째)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 소득 보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6개월짜리 연금특위가 사회적 대화 기구?

결국 국민연금 개혁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도입 이후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한 역사가 없다. 오 위원장은 “5년마다 이뤄지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위원회가 있지만, 그것은 전문가들이 연금 제도를 진단하고 개혁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니 사회적 합의 기구라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다가 만들어진 것이 지난해 10월 구성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 보장 특별위원회다. 하지만 연금특위는 단 6개월만 활동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필요할 경우 특위 기간이 3개월 연장될 수 있지만, 소속 위원 간 이견차가 너무 커서 이마저 불발됐다.

오 위원장은 “저는 경사로 위의 연금 특위가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기구로서 성격을 갖는지, 그에 맞게 운영됐는지에 대해 의문”이라며 “연금개혁에는 무척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논점들이 있다. 그런 논점들을 발굴하고 알리고 의견을 수렴해가는 그런 기구의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연금 특위가 가동되니까 사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실종됐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위) 구성이 특정 의견을 가진 단체들 위주로 돼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연금특위 구성원은 정부위원과 청년, 노동조합, 경제계, 전문가 위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 만큼, 최소한 1~2년 정도의 활동 기간을 둬야 한다는 게 오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을 미리 길게 설정할 필요는 없다. 알차고 내일 있게 운영된다면 1~2년이면 된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원자력 존폐를 논의한 공론화 위원회 사례를 물으니 “조금 더 확장된 공론화 위 방식도 괜찮다"라며 “공론화 위는 처음부터 각자 진영을 갖고 시작한다. 이후 토론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저는 지금 연금개혁특위 논의도 그렇고 국민연금에 있는 여러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판단을 잘 못하고 불신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있는 그대로 논점을 드러내고 토론하면 국민들이 책임 있게 이 제도에 다가설 것이라고 본다"라고 했다.

오 위원장이 제안한 연금특위 구성 방식은 영국 노동당 정부가 이룬 연금 개혁 사례와 비슷하다. 영국의 공적연금 자체는 본받을 만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끌어낸 연금 개혁 방향은 국민들의 숙의적 협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이해당사자가 합류하는 기존 사회적 합의 기구와는 달리 3명이 모인 연금위원회는 매우 단출하고 간결했다. 동시에 각종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군살’도 없었다.

영국의 연금개혁은 기업과 노조, 그리고 전문가로 구성된 사회보장자문위원회(The Social Security Advisory Committee)가 일종의 사회적 대화 기구 역할을 대행했다. / 사진=사회보장자문위원회 캡쳐
영국의 연금개혁은 기업과 노조, 그리고 전문가로 구성된 사회보장자문위원회(The Social Security Advisory Committee)가 일종의 사회적 대화 기구 역할을 대행했다. / 사진=사회보장자문위원회 캡처

영국의 연금위원회는 “사실, 사실, 사실!”이라는 구호에 맞춰 방대하고 정확한 기초자료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노령인구 부양비의 급속한 증대, 민간연금의 급속한 쇠퇴, 저임금 계층과 중소기업 노동자, 경력단절 여성 노동자들의 노년 빈곤 등 기존 영국의 연금제도가 갖고 있던 취약점을 긁어모았다. 이 방대한 데이터들은 시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백서’ 방식으로 1, 2차에 나뉘어 지난 2005년 2월 보고됐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시민들은 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민들이 충분히 연금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단계에 들어섰다. 연금위원회는 전 국민연금 토론을 진행하면서 기업 대표와 노조 대표 등 전통적인 연금의 이해당사자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 연금 개혁을 위한 토론의 장에 참여시켰다. 노동연금부 국무상들은 2005년 6월부터 11월까지 영국의 8개 지역에서 릴레이 토론회를 열었다. 이듬해 3월에는 여론조사를 겸한 ‘전 국민연금의 날’ 행사를 열었고, 영국 6개 지역에서 시민 1천여 명이 동시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은 2006년 5월 연금 노동부의 보고서 ‘안정적인 은퇴: 새로운 연금제도를 향하여’에 반영됐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연금에 대한 인식은 놀랍게 변했다. ‘전 국민연금의 날’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더 많은 세금이 연금에 쓰여야 할 것이다’라는 응답에 동의하는 사람은 68%에서 80%로 늘어났다. ‘개인이 노후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는 응답에는 70%에서 88%까지 많아졌다.

오 위원장은 “영국의 사회적 대화가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꼽았다. 영국 역시 연금 개혁안에 상당한 반발이 있었지만, 정확한 정보와 충분한 숙의를 거쳐 결국 개혁이라는 열매를 이끌어냈다.

“국민연금제도가 공적연금 제도가 갖는 의의와 효과는 사람들이 다 알거든요. 문제는 이 제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문제가 많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 문제가 뭔지는 잘 몰라요. 국민연금 둘러싼 논점, 문제점들을 굉장히 있는 그대로 밝히고 토론하면, 그 제도가 부족하던 충분하던 사람들이 받아들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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