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테크, 택배...“일본이 침략한 우리말 되찾아야“
[인터뷰] 재테크, 택배...“일본이 침략한 우리말 되찾아야“
  • 이별님 기자
  • 승인 2019.08.28 11: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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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불매운동 여파...일본말도 자제해야
말글 속 일본말 심각...“우리말은 독립 못해“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국민의례’와 ‘참배’, ‘음수대’, ‘대합실’은 과연 우리말일까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사진=이별님 기자)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달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반도체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민감한 과거사와 한국 경제의 급소를 동시에 건드린 일본 정부의 조치로 두 나라 관계는 빠르게 얼어붙었다. 이어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심사 절차 간소화 우대 국가(백색국가)에서 제외했고, 한국 정부는 2016년 일본과 맺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면서 맞받아쳤다.

두 나라가 팽팽하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두 달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시작된 일본산 불매운동은 점점 온라인 밖으로 번져나갔다. 일본 의류나 맥주 불매 및 일본 여행 거부 등 소비재 중심으로 진행됐던 불매운동은 이제 문화·언어 영역까지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한 국내 편의점 브랜드는 ‘모찌’, ‘데리야키’ 등 그동안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일본식 상품명을 바꾸기도 했다.

불매운동이 이례적으로 장기화하면서 일본산 제품 구매는 물론 우리 생활 영역 곳곳에 침투한 일본 문화와 언어까지 경계하는 상황. 하지만 대대적인 일본산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말 속 일본말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 국어사전’,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등 우리말 속에 숨어있는 일본말 찌꺼기들을 다룬 책을 펴냈다.

문학박사이자 시인인 이 소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연수평가원 교수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객원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는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서 한일 두 나라의 역사·문화 교류 활동에 힘쓰고 있다. 본지는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에서 이 소장을 만나 우리말 속 일본말 불매 열풍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말에 숨어있는 일본말 관련 책을 펴내셨다. 구체적인 연구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지 올해로 약 40년이다. 우리말 연구는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시작했으니, 40년 가까이한 셈이다. 원래 우리말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대학에서 일어를 공부하면서 우리말과 글에 일본말이 참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예를 들면 도로 옆에 있는 길인 ‘갓길’을 옛날에는 ‘노견(路肩)’이라 했다. 이것은 일본의 ‘로카따(ろかた)’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걸 차츰 알게 되면서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관련 책도 냈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펴낸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오염된 국어사전’, ‘사쿠라 훈민정음’. (사진=이별님 기자)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펴낸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오염된 국어사전’, ‘사쿠라 훈민정음’. (사진=이별님 기자)

-연구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이런 연구를 하려면 일단 일본어를 공부해야 한다. 또 우리말을 기본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일본말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우리말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없으면 일본어 공부에서 끝나는 것이다. 오히려 연구보다도 사람들이 우리말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게 어렵다. 프랑스의 경우 외국어가 들어오면 프랑스 낱말로 바꾸려는 노력하는데, 일제 침략의 고통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말속에 일본말이 뒤섞여 있는지도 모르고 쓴다”

“다만 낱말의 기원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렵다. 한자어라고 해서 전부 일본말은 아니다. 이를테면 ‘대합실(待合室)‘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일본에서 온 건지, 중국에서 온 한자어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 사전을 찾아본다. 사전에 검색하면 ‘마치아이시츠(まちあいしつ)‘라고 대합실의 일본 발음이 나온다. 그 다음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교차 검증을 한다. 여기서 안 나타나면 일본말이라고 판단한다. ‘몸빼바지’할 때 ‘몸빼(もんぺ)’, ‘땡깡부리다’ 할 때 ‘땡깡(てんかん)’은 딱 들어도 일본에서 온 말 같다. 하지만 대합실과 같은 한자어는 중국에서 왔는지, 일본에서 왔는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우리말 속에 일본말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보는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말은 ‘광복 이전’과 ‘광복 이후’ 등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학교에서도 일본말을 썼기 때문에 상당수 일본말이 많이 섞였다. 하지만 일본말은 1945년 8월 15일 이후도 들어왔다. 광복 이후에 들어온 일본말은 ‘재정’, ‘재무’에 ‘테크(tech)’를 붙인 ‘재테크(財テク)’와 일본말 ‘다쿠하이(たくはい)’에서 유래된 ‘택배(宅配)’ 등이 있다. 광복됐으니 이제 일본말을 걷어내고 우리말을 쓰려는 노력 해야 했지만,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말과 글은 굉장히 중요하다.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을 지키려고 최현배 선생 같은 분들이 계셨다. 영화 ‘말모이’에 나온 것처럼 일제가 우리말을 못 하게 했어도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도 많았다. 말과 글은 혼이다. 우리말과 글을 잃었으면, 우리는 일본말을 썼을 것이다. 이분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도 우리말 속에 일본말 찌꺼기가 많은 것은 불행이고, 이에 관심을 안 두는 것은 더 불행하다. 광복 후에도 일본말을 들여다 쓴 걸 자각하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말하고 싶다”

-심각한 오염사례는 어떤 게 있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국민의례(國民儀禮)’를 ‘공식적인 의식이나 행사에서 국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격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따위 순서로 진행한다’라고 나온다. 나는 ‘오염된 국어사전’에서 이걸 비판했다. 일본말에서 ‘국민의례’는 일왕이 있는 곳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宮城遙拜)’, 일장기에 경례, 전쟁서 사망한 일본군들에 대한 경례를 의미한다. 일왕, 일장기, 일본군에 경례하는 거라고 일본에서 정의가 내려진 거다. 원뜻은 한국과 상관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일본어를 살짝 번역해 놓은 것이다”

“국민의례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국가 행사나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안 할 수는 없다. 다만 국민의례가 일제강점기 때 나온 말인 만큼 우리가 알고 쓰던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행사 순서를 보면 국민의례라는 말이 쓰여 있는데, 이걸 쓰지 않는 대신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라고 구체적으로 풀어 쓰면 얼마나 쉽고 좋은가”

“또 참배(參拜). 참배라는 말은 성묘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산빠이(さんぱい)’라고 말한다. 참배는 신사(神社)에 가서 절하는 것이다. 국립묘지는 신사가 아니기 때문에 참배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우리는 무덤에 가는 걸 ‘성묘(省墓)’라고 한다. 참배는 한자어 같지만, 중국에서 온 게 아니다. 진자 산빠이(じんじゃさんぱい,신사 참배). 이렇게 쓰는 말이라 우리가 국립묘지 참배라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의례나 참배처럼 민족적 자존심을 해치는 말은 아니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 가면 ‘음수대’라는 말이 있다. 또 음식을 먹고 그릇을 놓는 곳을 ‘반환대’라고 한다. 어떤 휴게소에서는 음수대를 ‘물 마시는 곳’, 반환대를 ‘빈 그릇 놓는 곳’ 이렇게 써 놓았다. 얼마나 알아보기 쉬운가. 우리말을 쓰면 한자어를 모르는 어린아이들도 쉽게 익힐 수 있다”

-우리말 속 일본말. 너무 많아서 대체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어려움이 따르지만, 의식이 중요하다. 100% 우리말로 바꾸는 건 어렵지만, 물방울 하나가 계속 떨어지면 바위를 뚫는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낱말 하나하나라도 바꿔나가면 가능한 것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할 수 있는 걸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라도 ‘이 말은 일본말에서 왔다’라고 밝혀줘야 한다. 누군가가 낱말을 찾더라도 ‘이게 일본말이구나’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언론계 종사자나 작가, 교수, 선생들이 나서서 일본말을 걸러줘야 하지만 이들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일본말을 곱고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건 국립국어원 등 정부 기관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모두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 침략의 역사가 있으니 일본말이 가장 중심이 돼야 하지만, 영어에서 온 말도 할 수 있으면 우리말로 고쳐야 한다. ‘싱크홀’을 ‘땅 꺼짐’이라고 하면 얼마나 알아듣기 좋은가”

28일 인스타그램에 ‘산도’와 ‘코히’를 검색한 결과. (사진=이별님 기자)
28일 인스타그램에 ‘산도’와 ‘코히’를 검색한 결과. (사진=이별님 기자)

-최근 일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산도(샌드위치), 코히(커피) 등 일본식 영어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나는 굉장히 비판적이다. 일본 사람들은 말을 자기들이 편리한 대로 샌드위치를 산도라고 부른다. 그걸 우리가 불러야 할 필요는 없다. 외래어가 일본으로 들어가 다시 우리가 쓰는 건데, 재미라기보단 무의식적으로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샌드위치를 샌드위치라 부르기 싫으면 우리말로 만들면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은 빵 사이에 채소를 넣은 음식을 샌드위치라 한다. 산도가 샌드위치 세상에 통하겠나. 통하든 말든 일본인들끼리 산도라고 쓰는 거다. 그걸 왜 우리가 써야 하는가. 낱말 하나라도 우리말로 쓰려는 자세.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말과 글이 사라진다. 저는 단호하다. 무분별한 일본식 영어 사용은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 외국어 발음 다 잘 하지 않는가”

-안 그래도 일본산 불매운동 열풍에 힘입어 무분별한 일본식 표현을 우리말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우리말 쓰기와 불매운동 장기화는 관련이 없다. 저는 이 사태 전에도 책들을 썼고, 일본말 대신 우리말을 쓰자고 주장해왔다. 이건 물건 불매운동과는 다르다. 물론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 정부를 향해)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물건에 깃든 정신인 말과 글은 불매운동을 안 했더라도 일찍이 일본말 말고 우리말을 썼어야 했다. 그렇게 됐다면 광복 74년이 지난 현재 상당히 순화된 좋은 말들을 우리가 많이 썼을 것이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서 온 언어라고 알려주면,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일본식 한자어를 계속 알려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지금 불매운동도 국가가 하자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우리가 힘이 없는데, 불매운동 해서 뭐하냐’라는 주장도 있지만, 시민들은 ‘그래도 안 살 거다’라고 하지 않는가. 불매운동이 끝나더라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건 놓치면 안 된다”

-현재 연구 상황과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차기작은 이전 책들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간 일본말 관련 책을 내고 싶다. 예를 들어 ‘잉크가 화장지에 스며든다’ 할 때 여기서 ‘스미다’는 일본말로 ‘시미루(しみる)’다. 이건 우리말 스미다에서 간 것이다. ‘병이 낫다’의 ‘낫다’는 일본말로 ‘나오루(なおる)’인데 역시 우리말에서 간 것이다. 일본말 중에 고대 조선어가 토대인 말이 많다. 이와 관련해 책을 쓰고 싶다”

“우리글은 세종 때 만들어졌지만, 말은 태초부터 있던 것이다. 우리말과 글이 한자어로 범벅되지 않고, 아주 곱고 쉽게 순화된 우리말을 모두가 쓰도록 하는 게 글을 쓰는 목적이자 목표다. 빠르지는 않더라도 우리말에서 일본말 찌꺼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는 독립을 했지만, 우리말은 일본말에서 아직 광복을 맞지 않았다. 우리말 속에 너무 많은 일본말이 들어가 있다. 남학생들을 가르치다 알게 됐는데, 군대에서 총 ‘수입(手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데이레(ていれ)라는 일본말로 손질이라는 뜻이다. 이 뜻도 모르고 군인들이 ‘자 총수입이다’라고 하면 총 손질을 하는 거다. 또 은행, 재단, 법률 용어에는 일본말들이 아직도 그대로다. 독립이 안 된 거다. 이걸 순화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물론 각 정부 기관, 의식 있는 국민, 특히 언론이 3박자를 맞춰 나가야 한다”

이별님 기자 leestarni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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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2019-09-03 11:19:50
이윤옥 소장님, 애쓰셨습니다. 이별님기자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