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도 질병인가. 2019년 상반기 한국 사회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됐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vs 산업계, 청년 vs 중년식 구도로 찬반양론이 일며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 기획에서는 게임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듣고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과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문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문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겠다는 방침이 나오자 한국 게임 산업계가 반발했다, 이에 맞서 학부모 단체 등 게임중독을 우려하는 시민사회계 목소리도 있는 상황. WHO의 결정으로 찬반 의견이 오가는 건 게임 업계와 학부모단체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게임중독’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본지는 뜨거운 감자 ‘게임중독’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들 관련해 비전문가 시민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8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신문사 사무실에서 어느 세대보다도 게임 문화가 익숙한, 한국 게임 산업과 함께 성장해온 대한민국 20~30대 남녀 청년들을 대상으로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는 공정성을 위해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록’에 찬성하는 패널 2명과 반대 패널 2명 동수로 구성했다. 찬성 패널은 모주영(37)씨와 이유진(33)씨, 반대 패널은 김재호(36)씨, 김은비(23)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네 명의 패널 모두 게임 문화를 즐기거나 과거에 향유했던 경험이 있다. 사회는 본지 소속 선초롱 기자가 맡았다.

찬반 양측 모두 이날 좌담회에서 건전한 게임 문화는 한 개인의 취미로서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에 뜻을 같이했다. 다만 WHO의 판단을 국내에 도입해야 하냐는 쟁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좌담회에서 나온 시민 패널들의 구체적인 의견은 다음과 같다.

왼쪽부터 모주영, 이유진, 김은비, 김재호 씨. (사진=김혜선 기자)
왼쪽부터 모주영, 이유진, 김은비, 김재호 씨. (사진=김혜선 기자)

게임, 자녀와도 함께 할 수 있어

네 명의 패널 모두 게임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모주영 씨는 “게임은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을 준다”며 “주변 지인들은 게임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저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때 게임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씨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게임은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층까지 누구나 연령과 계층에 상관없이 편하고 재미있는 놀잇거리”라며 “(게임을 즐기면서) 서로가 벽을 허물 수도 있고, 게임이 개인 일생 생활에서 하나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패널들은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재호 씨는 “‘게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미지 자체가 온라인 게임에 한정되지 않았나 싶다”며 “장기와 바둑, 서양의 체스, 여러 스포츠 등도 다 게임의 일환인데 ‘게임’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낙인이 찍혀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김은비 씨는 “게임에 대해 너무 한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좀 아쉬운 거 같다”며 “게임은 정말 다양한데, 사람들의 인식에 게임은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 한정된 게 아쉽다”고 공감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긍정적인 이들은 향후 자신의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길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특히 평소 게임을 즐긴다는 김은비 씨는 “정말 그러고 싶다. 게임 종류가 매우 많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다양하다”며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데, 이를 차단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유진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팩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게임이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반면 김재호 씨는 김은비 씨와 이유진 씨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할 시 부모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도 청소년기에 해봤지만, 온라인 게임의 경우 자기 절제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부모가) 지도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보드게임이나 체육활동을 부모와 함께 하는 게 자녀 교육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모주영 씨도 “아이와 어느 정도까지는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부모가 컨트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과격한 온라인 게임이라면 어른의 통제가 필요할 듯싶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열린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좌담회에서 모주영 씨와 이유진 씨가 패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열린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좌담회에서 모주영 씨와 이유진 씨가 패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게임과 세대갈등

20~30대인 네 명의 패널들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거의 없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 게임에 시선은 그리 따듯하지 않다. 특히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불건전한 오락으로 치부되기에 십상이기 때문에 게임이 야기하는 세대갈등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패널들 대부분은 게임으로 부모 세대와 갈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중학교 때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해 가족과 갈등을 겪었다는 김재호 씨는 “청소년기에 게임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아버지께 많이 혼났다”며 “호되게 혼났지만, 게임을 계속하게 됐다. 제가 혼나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셨고, 가정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여동생도 (가족들) 눈치를 봤다”고 고백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자녀가 부모와 갈등을 겪는 사례는 김재호 씨뿐만이 아니었다. 이유진 씨는 “남동생이 중.고등학생 때 새벽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해 집안에서도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며 “온 동네 PC방을 새벽에 다 찾아봤다”고 이야기했다. 모주영 씨 역시 “학교 다닐 때 남동생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온라인 게임에 몰두해 한번은 아버지가 컴퓨터 본체를 방에 숨겼던 적도 있었다”며 “그런데 동생이 친구에게 본체를 빌려서 하기도 했었다”고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하지만 게임으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은 자녀가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됐다. 이유진 씨와 모주영 씨는 모두 남동생이 성인이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청소년 때만큼 게임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유진 씨는 “청소년기 남학생들에게는 게임이 또래 문화가 되니 다 친구가 하면 다 같이 하게 되더라”라며 “성인이 되어서는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김재호 씨의 경우 현재 거의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임 이용장애는 질병인가

게임이란 문화 콘텐츠가 세대갈등까지 야기하는 상황. 지난해 기준 문화 콘텐츠 산업 수출 규모의 약 60%를 차지할 만큼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톡톡히 끌어내는 게임이지만, 가정 내에서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피해는 부정하기 힘들다. 게임 이용장애가 포함된 WHO의 국제질병분류 권고는 오는 2022년 1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이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적용하는 주기를 따져보면, WHO의 권고가 적용될지 여부는 빠르면 2025년이다.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록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2025년까지 6년 동안 가능하다.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반대하는 김은비 씨는 이에 대해 “게임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으로서 게임에 질병이라는 단어까지 붙는 게 매우 속상하다”며 “취미 하나에 질병이라고 칭하는 게 맞지 않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폭력성이 있는 게임도 있지만, 머리를 쓰는 게임도 많다”며 “오목 같은 경우 전략을 짜고 머리를 쓰면서 하는데, 누군가가 ‘과몰입이 지속됐다’며 질병을 가졌다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김은비 씨는 “폭력성이 있는 게임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서는 머리를 써야 한다”며 “두뇌 회전을 해가면서 즐기는 취미에 질병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은비 씨와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인 김재호 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저희 아버님 세대 때는 ‘낚시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낚시에 몰두한 분들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질병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재호 씨는 게임중독의 질병화가 게임 문화에 부정적인 기성세대의 힘이 작용한 논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게임의 주 소비층은 10대서부터 크게 30대 초반까지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기득권보다 힘이 약하다”며 “기득권의 시선으로 그들의 논리와 입장을 일반화해 (게임에) 억압적으로 질병이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 게임에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를 일반화하지 말고,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열린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좌담회에서 김재호 씨와 김은비 씨가 참석해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열린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좌담회에 김재호 씨와 김은비 씨가 참석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질병 코드 국내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진 씨도 취미 생활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게임중독’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게임은 취미 생활이고, 성인들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중독이라고 볼 수 없다”며 “취미로서 게임을 조금 오래 한다고 해도 알코올 중독처럼 일상생활에 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옛날에 어르신들이 오목을 하면서 의식주가 안됐던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다만 이유진 씨는 WHO의 방침은 언론 매체를 통해 종종 보도되는 극단적인 게임중독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게임에 몰두하다가 자녀를 방치해 사망하게 하거나 게임에 방해가 된다며 우는 아이를 살해한 사건, 게임을 그만하라는 부모에 앙심을 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등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며 “이 같은 사례는 중독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씨는 이 같은 사례 때문이라도 질병 코드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객관적인 매뉴얼이 없는 상황”이라며 “보통은 우울증이나 과잉행동 장애로 진단을 내린다고 하더라. 이 사람들을 과잉행동 장애라고 보아야 하나. 딱히 진단을 내릴 코드가 없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게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 때문에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모주영 씨도 이유진 씨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본인이 자제하면서 취미 생활로 게임을 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면서도 “(국내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는 자제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을 하다가 감정이 상한 사람들끼리 실제로 만나서 싸움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너무 과몰입 하다 보니 가상세계를 현실로 느끼는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도입을) 어느 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질병 코드 국내 도입 시 e스포츠 선수들에게 타격이 갈 수 있다는 우려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서 찬성 측 패널들은 모두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과 중독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유진 씨는 “선수들은 게임을 열심히 하는 게 직업이다. 그분들은 게임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 다르게 봐야 한다”며 “무조건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중독이 아니다. 질환이 있는 것과 직업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입 효과, 미미할까 우려

하지만 반대 측 패널과 찬성 측 패널 모두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도입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모주영 씨는 “별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게임을)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은비 씨 역시 도입이 된다 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는 “요즘 미혼 또는 비혼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데, 결국 결혼도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한다”며 “질병 코드가 도입된다고 해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관두지는 않을 것이다. 병 목록에서 하나가 추가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영 씨도 “별로 바뀔 거 같지 않다. 저 역시도 게임을 즐기고 있는데, 자유의지가 있는 성인으로서 제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김재호 씨는 질병 코드 도입이 실제 게임이용 장애로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현상만 보고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아무리 좋은 법안을 낸다고 해도 재정 부족 문제 등 중간에 엇박자가 날 거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선 때문에 게임으로 문제를 겪는 이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입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패널들은 질병 코드 도입 문제를 떠나 일부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청소년들이 게임 외에 다른 여가 생활을 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좌담회에서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개인적인 게임 관련 경험담과 가족과의 일화를 소개할 때는 패널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좌담회가 끝날 무렵 패널들은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국내 문제와 한국 사회의 게임 문화와 관련한 제언을 했다. 이들은 ▲ 질병 코드 국내 도입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발생 방지 ▲ 온라인 게임에 국한된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 필요 ▲ 게임 중독 관련 지나친 의료 상업주의 경계 ▲ 체계적인 게임이용 장애 치료법 도입 ▲ 게임 이용자에 편견 극복 등을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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