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자 다수, 추석 힘들어...체력적 한계 커
“여성 가사 노동 분담해야”...남편들도 공감

9월 달력을 넘기기가 무겁게 빨간 숫자들이 달려듭니다. 환호 혹은 한숨이실 텐데요. 명절 스트레스 문제가 공론화되며 어김없이 ‘명절 증후군 없애는 방법’들이 각종 매체에서 쏟아집니다.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나는 뜻깊은 명절이 ‘즐거운 빨간날’로 바뀌기 위해 따듯한 말 한마디에 담긴 신비한 힘을 믿어 보는 건 어떨까요. 세대별로 꿈꾸는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뉴스포스트>가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가족·친지들의) 잔소리가 제일 싫어요. 결혼초에는 아이를 언제 가질 거냐고 하더니 아이를 낳으니까 ‘어느 학교에 보내야 한다’. ‘어떻게 키워야 한다’, ‘남들의 아이는 이렇다더라’면서 끊임없이 간섭하시는 게 제일 힘들어요. 관심의 표현인 건 알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합니다. 잔소리 없는 명절이 가능한 얘기일까요.”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한민족 대표 명절 추석이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한민국 곳곳은 한가위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TV 채널은 추석 특집방송을 편성하고, 거리마다 추석을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집 앞 소규모 슈퍼마켓에서 대형할인판매점까지 마트에서는 다양한 추석 선물세트가 준비돼 있다. 추석을 앞두고 정겹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주변에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명절을 지내야 할 시민들은 정작 추석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다. 이번 명절을 보내는 모든 이들에게는 갖가지 고충이 있겠지만, 30대부터 40대 사이 이른바 ‘3040 세대’에게 명절은 더욱 스트레스다. 기혼자의 경우 이들 세대는 아래로는 어린 자녀 세대를 돌봐야 하고, 위로는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까지 모셔야하는 샌드위치 세대다.

영유아부터 고령의 어르신들까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날이지만, 자칫 말 한마디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특히 명절 때마다 가장 어려움을 토로하는 30~40대 기혼남녀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본지는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기혼 여성 47명과 남성 23명을 대상으로 추석서 관련한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기혼 남녀 모두 “명절은 힘들어”

설문조사 결과 기혼 남녀 대부분이 추석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혼 여성의 44.68%는 ‘많이 받는다’라고 응답했고, ‘조금 받는다’라고 응답한 여성도 27.66%다. 보통 또는 ‘별로 안 받는다’와 ‘전혀 안 받는다’ 등 부정 대답은 27.65%에 불과했다. 기혼 남성 역시 비슷했다. ‘많이 받는다’라는 응답은 절반이 넘어선 52.17%다. 이어 ‘조금 받는다’가 21.74%, ‘전혀 받지 않는다’가 17.39%, ‘별로 안 받는다’와 ‘보통이다’가 4.35%로 뒤를 이었다.

기혼 남녀를 괴롭히는 명절 스트레스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 모두 ‘체력적 한계(여성 42.86%, 남성 38.89%)’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여성은 명절 상차림 등 가사 노동이, 남성은 장시간 운전과 교통체증이 고되다고 말했다. 가족·친지에게 듣는 잔소리의 경우 여성은 19.05%, 남성은 27.78%로 2위를 뽑았다. 선물 구매비나 용돈 등 ‘금전적인 문제’는 여성 16.67%와 남성 22.22%로 3위를 차지했다. 가족·친지들 간 벌어지는 이념논쟁 등 기타 의견이 뒤를 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기혼 여성은 제사 문화의 불합리점을 지적하며 “여자들은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자들은 방에서 식사하는 반면 여자들은 부엌에 모여 밥을 먹는다”며 “이제는 나조차도 이런 문화가 편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아이에게 너무 큰 금액의 용돈이 들어온다”며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데 대부분 게임기라 곤란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 기혼 남성은 잔소리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신혼때는 아이를 언제 가질 거냐고 묻더니, 아이가 생긴 후에는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면서 끊임이 말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 “아이가 어려 새벽동안 이동을 하는데 졸음운전을 참는 것이 힘들다”, “명절 내내 와이프 눈치를 봐야 한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기혼 여성들이 개선됐으면 하는 명절 문화(좌), 기혼 남성들이 개선을 바라는 명절문화(우) 설문조사 결과. 무응답 포함. (표=이별님 기자/ 네이버 카페 설문지 이용)
기혼 여성들이 개선됐으면 하는 명절 문화(좌), 기혼 남성들이 개선을 바라는 명절문화(우) 설문조사 결과. 무응답 포함. (표=이별님 기자/ 네이버 카페 설문지 이용)

 올해 추석, 이것만은 개선하자

이들은 추석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명절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봤다. 눈에 띄는 점은 기혼 남녀 모두 상차림 문화를 가장 개선해야 할 명절 문화라고 꼽았다.

기혼 여성들은 ‘여성만 하게 되는 상차림(57.78%)’을 가장 개선돼야 할 명절 문화로 꼽았다.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는 ‘대가족 모임 문화(26.67%)’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혔다. ‘꽉 막힌 잔소리’와 선물이나 용돈 등 ‘허례허식 문화’가 각각 8.89%와 6.67%로 뒤를 이었다. 남성도 상차림 문화(47.37%)를 가장 개선해야 할 명절 문화라로 꼽았다. 이어 ‘일가친척 대가족 모임(26.32%)’과 ‘허례허식문화(10.53%)’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기혼 여성은 “명절에는 잠을 실컷 자고 싶다”며 “부부가 각각 본가에 아이를 데려가 각자 하루씩 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가족들끼리 단체로 해외여행을 가는 등 명절 풍속이 다양화하고 있다. 하지만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3040 세대 기혼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간단한 자체 설문조사를 토대로 분석해본 결과 명절 스트레스 요인과 개선돼야 할 명절 문화는 남녀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남성 역시 여성에게 부담되는 가사 노동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꼽기도 했다. 부부가 서로의 고충을 알아주고 배려해주는 문화가 정착하는 것이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큰 방법으로 보인다.

한편 의학계에서는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명절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명절증후군은 명절 이후 허리나 어깨 목 등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지난 2015년 인천 부평 힘찬병원에서는 기혼자 206명 중 91%가 명절 후유증을 겪었다는 설문조사를 발표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 가사 분담 ▲ 가사 노동 시 쪼그려 앉지 않기 ▲ 운전석 등받이 각도 약 100도 유지 ▲ 연휴 후 적당한 사우나나 운동 등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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