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한국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성장, 수출, 고용, 소득분배 등 어느 지표 할 것 없이 일제히 나빠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올 1분기에 전기비 -0.4%를 기록했으며 2분기에는 정부의 재정투입 약발이 일부 먹혀 1%로 회복되긴 했으나 민간 부문이 심하게 위축돼 연간 2% 달성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수출 증가율은 올 8월 -13.6%로 9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다른 경쟁국들의 수출증가율도 대체로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으나 그 폭은 중국(올 6월 기준 -1.3%), 미국(-5.0%), 일본(-4.9%) 등보다 훨씬 크다.

제조업 가동률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가동률은 80%대 초반은 돼야 정상이다. 그래야 기업의 고용이 유지되고 채산성도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평균가동률은 2011년 이후 8년 이상 하락세를 지속해 현재는 70%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설비가 유휴상태에 있으니 신규 설비투자가 이뤄질 리 없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작년의 -2.4%에 이어 올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2.3%로 감소폭이 더욱 커졌다.

실물경기 악화는 고용악화로 직결되고 있다. 올 7월 취업자수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29만여명 늘었으나, 대부분 정부가 국민혈세를 투입해 만든 60대 이상 노인 취업자이며 30·40대는 각각 2만명, 17만명 줄었다. 실업률은 3.9%로 7월 기준으로 19년 만에 최고치이다. 청년실업률은 9.8%로 일본(3.8%)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소득분배 역시 악화일로이다. 올 2분기 처분가능소득 기준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이 5.30배로 2분기 기준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물가도 심상치 않다. 상품과 서비스를 망라한 가장 넓은 의미의 물가지표인 GDP 디플레이터는 올 2분기에 전분기 대비 -0.7%로 작년 4분기(-0.1%), 올 1분기(-0.5%)에 이어 3분기 째 마이너스를 보였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경제를 괴롭혔던 디플레이션 악령이 우리에게도 엄습하지 않을까 불안한 상황이다.

이러한 제반 지표의 악화는 경기사이클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하반기부터 하강하기 시작했는데 하강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고 있는데도 청와대나 정부·여당은 낙관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책당국자 어느 누구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여러 지표들이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데 이어 올 5월에는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우리 경제가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작년 9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자 “소득분배 개선 효과가 내년엔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현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나빠지는 것을 세계경제 악화 탓으로 돌리는 모습도 엿보이고 있다. 하지만 세계경기가 한창 호조를 보이던 2017년 하반기부터 우리 경제는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현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이 충격을 준 영향이 크다.

1997년말 외환위기 발생 직전에도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며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렸으나 위기는 순식간에 닥치고 말았다. 인식이 잘못되면 처방이 잘못되고 처방이 잘못되면 경제는 더욱 망가질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정책은 솔직히 시인하고 이를 신속히 고치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당국자들은 시장의 소리에 귀를 막지 말아야 한다. 고집과 편견으로 이념적 정책을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정부가 가부장적으로 나서 이곳 저곳에 재정을 투입해 봐야 성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국가 채무만 늘어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원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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