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도 질병인가. 2019년 상반기 한국 사회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됐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vs 산업계, 청년 vs 중년식 구도로 찬반양론이 일며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 기획에서는 게임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듣고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과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게이머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에는 ‘게임 불감증’이라는 말이 있다. 게임에 대한 흥미나 기대치가 사라지고 어떤 게임을 하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런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전석환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사업실장은 “게임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게이머 스스로가 게임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게임 자체를 중독의 개념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뉴스포스트>는 게임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전석환 실장을 만나 게임 업계의 생각을 들어봤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전석환 사업실장. (사진=선초롱 기자)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전석환 사업실장. (사진=선초롱 기자)

“게임 과몰입, 게임은 원인 아닌 결과”

국내에서는 ‘게임 과몰입’에 대해 ‘게임중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바라보고 있다. WHO에서 질병으로 규정한 ‘GAMING DISORDER(게임 사용 장애)’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 유독 게임 과몰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게임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증상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크다. 

그러나 전석환 실장은 게임에 몰입하는 것에 대해 “원인이 아닌 결과”라고 말한다.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 때문에 과몰입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실장에 따르면 최근 부산시는 15세~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희망하는 여가활동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1위는 여행, 2위 문화·예술 관람, 3위 스포츠 등의 순으로 나타났고, 게임은 8%도 채 되지 않는 현저히 적은 분포를 보였다. 이 조사 결과는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전 실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게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까. 성인의 경우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고 청소년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게임 업계의 판단이다. 입시경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하교 후 학원으로 독서실로 향하는 청소년에게 짬짬이 즐길 수 있는 것이 겨우 게임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이것은 게임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선택하고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의 문제”라며 “앞서 언급했듯이 청소년들은 게임보다는 여행, 문화생활 등을 여가생활로 누리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청소년의 경우 부모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전 실장도 의견을 함께했다. 다만 부모의 통제방식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게임 이용 시간을 정하는 것이 맞고, 만약 어겼을 때는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올바른 통제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게임이 없다 치더라도, 가정 내 소통이 없다면 아이들은 게임이 아닌 뭔가 또 다른 것을 할 것이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청소년 규제 장치? 이미 충분”

의학계, 학부모단체 등에서는 청소년기 게임 과몰입을 강제할만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전 실장은 “시스템적인 부분은 이미 충분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게임을 개발할 때 ‘강제적 셧다운제’와 ‘선택적 셧다운제’를 모두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만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온라인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제도다. 선택적 셧다운제는 부모가 게임업체에 요청할 경우 자녀의 결제 내역과 이용 시간 등을 공개하고, 부모가 자녀의 게임접속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사용률을 현저히 낮다는 게 전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실제 현장에서 서비스했던 게임이 15세 이하 청소년이 많이 하던 게임이었는데, 부모들에게 선택적 셧다운제에 대한 권한 부여와 안내를 다 했는데도 실제 이용률은 1%가 채 되지 않았다”며 “충분히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데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셧다운제를 통해 강제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보다는 부모가 자녀와 한 마디라도 말을 더하고 소통하는 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녀를 교육할 방법일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부모들이 흔히 자녀가 게임리그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게임 중독이 된 것 같다고 걱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 실장은 괜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그는 “게임리그는 청소년에게는 ‘놀이터’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다”며 “놀이터에 가는 것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고, 리그에 들어가지 않으면 또래집단에서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 놀이터에 가는 것을 게임에 중독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실장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게임캠프를 소개했다. 1박 2일 동안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게임을 통해 소통하는 프로그램으로, 함께 웃고 떠들며 게임을 하고 대회도 진행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부모가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고, 소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 실장의 의견이다. 

“게임에는 끝이 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논란이 거세지면서 다시 재점화된 난제가 있다. 바로 ‘게임중독세’다. 게임중독세는 2013년 4대 중독 법을 추진하면서 나오게 된 것으로, 당시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의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의 ‘4대 중독법’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사의 연간 매출 중 일부를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가 당시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됐었다. 그러다 WHO가 게임 사용 장애를 질병으로 판단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에 대해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이하 공대위)’에서는 의료영역 창출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대위 소속이기도 한 전 실장은 “한국중독정신의학회의 모 교수가 말하기를 ‘도박중독 유병률은 6.1%로, 200만 명 정도다. 그중에서 병원에 와서 직접 치료받는 환자는 0.1%(4,000여 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중독으로 분류된 도박, 알코올, 마약 등은 미성년자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임은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더 많이 하고 있다”며 “게임을 중독으로 규제하게 된다면 미성년자 600만 명(초등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이 게임중독 대상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가 말하긴 게임 중독 유병률은 3% 정도인데, 그렇게 되면 3만9,600만 명의 미성년자가 게임중독 환자라는 말이 된다”며 “이는 알코올, 마약 등 일반 중독환자보다 10배가 많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내원하는 미성년자들도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실장의 결론은 이렇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보건복지부 등에서 게임중독세를 통해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복지예산을 늘리려 한다는 것. 그에 따르면 현재 1년에 편성되는 정신건강 복지예산은 1,700억 원이다. 이는 보건복지부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OECD 평균 예산 비율인 3~5%에서 크게 밑돌기 때문에 재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규정해 의료영역 창출을 하겠다는 주장으로 보인다는 게 공대위의 판단이다.

그러나 그는 “게임에는 끝이 있다”고 말한다. 게임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지고 식상해질 때가 생긴다는 것이다. 흔히 반복되는 패턴이 많은 게임에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게임 업계에서는 실제로 ‘엔드 콘텐츠’를 만든다. 전 실장은 “게임에 흥미를 잃은 유저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일주일, 한 달 정도 진행되는 엔드 콘텐츠를 만든다”며 “그것까지 끝나면 유저들은 게임을 떠나게 된다. 만약 게임이 끝이 없었다면 엔드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게임불감증’이라는 용어도 게이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게임에 재미와 흥미가 떨어져 결국 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도박, 마약, 알코올 등에는 이런 용어 및 이런 증상이 없다는 게 전 실장의 의견이다.

물론 나쁜 게임도 있다. 전 실장은 “아이가 우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고 게임에 몰두하는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들도 분명 존재한다”며 “집에 컴퓨터를 여러 대 켜놓고 자동프로그램을 돌리면서 돈을 벌고, 현금화하는 작업장의 개념으로 게임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닌 국가나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전석환 사업실장. (사진=선초롱 기자)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전석환 사업실장. (사진=선초롱 기자)

게임 질병코드 도입이 가져올 변화

국내에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될 경우 일반인이 느낄 정도의 변화는 과연 있을까. 전 실장은 “분명히 변화가 있다”라고 말한다. 우선 19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제약이 생길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우려다. 그는 “만약 질병코드가 도입될 경우 보건복지부 등에서는 법제화를 하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게임 관련 광고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중독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전 실장은 게임 산업 신규 지원자들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도 내다봤다. 그는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게 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는 게임 산업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게임중독세 이슈가 재점화돼 그 부담이 유저에게도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전 실장은 “게임사들은 게임중독세가 현실화될 경우 모든 부분을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떻게든 일반 유저들에게 부담을 시킬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일반 게이머들도 게임중독세의 부담을 어떤 형태로든 지게 될 것”으로 봤다. 물론 액수가 크지는 않겠지만 일반인들이 느끼는 부담도 분명 존재할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게임업계, 자성 필요해”

현재 국내 게임 업계는 심각한 양극화현상을 겪고 있다. 업계의 허리를 담당하는 50~100명 정도 규모의 중견기업은 사장된 지 오래고, 소규모 인디게임 분야 역시 ‘인디게임 대 멸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암울한 상황이다. 가장 상위에 있는 대형 게임사들 역시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실제로 게임 사용자가 줄어들고 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지만 쉽지 않다. 

전 실장은 게임 업계 전체가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대형 게임사들이 먼저 위기를 의식하고, 먼저 태도 변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업계가 게임 사용자들이 국내 게임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원인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양산형 게임’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었다. 거의 비슷한 패턴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업계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 종사자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가장 큰 비판을 받는 ‘게임의 도박성(사행성)’ 논란에 대한 부분도 게임 업계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에서 나온 논지이기도 한데, 이를 바라보는 게임 사용자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흔히 ‘확률형 아이템’이라고 하는 랜덤박스에 관한 것인데, 0.0004%라는 확률에 대한 논란은 현재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서도 계속해서 지적하는 내용이다. 

전 실장은 “그동안 게임 업계에서 이에 대한 움직임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라며 “업계가 같이 자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임의 여러 순기능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업계 스스로 사과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 사용자를 비롯해 일반 국민의 사행성 논란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고민하고 있다. 사회 환원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업계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 지에 대해 근본적인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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