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도 질병인가. 2019년 상반기 한국 사회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됐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vs 산업계, 청년 vs 중년식 구도로 찬반양론이 일며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 기획에서는 게임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듣고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과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게임사용 장애를 질병 코드로 등록한 WHO의 결정에 국내 게임 산업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반발하는 것을 두고 국내 의학계에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외치지 말라고 전한다. 실재하는 게임사용 장애 당사자를 위해서라도 국내 도입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지난 9일 국내 도입 찬성 입장에 서 있는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 (사진=이별님 기자)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 (사진=이별님 기자)

의학계 “WHO 결정 합리적”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한국역학회 등 5개 국내 학회에서는 올해 6월 WHO의 결정을 지지하는 성명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 학회는 ▲ WHO 결정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무모한 비방 중단 ▲ 게임사용 장애 진단지침에 대한 게임 업계의 비상식적 주장 중지 ▲ 게임사용 장애에 따른 국민건강피해 파악을 위한 전국실태조사 등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의료계에서 먼저 게임사용 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의 찬반을 논한 적은 없다. 게임 업계는 물론 국회에서 (WHO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까 의료계에서도 ‘이대로 가선 안 되겠다’ 싶어서 6월에 성명을 낸 거다”라며 “이 결정에 정부까지 중재에 나서는 거 자체가 해외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게임 문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게임사용 장애 당사자들을 위해서라도 WHO의 결정은 합리적이라는 게 의학계의 입장이다. 그는 “게임이 좋고 나쁘고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일부 개인이 게임을 중독될 정도로 사용해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거다”라며 “‘게임이용 장애가 반드시 질병으로 존재해야 한다’라는 게 아니라 WHO의 결정이 꼭 반대할만한 사항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의학계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게임중독 질병화에 찬성한다는 일부 반대론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부정했다. 그는 “(WHO의 결정은) 기술적인 프로세스와 관련된 것이지 의학계의 이해관계와는 관련 없다”며 “도박 등 어떤 행위에 중독된 당사자가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행위 중독 특성상 약물치료보단 상담이나 면담이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솔직히 말하면 병원에서 의사가 하기엔 수지에 안 맞는다”라고 반박했다.

“게임사용 장애, 진단 기준 불명확 아냐”

국내에서 게임사용 장애에 대한 이슈는 불타오르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게임 이용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를 토대로 게임사용 장애 환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이들의 치료법이나 구체적인 진단 기준 역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사용 장애를 진단하는 의학적 기준이 매우 불명확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게임사용 장애 진단 기준에는 크게 3가지 패턴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게임 사용 조절 불가다. 이 교수는 “첫째는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라며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할 때 하거나, 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지 못하는 걸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일을 앞두고 게임을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게임을 하는 것이다”라며 “오래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지 말아야 할 때와 해야 할 때가 조절이 안 되는 게 큰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둘째는 모든 일상에서 게임이 우선시 되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다른 활동에 대한 우선순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라며 “친구들과 만나 운동도 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가 이제는 일상생활 모든 게 게임으로 수렴하는 상황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셋째는 게임으로 문제 상황에도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게임으로 가족·친구들과 불화가 생기거나, 불면증 등 건강이 악화하는데도 (게임을) 멈춰야 한다는 판단을 못 하는 거다”라며 “이 상황이 1년 이상 반복되면 아이의 건강과 일상생활에 심각한 손상이 간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 같은 증상에 해당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이 세 가지 패턴을 1년 동안 지속하고, 기능이 완전히 떨어지게 된 청소년들은 게임 사용자 100명 중 1~2명 일 것이다”라며 “대부분 아이는 이 진단에 일부만 해당할 것이다. 이 경우 게임사용 장애도 아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콕 집어서 게임만 등록? 그건 오해”

게임 업계는 청소년의 게임사용 장애 원인이 게임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입시 스트레스 등 사회적 문제나 가족·친구 관계와 같은 개인적인 이유가 청소년 게임사용 장애의 주요 원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게임사용 장애의 원인이 게임이 아닌 만큼 WHO의 결정이 매우 부당하다는 게 게임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아울러 WHO가 게임사용 장애만 질병 코드에 등록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스마트폰이나 기타 취미 활동 역시 중독을 야기할 수 있지만, 이것들과 관련한 사용 장애 질병 코드 등록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WHO가 게임에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형평성에 어긋난 결정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 교수는 게임사용 장애의 원인이 게임 자체에 있지 않다는 주장은 질병 코드 등록 반대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초고속 인터넷과 PC방 문화가 발달한 환경에서 가족이나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부재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게임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입시 스트레스도 크다”면서도 “그게 왜 게임사용 장애 질병 코드 도입 반대 이유로 둔갑하는지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장애 즉 디스오더(Disorder)라는 건 질병 디시즈(Disease)와는 다르다. 디스오더는 원인과 무관하게 현재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다”라며 “사용 장애라고 해서 게임을 못 하게 하는 접근법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게임사용 장애가 신체적 질병이 아닌 정신적 질환이기 때문에 원인이 매우 복합적이란 이야기다. 원인이 복잡하고 다양한 만큼 게임에 잘잘못을 따져 묻겠다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WHO가 형평성에 맞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반박했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가장 큰 변화는 중독 질환이 ‘물질사용 장애’와 ‘행위 중독’ 두 가지 챕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라며 “이전에는 중독이라고 하면 물질사용 장애 챕터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위 중독 안에는 도박과 게임 그리고 아더 디스오더(기타 장애, Other Disorder)가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게임과 도박 이외에 다른 중독 요인들은 기타 장애에 포함된다. 그는 “게임만 따로 떼어낸 이유는 연구가 가장 많이 돼 있어서다”라며 “게임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 게 아니라 연구 결과가 가장 많아서 (질병 코드로) 등재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SNS나 포르노 중독 등도 연구 결과가 많이 쌓이면, 게임사용 장애처럼 따로 분류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질병 코드 국내 도입 시 의료계 변화

게임사용 장애가 포함된 WHO의 국제질병분류 권고는 오는 2022년 1월 발효될 예정이다. 이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DC)에 적용하는 주기를 따져보면, WHO의 권고가 적용될지 여부는 빠르면 2025년에 알 수 있다. 6년 후 게임사용 장애 질병 코드가 국내에 도입되면 의료계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 교수는 당장 큰 변화는 없더라도 게임중독 치료법 발전은 필연적일 거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겠지만, 당장 보건복지부나 교육부에서도 이 문제를 들여다볼 것이다”라면서 “질병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아이들이 있다면 예방이나 치료 서비스가 제대로 돼 있는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업계는 사회적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을 들여다볼 근거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그걸 걱정할 거 같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치료법 발전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치료법 발전은 당연한 거다”라며 “(권고가 발효되면) 전 세계적으로 통계가 잡힌다”고 기대했다. 그는 “2022년 1월부터 WHO에서 게임사용 장애에 해당하는 이가 몇 명인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등에 대해 모니터링을 정식으로 한다. 그러면 각 나라 주무 부처에서 주기적으로 전문가들한테 통계를 요청할 것이다”라며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지만, 이런 게 가장 큰 변화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교수는 게임중독 사안을 다루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에도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게임사용 장애 청소년에 대한 국가적 통계도 없다”라며 “문체부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문화 시설은 구비하지 않으면서 게임 산업 진흥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심각한 문제를 겪는 아이들의 존재조차 부정하면서 아이들에게 게임을 안심하고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며 “문화적 환경을 갖추는 노력을 안 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언론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문체부가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뭘 하는지,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얼마를 쓰는지, 게임 산업 진흥 업무와 예방 치료 업무를 같이하는 것은 적절한지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계속 인터뷰만 해 답답하다”며 “질병 코드 등록은 기술적인 문제다. 게임 산업이나 게임 과몰입 예방 치유 업무 담당자들의 행태가 적절한 것인지 등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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