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은 일찍이 그의 저서 ‘성장의 신화’에서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불리는 신흥공업국들의 고도성장은 사상누각과 같다”라고 혹평했다. 그의 말이 지금 맞아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1973년 14.8%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거의 매년 10%를 넘는 고도성장을 이룩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 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성장률은 2012년 이후 2014년(3.3%)과 2017년(3.1%)만 빼고 2%대의 저조한 수준을 지속하고 있으며, 올해는 2%선마저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세계 12위의 경제 규모, 세계 6위의 수출 순위 등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낄 정도로 우뚝 솟은 한국의 위상이 이제는 떨어지는 모습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1위에서 2017년에 러시아에 밀렸고, 포브스지 선정 ‘세계 2000대 기업’(Forbes Global 2000) 수는 작년 67개사에서 올해 62개사로 줄었다. 아직 세계 5위이지만 중국 기업에 자리를 속속 내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성장세는 더욱 약화돼 앞으로 10여년 후에는 잠재정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중 최하위로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OECD 분석자료가 이미 나와 있다. 일본, 미국보다도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투자부진, 저생산성 등이 주된 원인이다.

지난 10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나 이보다 한달 앞서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잠재성장률 추정치 모두 OECD 분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앞으로 계속 하락해 2030대에는 1%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경제의 기력은 이미 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장률 뿐 아니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저물가, 저금리 등 장기불황 진입을 알리는 신호들이 일제히 켜지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8월 -0.04%로 통계청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지 54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햇다. 민간 소비지출과 설비투자 및 건설투자 등 수요 부진이 심회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향후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1990년대 초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던 일본 경제와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 아니 어쩌면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나 가계부채 규모 등의 문제가 일본보다 더 하기 때문이다.

저성장, 저물가, 투자부진 등으로 자금수요가 줄어 금리도 제로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경제가 불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언젠가 현 한국은행 총재가 언급한바 있던 마이너스 금리까지도 염두에 둬야 할지 모르는 판이다.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적 여건)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정책당국이 별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쟁으로 소일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으로 일관할 뿐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내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유력 실세 장관이 최근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국민 앞에 공공연히 밝혔다. 헌법 제119조 1항에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돼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이만큼 성장했는데 사회주의를 운운한 것이다.

몇십년을 겪기 전에 발상을 대전환해야 한다. 국토가 비좁고 자원도 빈약한 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글로벌 시장에서 외국과 협력·경쟁하는 것이다. 정부가 불필요하게 개입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되고 있는데 정부가 개입하면 자원배분이 왜곡돼 국민 전체의 후생이 줄어들 뿐이다. 우리가 소재·부품을 다 만들겠다며 대규모 예산을 굳이 투입할 필요가 없다. 각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을 만들어 서로 교역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국제무역의 기본 원리다. 뭐든지 다 만들겠다는 자급자족(autarky), 폐쇄주의적 사고방식은 버리는 게 옳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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