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에 위치한 세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즐겨 찾는 관광 휴양지다. 지난 2017년까지 필리핀 세부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수는 약 백만 명 이상. 올해 상반기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약 94만 명으로 중국, 미국, 일본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 한국인 관광객이 필리핀에서 쓴 돈도 평균 1인당 1,304.13미불로 1위를 차지했다. ‘돈 잘 쓰기’로 유명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 관광객보다 지갑을 잘 열었다.

필리핀 세부. (사진=김혜선 기자)
필리핀 세부. (사진=김혜선 기자)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에서도 관광산업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지난해에는 환경 이슈로 필리핀 인기 관광지인 보라카이가 폐쇄됐지만, 오히려 관광산업 GDP 기여도는 2017년 대비 0.5%p 증가해 12.7%를 기록했다. 필리핀 통계청(PSA)에 따르면 여객운송, 숙박, 식음료 등 관광업 종사자는 지난해에만 약 540만 명이 고용됐다. 말 그대로 ‘관광으로 먹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정말로 필리피노들은 ‘관광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필리핀은 전체 인구의 약 85%가 빈민층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기준 필리핀인의 26.5%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고, 빈곤율(2015년 기준 21.6%)은 또 다른 세계 최빈국 아이티와 거의 비슷하다. 세부의 고급 리조트는 해안선을 따라 우후죽순 생겨나지만, 세부 주민들은 어설프게 엮은 나뭇잎 지붕 아래 겨우 비를 피하면서 살아간다. 일종의 ‘관광 식민지’인 셈이다.

실제로 세부 내 위치한 고급 리조트는 대부분 해외 자본이나 필리핀 재벌 자본이 대부분이다. 1박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크림슨 리조트의 경우 필리핀 거부인 고티아눈 재벌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제이파크 리조트는 ‘망고 킹’으로 불리는 저스틴 우이 회장이 갖고 있다. 샹그릴라 호텔은 홍콩 부동산 회사인 캐리 프로퍼티스(Kerry Properties)가, 뫼벤픽 호텔은 프랑스 대형 호텔 체인인 아코르 호텔이 소유주다.

한국식 ‘패키지 관광’도 현지인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관광객들은 대형 여행사들의 인솔에 따라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순회하며 사진을 남긴다. 숙소와 교통수단은 ‘패키지’에 포함돼 관광객들이 지갑을 여는 순간은 여행사와 제휴를 맺은 기념품 가게로 한정돼있다. 이 숨 가쁜 회전 안에서 지역 상인들이 끼어들 틈은 없다.

최근에는 ‘그랩’ 등 공유경제를 활용한 해외 자본이 세부에 녹아들었다. 필리핀 택시기사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은 차량공유 서비스인 그랩을 이용한다. 기자도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 간 필리핀 세부를 방문해 그랩 서비스를 이용했다.

지난 12일 만난 조니 에버(Johnny Ever) 그랩 기사는 “그랩 택시에서 커미션으로 최대 30%를 떼 간다”며 “단순 편도 요금도 커미션만 25%가 붙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넌지시 “다음날도 택시를 이용하고 싶으면 시간 당 500페소(6인 승합차)에 운임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보통 한국에서 예약하는 금액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한 수준이었다. 그랩 커미션이 부담스러운 수준인지를 묻자 그는 단번에 “그렇다”고 답했다. 조니는 “그랩에서는 손님에게 영업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많은 운전기사들이 커미션이 부담스러우니 손님에게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니의 손자는 수개월 째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운전 중에도 그의 딸이 손자의 상태를 전해주는 전화가 종종 울리곤 했다.

필리핀 세부 그랩. (사진=김혜선 기자)
필리핀 세부 그랩. (사진=김혜선 기자)

 

조니는 “그랩보다 필리핀 물 회사처럼 좋은 회사가 많아지면 좋겠다”며 바깥에서 생수를 파는 청년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는 “필리핀 스프링워터(Spring Water) 회사는 길거리 청년들에게 단 10페소에 물을 팔 수 있게 물건을 준다. 상점에서 물을 사면 20페소~30페소에 사야한다. 필리핀 청년들이 먹고 살 수 있게 일부러 물건을 싸게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부에서 유명한 해양스포츠 체험도 현지인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매우 적었다. 4일 내내 세부에서는 비가 내렸기 때문에 예약했던 수상 스포츠 일정은 모두 취소됐다. 유일하게 콘도에서 운영하는 바나나보트만 탔을 뿐이다. 바나나보트를 운영하던 청년은 함께 간 중학생 여동생과 동년배였다. ‘학교에 안 가느냐’고 묻자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콘도에는 바나나보트 값으로 3천 페소를 지불했지만, 그는 ‘적은 돈만 받는다’고만 말했다.

한편, 관광객으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최대한 지역 경제로 돌리는 개념의 여행도 있다. 공정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공정여행은 관광으로 인한 각종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역 주민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행으로 매스투어리즘(Mass Tourism·대량관광)을 반성하며 나왔다. 지역 주민의 음식점, 상점, 숙소 등을 최대한 이용하고 가이드도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는 식이다. 다음 여행은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문화를 함께 즐기며 자연과 환경을 살리는 ‘공정여행’으로 떠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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